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절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절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7절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8절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도입
하나님은 두 가지 매체를 통해서 우리와 교제 하시길 원하신다. 하나는 성경이요 다른 하나는 기도이다. 그런데 성경을 읽는 것도 어렵지만 기도는 그 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 하나님과 영적인 대화라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아 보인다. 신앙 생활을 수 십 년 하신 분들에게도 기도는 여전히 도전되는 항목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드리는 기도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예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기도는 어떤 기도인지를 바르게 알기를 바란다. 신학적인 관점 보다는 신앙 생활에 유익이 되도록 실제적인 관점으로 함께 살펴보자.
본론:
기도할 때 주의해야 할 것 세 가지가 있다.
I. 그 첫 번째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하지 말라는 것이다.
1. 바리새인들(본문의 외식하는 자들)은 기도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했다. 기도 시간이 되면 그가 시장에 있든지 어디에 있든지 기도해야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은 곳을 지날 때 기도 시간이 되면 기도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함으로 자기는 기도를 정해 놓고 하는 사람임을 보여 주고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경건한 자로 인정 받으려는 마음이 있었다. 예수님은 이런 점을 지적하시는 것이다.
2. 그래서 5절에서 예수님은 외식하는 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하는 것을 본받지 말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남들에게 경건을 드러내 보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신다. 기도는 관중에게 보이는 경기가 아니다. 자신의 영성을 풍기게 위해서 행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고 사람들로부터 인정 받고 싶어 한다. 이것의 결과는 하나님께 진정한 상을 받지 못한다. (이미 사람들로 부터 상을 받아버려서 저작 하나님께 로부터는 받지 못한다는 말)
3. 그래서 예수님은 6절에서 그 해결책을 알려 주시는데, 오히려 기도할 때는 골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으라고 하셨다. 옷장 속이든 빈 사무실이든 사람을 떠나 하나님과만 함께 있을 수 있는 은밀한 장소를 찾으라고 하신다. 그런 곳에서 야말로 가장 효과적으로 기도 할 수 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1:35 예수께서 한적한 곳에서 기도 하셨다. 베드로는 길을 가다가 기도 시간이 되었을 때 기도하려고 지붕으로 올라갔다. (사도행전 10:9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
4. 왜 은밀함을 강조 하실까? 왜 문을 닫아야 할까? 은밀한 장소일수록 관심이 분산되는 걸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하나님께 기도 할 때 산만함을 자주 경험한다. 기도하는 동안 온갖 종류의 소음들-음악소리, 전화벨 소리, 아이들 소리, 강아지 소리 등등이 집중력을 떨어지게 한다. 이런 것들을 잘 아시는 예수님은 ‘산만해지지 않으려고 몸부림치지 말고 차라리 피해라. 아무 방해 받지 않는 곳으로 가라’고 말씀하신다. 꼭 예배당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5. 장소적인 것과 시간적인 면에서 은밀함에 대해서 이같이 하면 된다. 그럼 하나님과 은밀한 기도는 어떤 것인가? 깊은 신뢰관계가 있는 대통령과 비서실장 관계를 생각하면 된다. 최고 권력자와 어느 때든지 은밀하게 만날 수 있는 관계이다. 영광스러운 직책 아닌가?
이렇듯 우리는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기도의 골방에서 하나님과 대화 할 수 있다. 하나님은 기도의 골방에서 우리를 만나며, 우리와 교제하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겠다고 맹세하신다. 그런데 우리의 반응은 어떤가? 기도의 골방에서 은밀하게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종종 무시하고 있지 않나? 기도하기는 하지만 그저 양심의 고통을 완화 시키기 위해 이따금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육신을 보전하기 위해 매일 밥을 먹어야 하듯이 날마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영의 양식임을 모르는 성도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기도의 골방으로 못 가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 보다 세상을 더 좋아하며, 하나님을 미워하는 인간의 죄성이 타락한 본성인 것이다. (기도의 골방으로 가기 위해서는 세상을 끊어냐 한다)
II. 두 번째는 중언부언 하지 말라는 것이다.
1. 중언부언은 무슨 뜻인가? Meaningless repetition(무의미한 반복)을 말한다. 진실하게 기도하라는 것이다. 핵심과 지식이 없고 말만 늘어 놓는 기도를 말한다. 빈말을 되풀이 하지 말라는 것이다. 상투적인 표현을 조심하라. 의미 없는 말을 반복하는 습관에 빠지지 말라. (올바른 기도는 ‘의미 있는 문장’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병 낫기를 위해서 계속 반복적으로 기도하는 것은 의미 없는 말을 반복하는 것은 아니다.
2. 이방인(다른 신들을 믿는 자)들은 왜 중언부언하면서 기도하는가? 말을 많이 하면 들어 줄줄 알고 하는 것 같다. 그럼, 어떻게 중언부언하면서 기도하는가? (반응이 없는데도 하는 기도. 일방통행 기도.)
물 한 그릇 (정화수) 떠다 놓 고 비나이다 ~하는 것과 같다. 이런 기도는 이방 인의 기도요 샤만이즘이다. 갈멜산에 모인 바알 선지자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들 신의 이름을 부르며 주문을 외웠다.
3. 유대인들은 어떻게 중언부언 했는가?
그들은 시편을 줄줄이 꿰고 있었다. 예수님 당시 유대에는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을 유명한 기도문들이 이미 있었다. 그들은 그 기도문들을 수시로 암송했다. 그 가운데는 ‘카디쉬’라는 좀 짧은 형태의 기도문도 있었고, 18번 축복기도라 불리는 ‘세모네 에스레’ 라는 기도문이 있었다. 유대인들은 카디쉬와 같은 기도문들을 매일 두 세 번씩 낭송하도록 되어 있었다.
유대인들은 그렇게 기도를 많이 알고 있었고 많이 하고 있었고 시편 기도를 줄줄 외며 따라서 하던 사람들이었다.
예수님 당시에는 메시아가 곧 와서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리라는 기대가 유대인들 간에 팽배해 있었다. 그리고 메시아가 와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도록 하려면 그에 앞서 유대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새롭게 헌신하고 순종하는 일들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다. 그래서 이러한 부흥운동이 유대인들 안에서 많이 일어났고 단체들도 많이 생겼었다. 바리새인들의 바리새운동도 그 중 하나이고 사해 주변 쿰란 에 모여 살던 에센파도 그 중 하나였으며 세례요한도 회개와 심판의 부흥운동을 주도한 사람이었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슬로건으로 기도문을 만들어서 암송을 했었다. 그들은 각자 자신들의 신학적인 이해와 이상과 소망 등을 담아 표현하는 특별한 기도문을 작성했다. 따라서 이들의 기도문은 우리가 아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의 부흥운동을 이끌어 가는 슬로건에 해당한 것이었다.
4. 그럼, 우리들은 어떻게 중언부언하고 있는가?
예를 들어, 마 28:20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히브리서 13:5에서 하나님은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다른 이름 중 하나는 임마누엘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이요 자녀라면 하나님께 우리와 함께 해 달라고 간구할 필요가 없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게 해 달라고, 그 사실 때문에 마음이 든든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이미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도 우리와 함께 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 역시 ‘빈말을 되풀이 하는 것’이다.
무의미한 말을 반복 하는 또 다른 예는 다음과 같다. 어떤 사람이 영양학적으로 형편없는 음식을 앞에 두고 앉아 있다. 온통 소금투성이고 기름이 번들거리는 음식 옆에는 설탕이 잔뜩 든 음료수가 있다. 이 사람이 이런 기도를 한다고 하자. ‘주님. 이 음식에 축복 하사 이것을 먹고 저희가 힘과 영양분을 얻게 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잘 행할 수 있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진정한 뜻은 고전 6:20에 나와있다.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이 말은 우리 몸 속에 좋은 음식을 넣어 주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질 나쁜 음식을 축복하사 그것이 기적적으로 영양가 있는 음식으로 변하게 해 달라고 간구하지 말자. 하나님은 그런 식으로 역사하지 않으신다.
5. 하나님은 공식 같은 기도에는 관심이 없으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속마음에 대해 듣고 싶어 하신다.
하나님은 정형화된 기도에 관심이 없다. 시편 62:8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시로다”
III. 세 번째는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기 전에 미리 우리가 있어야 할 것을 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 주문을 외우고 반복하나? 소원을 들어 달라는 바램 때문이 아닌가? 하나님은 기도할 때 주문 외우듯이 하지 말라고 하신다. 왜냐면 이미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결국 기도는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으로 결론 내릴 수 있다. 음성을 듣고자 한다면 굳이 많은 사람 앞에서 기도하는 자신을 드러낼 필요 없다. 오히려 은밀한 곳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이미 아시기 때문에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를 듣게 될 것이다. 쇠렌 키에르케고르가 한말: 처음에는 기도가 말하기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차츰 침묵하게 되면서 결국 기도는 듣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결론: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방법 대로 은밀하게, 진실하게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미리 아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기도를 통해서 나온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기도하면 그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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