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는 삶

나훔서를 끝내며

차작가 2023. 10. 17. 11:17

나훔이라는 뜻은 "위로"라는 뜻이다.

나훔서는 1장 1절에 "니느웨에 대한 경고"라고 시작한다.

느니웨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요나이다.

요나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니느웨에 대한 심판을 예언하기 싫어서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선지자이다.

그런데 요나는 요나서를 통해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신 말씀은

하나님은 악인도 사랑하고 악인의 죽음도 슬퍼한다는 메시지이다.

그런데 100년이 지난 지금 하나님은 나훔을 통해 느니웨에 멸망을 선포하신다.

1세기 전에 니느웨는 잠시 회개하고 돌아왔으나 세월이 지나며 그들의 악행은 하나님의 진노를 샀고

그래서 하나님은 보복하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1장 3절에 표현을 보면 하나님은 벌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 두지 아니하신다고 말씀하셨다.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이다.

니느웨의 악행이 얼마나 유명했냐면 사람을 죽이고 그 내장을 쏟아 바닥에 깔고

사람의 머리로 탑을 쌓고 사람의 가죽을 벗기고 어린아이와 부녀자들을 도륙하고

그 시체가 얼마나 많은지 시체 더미를 밟지 않고서는 그 성에 들어갈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런 잔혹한 살인자들을 하나님은 반드시 죽일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1장 7절 이후에 보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범람하는 물로 그곳을 진멸하고 흑암으로 쫓아내고

하나님은 온전히 멸하시며 재난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 말씀은 악한 이 종족들을 완전히 멸해서 다시는 그런 살인들이 일어나지 않게 하신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그들이 만든 우상을 멸하고 그 무덤을 준비하여서 다시는 쓸모없게 만든다고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1장 7절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그리고 1장 13절 "이제 네게 지운 그의 멍에를 내가 깨뜨리고 네 결박을 끊으리라"

앗수르는 멸하시지만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멍에를 깨트리고 결박을 끊고 환난 날에 산성이 되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에게 아신다고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아신다는 말씀이 나를 터치했다.

그리고 2장 7절

"정한 대로 왕후가 벌거벗은 몸으로 끌려가니 그 모든 시녀들이 가슴을 치며 비둘기같이 슬피 우는도다"

여기에서 왕후는 왕의 아내를 표현하기도 하지만 앗수르가 섬기는 우상, 아세라 신상이라고도 한다.

하나님은 1장 14절에서도 언급한 것과도 같이 우상을 완전히 멸절하시는 하나님의 진노를 보여 주고 있다.

소선지서에서 앞에 다루었던 오바댜는 에돔의 심판을 선포했고

오늘 나훔서에는 앗수르를 심판하셨으며

앞으로 다룰 하박국서에서는 바벨론을 심판하실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 세 선지서의 공통점은 이스라엘을 탄압하고 빼앗고 착취하는 그들의 악행을 하나님은 결국 심판하신다는 말씀이다.

우리가 살면서 저렇게 악하고 포악한 사람들을 보며 왜 하나님은 저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시나 하고 질문을 던질 때가 많다.

그런 우리에게 오늘 말씀은 위로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악행을 간과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때에 "심판의 때"에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그리도 또 기억해야 될 것은 1장 7절을 다시 상기해 보면 하나님은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신다는 것이다.

환난을 당할 때 우리가 누구에게 가야 하는지 알려 주시는 말씀이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갈 곳이 있다는 것은 힘이고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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