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는 삶

고린도전서를 끝내며

차작가 2023. 10. 18. 12:11
 

고린도전서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고린도교회는 로마교회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로마의 글라디우스 황제 시절에 유대인 기독교인들을

추방함으로 인해 그리스로 이주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바울을 만나서 세워진 교회이다.

처음 시작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에서 고린도 교회가 시작되었다.

고린도 교회는 그리스에서 가장 활발한 상업 중심도시였다.

항구도시로서 무역이 활발히 일어났고 물질적으로 아주 풍요로운 일종의 신도시였다.

또 다른 나라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이주해 왔기 때문에 다양한 인종들이 섞여 있는 도시였다.

그래서 물질주의적인 성향을 가졌고 사치도 아주 심한 도시였다.

다양한 민족들이 섞여 사는 항구 도시여서 신전들과 우상들이 많은 도시였다.

그리고 그 신전에서 신녀들이 창녀 같은 음란한 행위를 통해서 제사를 드리는 음란 행위가 팽배한 도시였다.

그 신전에는 수천 명이나 되는 신녀들이 돈을 받고 행음을 했기에 그 신전에 드려진 제물이 차고 넘쳐나서

그 신전을 거쳐가지 않은 고기가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고린도의 시장에서 팔리는 대부분의 고기는 우상의 제물로 바쳐진 고기들이었다.

바울은 1년 6개월 정도 고린도에 머물면서 교회를 개척했고 이후에 에베소로 건너가게 되었다.

대략 고린도 전서는 A.D. 54년에서 55년에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에베소에서 사역을 하고 있는 바울에게 고린도교회는 바울과 서신을 통해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 그러한 관계였다.

그러던 중 고린도교회에 위기가 닥친 것을 알게 되었다.

바울이 고린도 전서 서신서를 기록한 목적을 이 말씀에서 알 수 있다.

첫 번째는 고린도 교회의 위기에 대한 답변이고

1장 11절에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내게 들리니에서 알 수 있듯이 수시로 편지를 통해 고린도교회 사정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두 번째는 헌금에 대한 감사이다.

16장 17절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

고린도 교회의 문제는

대표적인 문제가 교회의 분열이다. 세례 문제를 두고 바울파 베드로파 아볼로파 그리스도파로 나누고

다투는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교회에도 음행하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고린도 지역은 행음과 타락함이 만연한 사회적 문제가 있었는데 그 문제가 교회까지 들어오게 된 것이다.

아버지의 아내를 아내로 삼는 문제가 불거지게 되었다.

그 당시는 아버지가 죽으면 그 아내가 모든 재산을 상속받기 때문에 의붓아들이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여서 자신의 배를

불리려고 하는 일이 있었다.

그 문제가 교회에서 발생했고 교회는 그 문제를 물질적인 문제로 치리하지 못했다.

이처럼 타락한 고린도를 보며 사람들은 "고린도 사람처럼 행하다"라는 유행어가 생길 정도였다.

즉, 이 말은 "성적으로 부도덕하다"라는 표현이다.

그리고 교인들끼리 서로 분쟁하고 소송하는 일이 있었고 우상에게 드려진 제물을 먹는 문제가 있었고

성찬 문제도 있었다.

이 성찬 문제는 그 당시 교회는 가정 교회였기 때문에 가정을 오픈한다는 것은 큰 집을 가진 재력가였다.

성찬식은 지금처럼 작은 빵조각 하나와 작은 포도주스를 나누는 정도가 아니라 당시에는 함께 음식을 나누는 성찬이었다.

가정을 오픈하는 주인과 음식을 준비하는 몇몇 성도들은 일찍 모여서 음식을 준비하는 여유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성도들은 단순노동하는 사람이나 노예와 같은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가난했기 때문에 일을 하고 늦게 와야 하는 상황이고 음식도 준비하지 못했다.

일찍 온 부자들은 음식을 준비하고 상석에 앉아있고 가난한 사람들은 문 앞의 하석에 앉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기도를 하고 음식을 나눌 때에 앞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먼저 음식을 자기의 그릇에 담고 나면

끝에 앉아 있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음식이 거의 돌아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뒤늦게 온 가난한 자들은 만찬에 참여하지 못하는 문제를 겪게 되었다.

그래서 그 예배는 형식적인 예배의식이 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부활 신앙을 부인하는 문제들도 생겼고 성령의 은사에 관한 문제도 생겼다.

이 모든 문제들은 고린도 교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현시대에도 이런 문제들을 많이 접할 수 있다.

고린도 전서는 이런 문제들을 직면할 때 현실의 삶 속에서 어떻게 해결해야 되는지 방법을 알려 주는 서신서이다.

고린도 전서를 읽을 때 마치 자신이 바울이 되어서 감정 이입을 해서 읽으면 본문을 이해하는데 참 도움이 된다.

바울은 편지를 통해 때로는 달래고 때로는 친절하게 설명도 하지만 이래서는 안된다고 꾸짖기도 하며

그들이 질문한 편지에 하나님 말씀으로 조언을 해 준다.

고린도 전서는 실천 신학의 보화로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현실 속에서 당면하는 문제들을 이야기하고 또 해결책도 주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고린도 교회 이야기이지만 현대 교회가 직면하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나는 구약을 통해서 그 시대의 배경을 알고 로마서에서도 시대적 배경을 알아서인지 고린도 전서가 아주 잘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공부한 만큼 말씀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게 하나의 큰 변화였다.

CBS 성서학당 "고린도 전서 강해"를 추천한다. 그 강의에서 그동안 몰랐던 부분과 헬라 문화를 이해 함으로 새롭게 얻는 은혜가 컸다.

전체 말씀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와닿았던 말씀은 3장 1 절이다.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었어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하노라"

이 말씀은 바울이 약간 비틀어 꼬집어서 훈계하는 느낌이다.

왜냐면 "내가 신령한 사람들을 대하듯이 너희에게 말할 수가 없다" 이 말은 너희들의 영적 상태가 성숙하지 않다는 것을 비틀고

꼬집어서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이 그들을 애기 다루듯이 설명해 주겠다는 말씀이다.

이 말씀을 읽을 때 바울이 화가 엄청났지만 꾹 참고 편지를 쓰는 그 장면을 생각하니까 웃음이 좀 났다.

1년 6개월 동안 천막을 지으면서 자비량으로 뼈빠지게 교회를 세웠고 일꾼들도 키워서 교회를 세웠다.

그런데 교회가 난장판이 되어서 이런 기본도 안되는 문제를 가지고 답을 달라고 편지를 보내니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고린도 교인들에게 어린아이 대하듯이 사랑으로 하나하나 권면하는 바울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어쩌면 바울은 최고의 상담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이런 마음으로 다가간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담자를 향해 바울과 같은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두 번 권면하기는 했지만 변하지 않으면 "사람은 역시 안 변해" 하고 정죄하는 게 나의 모습이었다.

바울을 통해서 예수님의 사랑을 입은 자가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 하는지 어떻게 겸손한 모습으로 서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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