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는 삶

갈라디아서를 끝내며

차작가 2023. 10. 18. 12:14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1차 선교 여행 초반에 쓴 서신서이다.

아마도 바울이 쓴 서신서 중에서 가장 감정 표현을 격하게 한 서신서로 보인다.

서신서 중에 학자에 따라 조금 차이는 있지만 데살로니가서 다음으로 쓰인 서신서로 추정된다,

그리고 갈라디아라는 곳은 특정한 도시라기 보다 소아시아 지역에 속한 지역을 지칭한다.

갈라디아서가 쓰인 배경은 이 지역 교회들이 거짓 선생의 가르침을 통해 바른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을 받아들임으로 인해 변질되어서였다.

1장 7절에 보면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 바로 윗절에 보면 바울이 열심을 다해 복음을 전했지만 성도들이 그 복음을 속히 떠나서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보며 이상하게 여긴다는 표현이 있다.

다른 복음이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을 받는다는 "오직 예수" + "율법"이나 "율법을 지켜야 한다"라는

플러스 알파가 있어야만 구원받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서 거짓 선생이라는 사람들은 유대주의자로 불리는 교사들인데 유대주의자라는 사람들은 일반 유대인들과 다르게

초기 기독교 내에 있었던 특정한 유대인 무리였다.

그들이 가르치는 핵심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바리새인들처럼 율법을 지키거나 유대인이 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온전히 율법을 지키는 것을 통해 그리스도에게 회심된다고 말했다.

즉, 그리스도 + 율법을 상징하는 모세주의라는 논리를 폈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종교적 체계를 만들려는 시도를 했었다.

바울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 거짓 선생 즉, 유대주의자들에게 오직 예수를 믿는 믿음 외에는 다른 것을 더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것은 예수를 통한 구원의 충분성을 부정하는 것이며 즉,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성령님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신앙 + 율법주의는 "다른 복음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그런 유대주의자들의 유혹에 넘어간 교회들을 바로잡기 위해 갈라디아서가 기록된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보니 갈라디아서를 쓸 때 바울이 얼마나 감정이 격했는지를 서신서의 시작부터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의 분노는 의로운 분노이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그들을 향한 분노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바울의 분노는 5장 12절에 잘 나타나 있다.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버리기를 원하노라"

얼마나 바울이 힘들었는지 6장 17절에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이렇게 편지를 통해 이 사건이 얼마나 바울의 마음을 상하게 했는지를 볼 수 있다.'

갈라디아서에는 이 뿐 만 아니라 할례와 음식에 관한 법도 다루고 있다.

무엇을 먹느냐와 또한 누구 와와 먹느냐를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밥을 먹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베드로와 바나바와 바울이 이방인과 함께 밥을 먹을 때 유대인들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두려워서 떠나는 것을 보며

바나바도 시험에 들게 한 일을 바울이 책망하는 사건이 있다.

여기에 관한 말씀은 2장에 자세히 나와있다.

이렇듯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렇다고 해서 바울이 율법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율법이 주는 선한 기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고 초등 교사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유대주의자들 즉 거짓 선생들을 배척한 이유는 우리의 구원은 "오직 예수그리스도" 만으로 충분함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또한 이 잘못된 복음으로 인해 기독교를 변질시키기 때문이다.

갈라디아 지역 교회의 문제는 초대교회가 초창기에 겪어야 했던 문제였다.

교회에서 이방인들이 많아지자 유대인들과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갈라디아서는 이런 문제들에 대한 답을 분명하게 해 주고 있다.

또한 갈라디아 교회의 문제는 초대교회 시대의 문제만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현재에도 많은 교회에서도 복음 외에 자신들이 만든 율법을 가지고 사람들의 믿음을 평가하기도 하고

정죄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실제적으로 이단이라고 명하는 대부분의 교회에는 오직 예수 + 그들이 만든 또 다른 복음이 더해져서

빗나간 믿음을 양산하고 있다.

갈라디아서는 지금에도 일어나고 있는 교회 현상들을 바로잡는 좋은 길라잡이의 역할을 하고 있다.

나는 2장 8절 말씀이 많이 와닿았다.

"베드로에게 역사 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이가 또한 내게 역사 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여기에 하나님의 경륜을 느낄 수가 있었다.

하나님은 바울을 로마의 시민권자로 태어나게 하셨고 또한 그를 율법에 능한 사람으로 양육하셨다.

바울은 가말리엘 선생의 수제자였으며 레위 자손이었으며 랍비로서 잘 훈련된 교사였다.

그 당시 랍비는 돈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위급한 경우는 바울은 천막 짓는 일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도록 준비된 선교사이다.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율법주의자로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자였지만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나고

예수님이 직접 가르친 제자가 아니었지만 예수님이 인치신 사도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었다.

하나님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혈통을 통한 구원이 아니라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해

바울을 사용하신 것이다.

3장 28절에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우리 모두가 오직 예수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심을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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