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는 삶

에베소서를 끝내며

차작가 2023. 10. 18. 12:15
 

에베소서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쓴 옥중서신이다,

또한 옥중서신서에는 에베소서 외에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가 있다.

에베소 교회에서 바울은 3년 정도 머물면서 사역한 바울이 가장 오래 사역한 교회로 알려졌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있었을 것 같다.

에베소서의 특징은 에베소 교회에 만을 위한 서신서가 아니라 그동안 사역했던

많은 교회를 위한 서신이라 회람 서신이라 알려졌다,

즉, 에베소에 서신을 보내고 또 그 서신은 또 다른 교회로 돌아가며 볼 수 있도록 쓰였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그동안 보여 왔던 바울의 서신서는 특정 교회를 향한 인사와 안부를 묻고

또 그 교회 교인들의 이름을 부르며 언급한 내용이 있었는데 이서신은 개인적인 이야기가 없으며 공적인 내용만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체적인 내용이 모든 교회를 향한 매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에베소서가 쓰인 배경은 사도행전 19장 1-20절에서 보면

바울이 에베소에서 전도하다가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제자들은 12명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사도행전 19:2 보면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니라"라고 말한다.

바울이 그들에게 묻되 사도행전 19:3에 보면

"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라고 말한다.

요한이 세례를 베푸는 곳과 에베소까지는 굉장히 먼 거리이다.

그런데 요한의 세례가 에베소까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바울은 세례요한은 알지만 예수님을 모르는 에베소 사람들을 보며 세례를 준다.

사도행전 19장 5절 "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사도행전 19장 6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이렇게 12제자는 바울에게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는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바울은 회당으로 들어가 전도를 하게 된다,

사도행전 19장 8절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여기에서 회당에 들어갔다는 말씀을 통해 에베소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래 말씀처럼 받아들이지 않자 세례를 받은 제자들을 데리고 두란노 서원에서 복음을 전한다.

사도행전 19장 9절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이렇게 따로 세운 제자들에게 2년 동안 같이하며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게 된다.

이곳에서 하나님이 바울을 통하여 많은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셨고 심지어 사람들은 바울의 몸에서 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병도 낫고 악귀도 떠나는 기적들이 일어난다.

이렇게 에베소 교회가 세워진 배경은 바울이 12제자들에게 성령세례를 주고 바울을 통해 능력을 나타내셔서

병도 고치고 귀신도 쫓는 기적을 통하여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바울이 행한 능력이 알려지며 믿는 사람들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들을 알리고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모아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들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값이 은 오만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주의 말씀이 점점 흥왕하여 세력을 얻게 되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은 마케도니아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가기로 작정을 하고 그 후에 로마 선교를 결심하게 된다.

그 당시 에베소는 무역과 상업이 발달한 도시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유명한 아데미 신전이 있었다,

아데미라는 여신은 온몸에 가슴이 달려있는 우상이었다.

이 신전의 크기는 대략 큰 축구장 만한 사이즈였다고 알려져 있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기둥들이 100여 개가 되고

그 모든 것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엄청난 크기의 신전이었다,

에베소 시민들뿐만 아니라 주위의 여러 도시의 사람들도 이곳에 예배하러 올 정도의 유명한 신전이었다.

상업 도시여서 아데미 신전을 통해 관광으로 얻는 수입이 많았다.

아데미 여신의 조각품을 팔아서 수익을 얻기도 했고 또 예배를 드리러 온 사람들에게 숙박을 제공하는 등

여러모로 상업적으로 이 신전이 사용되었다.

마지막으로 에베소서의 흐름은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 구원에 관한 것이고

두 번째는 교회에 관한 것이고

세 번째는 믿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에베소서 1장에서 3장까지는 교리에 관하여 즉 하나님의 선택과 구원하심과 교회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두 번째 4장에서 6장 까지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해야 함을 설명하고 있다.

에베소서 4장 3절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라"

에베소서 5장 1절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 받는 자가 되고" 등

그리스도인의 삶은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우리가 가정에서 어떠해야 하는지 또 직장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한다.

말씀에서 자녀와 부모의 관계, 부부의 관계, 종과 상전의 관계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즉, 성령 충만함은 가정과 직장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리고 6장 11절에서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어라"라고 말한다.

즉, 불순종의 그 뒤에는 마귀가 있다는 것을 표현한다.

마귀와의 싸움은 아주 실제적이다.

성령 충만을 통해 우리는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에는 진리의 허리 띠, 의의 호심경, 믿음의 방패, 투구와 신발과 또 검이 있다.

우리가 전쟁을 할 때 방어도 해야 되고 공격도 해야 한다.

여기서 방어를 위해서는 방패가 필요하다.

그 당시는 불화살로 공격을 했기에 불화살을 막기 위해서는 방패가 필요하다.

이 불화살은 생각을 뜻한다.

가롯 유다에게 마귀가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다는 말씀이 있다.

우리는 믿음의 방패로 이 생각을 막아야 한다.

즉, 마귀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의심하게 하는 생각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흔들어 놓는다.

여기에서 유일한 공격형 전쟁도구는 검이다. 이 검은 하나님의 말씀을 뜻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귀의 공격을 막는 무기이다.

진리가 예수님이시고 그 예수님을 믿는 것이 믿음이고 또 그 예수님은 말씀이시다.

이 모든 도구는 일맥상통하다.

즉, 하나님의 전신 갑주만이 우리가 삶 속에서 승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그 말씀을 믿고 그 믿음으로 날마다 전신 갑주를 취하기를 기도해야 한다.

이렇게 에베소서는 맺고 있다.

나는 에베소서를 대하며 실천적인 서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6장 밖에 되지 않지만 바울이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그동안 사역했던 교회를 생각하며

눈물 흘리며 기도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 죽음을 앞두고 로마 감옥에서 유언을 하는 심정으로 편지를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또 신령한 축복을 부어주심을 이야기하며

구원받기 전에는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었는데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가 되고 하나님의 권속이라 불러 주시는 사랑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셨다.

이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의 비밀을 알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예수님과 하나 되게 하셨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본받는 생활을 해야 된다고 구체적으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를 담담하게 전하는 편지 속에 자신의 신앙 고백이 묻어 남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도 3장 12절에서 13절 말씀이 가장 와닿았다.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란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내가 에베소 교인이 되어서 이 말씀을 읽어보니 바울이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굉장히 낙심이 되었다.

바울은 그런 교인들을 향해 낙심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바울의 순교와 많은 사람들의 순교가 없었다면 오늘 우리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에베소서를 남겨 주셔서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순교가 없었다면 오늘의 나도 없을 것이고 오늘의 교회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구절을 읽는데 감사해서 눈물이 났다.

나에게 성령님을 주셔서 말씀을 깨닫게 해 주셔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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