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가르침

예수님의 가르침 8:용서에 대하여 - 마태복음 18장 21-22절

차작가 2023. 11. 2. 11:03

21절 그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2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로 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지난 2012년 10월 30일, 미국 사우스 다코다주 도슈폴스(Sioux Falls) 감옥에서는 참관인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하얀 시트가 덮인 침대 위에서 백발이 성성한 묄러(Donald Moeller)에게 사형집행이 시작되었다. 일곱 개의 갈색 가죽끈에 묶여 침대에 누워있는 묄러에게 독극물이 주사기를 타고 몸속으로 흘러 들어갔고, 이어 묄러는 숨을 여덟 번 가쁘게 몰아쉰 후에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눈꺼풀은 열려있었고, 피부는 옅은 핑크색에서 잿빛으로, 그리고 다시 보라색으로 변해갔다. 이윽고 22분 뒤인 밤 10시 24분, 검시관은 묄러의 죽음을 확인했다. 묄러는 1990년 5월 8일, 슈 폭스(Sioux Falls)에서 당시 4학년이자 아홉 살이었던 베키(Becky O'Connell)를 살해하는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 그날 베키는 학교에서 돌아온 후 집에서 불과 한 블록 떨어진 편의점에 설탕을 사기 위해 달려갔다.

엄마 티나(Tina Curl)는 딸이 혼자 가는 게 다소 염려되기는 했지만 불과 200m도 되지 않는 거리이기에 다녀오라고 했다. 하지만 이것이 티나가 딸을 본 마지막이었다. 베키는 편의점 근처에서 묄러 라우 38세 남자에게 납치당했고, 이어 성폭행당하고 예리한 흉기로 잔인하게 살해되었다.

다음 날 아침 베키는 인근 호숫가 숲속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이후 범인 묄러는 체포되었고, 사법당국은 여러 차례 재판을 거친 후 지난 2012년 9월 최종적으로 그에게 사형을 확정했다. 그리고 10월 30일 티나가 지켜보는 가운데 묄러는 범행 22년 만에 드디어 사형을 당했다. 티 나는 사형집행 전 최후진술을 할 때 혹이라도 묄러가 자신의 범행에 대해 사죄의 말을 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를 가졌지만 그는 “[할 말이] 없다”라고 했다.

 

티나는 묄러의 형이 집행되는 동안 참관인용 의자에 앉지도 않은 채 꼿꼿이 서서 창문을 통해 두 눈을 부릅뜨고 이 모든 장면을 지켜봤다. 딸이 살해당한 후 티나는 사우스 다코다를 떠나 지금은 뉴욕에 살고 있지만 딸을 죽인 범인의 죽음을 보기 위해 먼 거리를 달려온 것이었다.

정부 보조금으로 살아가는 빠듯한 살림 때문에 이번 여행에 필요한 교통비와 숙박비를 모금해서 왔다고 했다. 티나는 살인자의 죽음을 가능한 한 더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고 했다.

범인의 사형을 지켜본 티나는 “저는 여러 해 동안 이날을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오늘 베키에게 정의가 실현되었습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티나는 그의 죽음이 그나마 위안이 됐지만 그렇다고 딸을 잃은 고통이 없어진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녀는 텔레비전을 통해 귀여운 베키의 사진을 보면서 저렇게 착하고 천진한 아이에게 어떻게 이런 비극적인 일이 발생했는지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사고나 병으로 자녀를 잃은 부모의 마음도 헤아릴 수 없는데 하물며 자녀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잔인하게 죽임을 당한 부모의 마음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번 사건에 대한 충격이 가시면서 천천히 제게 떠오르는 것은 분노에 찬 티나의 인생이었다. 어린 딸이 잔인하게 살해된, 이 가슴 찢는 아픔에 더하여 22년이라는 긴 세월을 분노 속에 살아온 티나의 삶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티나는 금년에 50세이고, 베키가 살해된 것이 22년 전이라고 하니 그때 티나의 나이는 28세였을 것이다. 인생의 한 토막을 분노에 찌들려 살아온 한 맺힌 엄마의 22년의 세월은 누가 보상할까? 그리고 지금까지 지내온 고통의세월 뿐아니라 앞으로 남은 인생은 또 어떻게 할까?

범인이 처형된 것은 잃어버린 엄마의 인생을 보상해 줄 수도, 분노를 사라지게 할 수도 없는 것이다.

분노라는 것은 누구나 피하고 싶은 감정이지만 인생을 살면서 불가피하게 맞닥뜨리지 않을 수 없는 감정이다. 나는 분노에 대한 묵상을 하면서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첫째, 분노는 우리의 죄상을 먹고 자라는 생명체와 같다는 사실이다. 어떤 일에 대해서는 세월이 지나면 분노가 다소 누그러지기도 하지만 어떤 일에 대해서는 세월이 지날수록 도리어 분노가 더 강렬해질 수 있다. 이들은 끝없이 자라서 결국에는 우리를 파멸로 이끈다. 그러므로 분노는 의도적으로, 의지를 동원해서 다스려야 할 감정이다. 가만히 두어서는 절대로 해결되지 않는다.

 

분노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나는 양심이 화인 맞아‘미안하다’ 죄송하기라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고 죽어간 묄러의 모습도 기가 막히지만 오랜 분노로 일그러진 티나의 모습이 더 안타까웠다. 범죄자는 죽음으로 자신의 삶을 마쳤지만 티나는 사정이 달랐다. 귀여운 딸을 가슴에 묻은 것만도 너무나 억울하고 가슴이 아픈데 이에 더하여 한평생을 분노 가운데 살아간다는 것은 딸을 잃은 슬픔 못잖은 또 다른 불행이기 때문이다.

 

둘째, 분노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우리를 성숙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분노는 극복하기가 어려운 만큼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좋은 영적 훈련일 수 있다. 우리는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신 손양권 목사님의 얘기를 잘 알고 있다. 손 목사님은 그 사건을 통해 온 세상과도 바꿀 수 없는 두 아들을 잃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분이 원수를 사랑하게 되기까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분노를 다스렸던 과정은 잘 생각하지 않는다. 목사님은 자식들을 죽인 원수에 대한 분노를 극복하고 도리어 그를 용서함으로써 어느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 십자가의 사랑을 경험하셨음이 분명하다.

 

그러면 도대체 우리를 분노하게 만든 사람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 오늘 본문의 비유가 그 답을 말해주고 있다.

 

:비유 18:23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18:24 결산할 때에만 달란트(한 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으로 6000일 즉 16년간 품삯에 해당한다. 요즘 화폐 가치로 환산해 본다면 하루 품삯을 50,000원 정도로 계산할 때 3억원 쯤 된다. 30억 불이고 우리 나랏돈으로는 3조에 해당된다)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18: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 이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18:26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18: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18:28 그 종이나 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5천 불)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18:29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18: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18:31 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리니 18:32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18: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18: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18: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조건 없이)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하시리라

 

:우리에게 아무리 커 보이고 용서 못 할 일이라도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만 달란트와 100데나리온의 차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용서하신 것이 30억 불 이상의 가치로 생각한다면 용서 못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우선 자신도 용서받은 사람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대속적인 죽음을 통해 자신도 용서받아야 할 사람, 나아가 용서받은 사람임을 알게 될 때 자신에게 잘못한 사람들에 대해 마음을 열 수 있게 된다.

 

셋째, 분노는 분노의 대상이 되는 사람보다 분노하는 당사자를 더 망가뜨린다는 사실이다. 분노를 갖는 사람이 더 큰 손해를 본다는 말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불가피하게 이런저런 부담을 안고 가지 않을 수 없지만 이 세상에 분노의 짐만큼 무거운 것도 없다. 분노는 창살 없는 감옥처럼 우리를 가둔다. 무거운 짐을 지고 분노의 감옥 속에서 인생을 살아가게 되면 우리의 영성과 때로는 육체까지 망가지게 된다.

 

오두막의 줄거리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주인공 맥은 유능한 간호사인 아내와 다섯 자녀를 둔 아빠다. 어느 날 맥은 세 자녀를 데리고 휴가를 떠났다. 깊은 숲속 오두막이 있는 호숫가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던 배가 뒤집히는 바람에 간신히 구해 나온 아이들을 정신없이 돌보느라 그만 야영장에 두고 온 어린 딸 미시를 깜빡한 사이에 납치당하고 말았다. 여러 주변의 증언과 오두막에 남겨진 흔적으로 끔찍한 어린이 납치범의 소행으로 확인되지만 시신은 결국 찾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온 맥은 그날로부터 고통과 후회의 나날 속에서 혼란과 악몽의 날을 보낸다. 거의 삼 년이 지난 지금, 이 비극적인 사건으로 주인공은 무거운 짐을 지고 분노의 감옥 속에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 눈 속의 우체통에 파파(늘 하나님으로 부르던 )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오두막에서 다시 만나자는 파파로부터 온 편지는 맥에게 의문과 궁금증으로, 결국 그 오두막으로 찾아가게 한다. "거대한 슬픔"이 자리 잡은 그곳에서, 고통과 깊은 외로움 속에 지쳐있을 때 맥은 살아있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치유도 되고 마지막 남은 고통의 순간을 갖게 된다. 그것은 살인자를 용서하는 것이다.

 

결론:

용서’란 너를 지배하는 것으로부터 너 자신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용서도 결국은 우리를 위한 것이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 용서하라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베키 엄마 티나도 그녀 자신이 아무 조건 없이 용서를 해버렸다면 22년 동안 분노로 자신을 망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두막 소설에 나오는 맥도 용서에 대해서 갚지 알았더라면 3년간의 고통에서 해방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너 자신을 얽매이고 있는 지배하고 있는 사슬로부터 자유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를 얽매이게 하는 사슬로부터 자유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아무 조건 없이 우리 마음으로부터 용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마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