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 서는 서신 앞부분에 보면 "우리가 보았고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면
사도 요한이 저자인 것으로 본다.
요한은 제자들 중에 가장 오래 산 제자이다.
오래 살았다는 것은 시간이 많았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책임감을 가지고 책을 쓰며 남겨진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기록했을 것이다.
요한은 요한복음과 요한 1,2,3 서 마지막으로 요한 계시록까지 총 5권의 책을 쓴 저자이다.
이 서신은 다른 서신과 다르게 첫인사와 끝인사를 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또 서신을 보낸 구체적인 장소나 대상이 나와 있지 않다.
요한 1 서는 초기 영지주의 즉 적 그리스도로 인한 이단의 가르침으로부터 성도를 보호하기 위한 서신서이다.
초기 영지주의는 영만 거룩하고 육은 악하다는 이원론적 가르침이었다.
성육신에 대한 잘못된 교리를 말하는데 서신이 쓰일 당시 영지주의가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상태는 아니었다.
이 초기 영지주의는 2세기 중반에 가서야 온전한 시스템을 갖추게 된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영지주의는 구원파에 속한다.
이 영지주의의 뿌리가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아주 끈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다.
즉, 구원파의 뿌리는 영지주의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요한은 이단들의 문제점들을 세 가지로 나눠서 열거한다.
첫째는 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신 것을 부정하는 것은 이단이라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정하는 자들이다.
둘째는 도덕적 영역에서 의로운 행동이 사라진 것이다.
자신들은 특별한 지식을 지녔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의 죄성을 부정하는 자들이다.
세 째는 사회적 영역에서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들에게는 형제 사랑하는 모습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 1 서는 유독 사랑을 강조하고 있다.
요한 1서의 역사적 배경은 다루기가 쉽지 않다.
거기에 대한 단서가 아주 미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세린투스 주의와 연결해 볼 수 있다.
세린투스는 요한이 마지막 시간을 보낸 곳인 에베소 사람이었고 그의 가르침이 요한 1서에서 묘사하는
이단의 가르침과 아주 유사하기 때문이다.
즉, 세린투스는 적 그리스도인이었다.
세린투스 주의의 특징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부인한다. 즉, 성령으로 잉태한 사실을 부정한다.
그는 예수님이 다른 사람과 같이 똑같이 태어났고 차이점이 있다면 좀 더 의롭고 뛰어난 사람이었다고 주장했다.
즉, 예수님이 평범하지만 조금 뛰어난 사람이었다고 주장했다.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 성령님이 비둘기처럼 임했었고 그 사건 이후에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서 선포했고
기적을 행했음을 주장했다.
그리고 십자가 사건 직전에 성령님은 예수님을 떠나 버렸다고 주장했다.
즉, 예수님은 인간으로 태어났고 인간으로 죽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리스도와 예수님을 분리하고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영이기 때문에 고통받을 수 없다는 논리로 예수님의 모든 고난에 그리스도가 동참하지 않았다는
이단적 주장에 동참했던 사람이다.
5장 6절에 보면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신 성령은 진리이시라"
예수님이신 동시에 그리스도이신 한 분의 모습으로 오심을 물과 피로 임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은 100퍼센트 인간이신 동시에 100퍼센트 하나님이신 분이시다.
초기 영지주의라는 이원론적인 주장을 폈던 이단을 염두에 두고 요한은 이 말을 한 것이다.
현재에도 구원파 뿐만 아니라 우리 주위에 이단들이 너무나 많다.
요한 1서를 읽으면 이단이 어떤 것인지 분명히 알 수 있다.
또한 형제 사랑을 강조하며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강조하며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4장 8절에 말하고 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도전이며 믿는 자의 삶의 표징으로 나타내어야 될 것이 사랑임을 말하는 것이다.
만약 믿는 자의 모습 속에 사랑이 없다면 영지주의자들과 구원파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요한 1서를 읽으면서 사랑에 관한 말씀을 모두 줄을 치며 읽었다.
왜냐하면 사랑이 가장 힘든 것이기 때문이다.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지만 구원받은 자에게는 사랑이 나타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중에 한 구절을 보면 3장 9 절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 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내가 구원받았다는 것은 우선 나 자신이 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타인이 봤을 때도 내가 구원받았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 중요하다.
나만 확신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이 볼 때도 구원받은 자의 모습이 보여야 한다.
그것은 사랑이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모습 보다 구원받은 자의 삶을 보여 주는 게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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