학개를 떠올리면 성전 건축이다.
70년의 바벨론 포로 생활을 끝내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국으로 돌아와 성전 건축을 한다.
이스라엘 성전 하면 떠오르는 이름은 솔로몬의 성전과 지금 학개서에서 나오는 스룹바벨 성전이다.
이 시대에 유다 총독인 스룹바벨과 그 당시 대제사장인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다.
그래서 기쁨으로 성전을 건축하게 되었다.
내가 만난 학개 선지자는 동원가이고 전략가라는 느낌이 들었다.
학개서에서 성전을 건축한다는 이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흥미진진했다.
어떤 사람들이 참여하는지 어떤 성전을 건축할지 어떠한 형태인지 얼마나 걸릴지가 흥미로웠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 생활을 끝내고 돌아왔기에 많이 지쳐있었다.
돌아와서 본 성전은 황폐하고 폐허가 되어 있었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더 막막한 상태였다.
그러던 중 땅도 황폐해 수확도 적었고 백성들이 거주할 집도 지어야 했기에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학개는 백성들을 격려하고 용기를 부여하고 다시 그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런 모습을 머리에서 입체화해서 성경을 읽으니까 참 재미있었다.
중간에 기존에 이 땅에 살고 있던 남아 있는 사람들과 사마리아인들이 성전 건축을 함께 하길 원함으로 인해
갈등을 빚어 중간에 쉬는 기간도 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끝내 성전을 건축된다.
건축된 성전을 보고 어떤 이는 솔로몬의 위대한 성전을 본 이들이 있었기에 그에 비하면 너무나 형편없는 스룹바벨 성전을 보며
슬피 우는 사람들도 있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바벨론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예루살렘의 성전을 직접 보며
감격하는 사람 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북한에서 태어나 전쟁 통에 남한으로 이주해 살다가 통일이 되어 그립던 북한 땅의 금강산을 대할 때 감격과
소문으로 듣던 그 자녀들이 금강산을 대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일 것 같다.
학개서에서 가장 인상 남았던 말씀은 1장 4절 말씀이다.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그리고 1장 9절에 보면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
인간의 본성을 학개 성격으로 실감 나게 말하고 있다.
예전의 사역하던 교회에서 가장 가슴 아픈 장면이 이 말씀과 같아서 학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 부임 받아 간 교회는 학교 건물을 사용하고 있었던 관계로 교실이 참 많았다.
건물이 너무 커서 약 3분의 1 정도만 사용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세 장소만 빼고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그 세 장소도 건물 입구에 하나 건물 끝에 2개였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 교실들을 걸어가야만 했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교회 현관부터 모든 사용하지 않는 교실들은 누군가 버리고 간 가구들과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교인들이 이사를 가거나 가구를 바꿀 때 사용하던 가구들을 교회에 버리는 것들이었기에 발생한 현상이었다.
그래서 동네 아이들의 탈선의 장소로 사용되어 자다가도 알람이 울려 경찰이 출동하는 일이 너무나 자주 있었다.
이 쓰레기 같은 물건들을 버리는 데만 1500불의 경비가 들어갈 정도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쓰레기 같은 것들을 버리는데 많은 반대로 인해 고통을 겪어야 했다.
학개 선지자는 너희들이 살 집은 그렇게 좋은 것으로 채우면서 하나님의 성전은 늘 나중이 되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어릴 적 헌금을 해도 새 돈으로 바꿔서 헌금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언제나 좋은 것으로 드려야 한다고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민 교회에서 본 현실은 쓰던 냉장고는 교회에 갖다 놓고 자기들의 집에는 새로 장만하고.
이것은 마치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는 것과 같았다.
나는 학개서를 읽으면서 교회의 필요를 채우는 종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뭐가 필요한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하나가 생각이 났다. 내가 생각난 것을 꼭 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실 것을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