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2,3 서는 알다시피 사도 요한 이 쓴 서신이다.
우선 요한 2,3서의 역사적 배경을 보면 그 당시 그리스도인 전도자들은 순회하면서 복음을 전했다.
그래서 여관에 머물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여관은 더럽고 대체로 주인은 탐욕스러워서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는 직업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그래서 전도자들이 여행하면서 머물 곳이 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도 루디아의 집에서 머물기도 했고 데살로니가에서는 야손의 집에
고린도에서는 가이오의 집에 가이사랴에서는 빌립의 집에서 예루살렘에서는 나손의 집에서 머물렀음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다.
요한 2 서는 이러한 당시의 상황을 말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순회 사역자들을 영접하는 일이 위험이 될 수도 있었다.
요한 2,3 서는 이와 같은 문제들이 연결되어 있다.
순회 사역자들 중 어떤 사람을 환영해야 하는지 또 어떤 사역자는 허락하지 않아야 하는지를 다루고 있다.
요한 2서가 이단적 순회 사역자를 구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요한 3 서는 순회 사역자를 영접하고 환영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 이제 요한 2서에 대해서 살펴보자.
처음에 "장로인 나는"라고 소개하면서 자신이 수신자들이 잘 알고 존경하는 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연장자로서 권위와 사도적 권위를 나타내는 표현이기 때문에 요한 1,2,3 서의 저자가 모두 사도 요한이라고 알려져 있다.
당시는 순회 사역자들의 메시지를 검증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했다.
즉,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을 구별하는 2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첫 번째는 요한 1성에서처럼 메시지에서 기독론을 검증하는 것이다.
예수를 육체로 오신 그리스도로 인정하는지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
또 다른 한 가지는 그들의 동기를 봐야 한다.
순수한 동기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과 비교를 위해 12제자들의 가르침을 모아 놓은 "디다케"라는 1세기 말의 문서에는
세밀하게 구별하는 요령이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면 사도들은 하루 필요하다면 이틀까지 머물 수 있으나 만약 삼일을 머무르면 가짜 사역자이며
다른 곳으로 떠날 때 여행에 필요한 만큼 먹을 것을 받을 수 있으나 금전을 바라면 가짜이다.
성령의 영감에 따라 말한다고 하면서 다른 이들을 위한 모금에 추가 금전을 요구한다면 가짜이다.
또한 진짜 사역자들은 머물고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으나 일반 기독교인은 3일 이상 거저 대접을 받을 수 없다고 가르친다.
만약에 장기 체류를 원한다면 스스로 벌어서 먹으라고 말해야 한다.
만약 이를 거절한다면 그리스도를 팔아먹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요한 3서에 대해서 살펴보자.
요한 3 서는 가이오라는 사람에게 쓴 개인 서신이다.
요한 2서와 3서를 비교해 보면 3 서는 2서와 유사하게 손님을 접대하는 것과 관련하여 "진리와 사랑"이라는 이슈를 다룬다.
하지만 2 서는 잘못된 가르침을 주는 사역자에 대한 경고이고 3 서는 손님 접대하기를 거부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섬김마저
방해하는 일과 그 일에 앞장서고 있는 디오 그레베에게 경고를 주는 내용이다.
디오 드레 베는 교만하여 으뜸 되기를 좋아하고 교회 일을 혼자 좌지우지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이런 면에서 요한 2서와 3 서는 "손님 접대"라는 주제를 상호보완하고 있다.
3서에서 가이오의 가정교회는 손님을 대접하는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었으나
디오드레베라는 사람에 의해 반대를 직면하고 있었다.
순수한 사역자들이 오면 갖가지 모함으로 접대를 방해하며 이단을 경계한다는 구실을 내세워서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며 금하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디오드레베는 이단이었던가?
그러한 증거는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이단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의 교만함과 망령되이 폄론 하는 것과 그의 행동이 악하다고 요한은 지적하고 있다.
이렇게 요한 2서와 3 서는 손님 접대에 관한 내용을 상호보완하며
어떻게 우리가 분별하고 섬겨야 하는지에 대해서 잘 설명해 주고 있는 서신서이다.
현재로 말하자면 목회자라고 해서 사사로이 금전을 요구할 수 없으며 또 어떤 집에 머무르더라도 이틀 이상 머물러서는 안 된다.
선교 단체 선교사라도 선교에 필요한 모금을 할 수 있으나 개인적인 모금은 가짜이다.
특히 흔히 볼 수 있는 목회자가 안식년을 맞는다든지 여행 중에 다른 지역(나라)에 가서 돈을 받고 복음을 전한다면
이것은 그리스도를 파는 행위이다.
즉, 교회에 사채 업자처럼 수금하러 다니는 것 같은 행위이다.
그것을 잘 분별해야 하고 그런 일에 동참한다면 그들의 죄를 허용하고 인정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교회가 사역자를 잘 섬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짓 사역자들에게 틈을 내어주어서 교회를 스스로 허물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는 요한 2 서 5절에서 "내가 이제 네게 고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6절에서 "처음부터 들은 바" 이렇게 처음부터 들었다는 것을 두 번이나 말하고 있다.
이것은 사랑을 두 번이나 강조하는 것이다.
즉, 요한 할아버지가
"내가 지금 처음 말한 게 아니라 옛날에 사랑하자라는 계명에 있다. 지금 처음 말한 게 아니다 제발 잊지 말고 기억해라"
라고 말하는 것이다.
"올바른 사역자들이 왔을 때 우리가 사랑으로 잘 영접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요한 3서에서 2사람이 등장한다.
가이오와 디오드레베이다.
사역자들이 방문할 때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분별해야 하고 진짜라면 가이오처럼 잘 접대해야 한다.
그러나 디오드레베라 처럼 자신이 자신의 힘을 이용해 선한 일을 방해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요한은 사랑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번에 요한 2,3서가 이런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처음 알았다.
이런 짧은 말씀 속에 이렇게 큰 의미가 담겨 있는지를 몰랐었다.
짧아서 대충 넘어간 게 큰 실수였다.
만약 이 말씀을 알았더라면 잘 분별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알면서도 묵인했던 일들이 많았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앞으로는 절대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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