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절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18절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1. 도입 (값싼 구원관이 판치고 있는 세상)
1)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이 영적으로 탈진하기 시작한 것은 설교에서 순수한 복음을 잊어버린 데 있다.
목회사회학적으로 보면 85%가 복음이 없다.
2) 값싼 복음(구원관)들이 판을 치고 있다.
기독교가 말하는 진정한 구원관은 회개=>믿음=>순종이다.
2. 구원의 시작은 진정한 회개로 부터=> 1) 죄인 됨을 인정하는 것 => 회개를 가져온다.
3. 율법이 죄를 깨닫게 해 준다. (죄를 사하거나 구원하는 power가 있는 것이 아니다)
1) 롬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 율법이 무엇인가?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죄에서 건져내시기 위해, 생명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법칙이다. 율법은 하늘의 삶의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즉 우리의 옛 사람, 즉 자기 고집대로 살면서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대항하고 괴롭히던 우리의 自我를 죽음으로 이기고, 순종하는 새 자아로 만들기 위함이다.
3) 하나님은 모든 민족 중에서 율법을 가장 잘 지킬 수 있는 조건을 가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셔서 그들 중 아무도 지킬 수 없음을 분명히 드러내셨다. 그 율법을 지켜봄으로써 우리의 불가능함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게끔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율법이다. 율법은 우리가 선하다는 것 보다는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알려 줄 뿐이다.
4)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지킴으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으려고 했다.
(눅18: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8: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8: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 나이다 하고 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8: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5)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그 율법을 무엇으로 생각하고 있나? 자기들 생색내기 용으로 율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마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자랑하고 싶어서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힘을 내어 종교 행위를 하는 자들, 그들을 가리켜 성경은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한다. 그렇게 자기의 자랑을 위해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 ‘내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기적을 일으키고 병자를 고쳤는데 왜 주님 날 모른다 하십니까?‘하고 주님께 따지는 자들이다. 그 때 주님께서 ’이 외식한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하신다.
예수님이 계속해서 지적하셨다. (마23: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23: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예수님이 바리새인들 보고 말만 하고 행치 아니했다고 하셨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목숨 걸고 율법을 지켰던 사람들이었다.
그렇지만 그 것은 하나님을 염두에 두지 않고 남에게 보이기 위한 종교행위와 율법 준수는 행치 않은 것이었다. 그래서 성도는 ‘무엇을 행 했는가’가 아닌 ‘어떤 사람인가’가 중요한 것이라 한 것이다. 외식하는 자들도 얼마든지 번지르르한 종교행위를 할 수 있다.
여전히 자신의 자랑을 위해 하는 행위는 그 것이 아무리 경건하고 신실해 보여도 모두 다 외식일 뿐이다.
(마 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나는 완전해 질 수 있나? 어렵다. 심지어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 보다 더 의로울 수도 없다. 그럼, 나는 구원을 받지 못하나? 갈 2:16이 해답을 준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 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의롭게 된다.
4. 율법은 예수님께로 인도 한다. 갈 3: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 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그래서 예수님은 율법의 완성이시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5. 믿음에 대해서
1) 믿음이란 용어는 십자가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개념으로 사용되는 것을 넘어 하나님과 예수와의 인격적인 신뢰와 신실한 관계 맺음에 들어간다는 표현이다.
2) 이는 복음을 수용하고 인격의 중심(마음)에서 예수를 믿고 사람들 앞에서도 예수를 주님으로 시인할 수 있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롬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3) 그런데, “쉬운 믿음 주의”(easy believism)에 빠진 성도들은 “죄에 대한 회개”를 불편하게 생각하거나 회개를 단순히 죄에 대한 인정 정도로 받아들인다.
“오직 은혜로만/믿음으로만”을 좋아하는 것이 때론 도를 넘어서 아무렇게나 살아도 구원을 확신할 수 있다는 잘못된 신념까지 제공한다.
4) ”오직 믿음”을 얼마나 좋아했으면 개역 성경은 헬라어 원어 성경에 없는“오직”이란 단어를 로마서에 첨가했을까?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필자가 본 성경 중에는 “오직” 개역 성경에만 있는 번역 현상이다.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중국어 번역 본에도 “오직”이란 단어는 당연히 찾을 수가 없다. 확인해 보니 표준 새 번역은 이 오류를 고쳤다
5) 여기엔 전도의 열정으로 사람들이 예수를 쉽게 영접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영리같은 내용에도 책임이 있다.
복음은 결코 4가지 원리(사랑-죄-구원-영접)로 단순화시킬 수 없다. 회개와 희생이 따르는 제자의 삶에 대한 각오 없이도 영접 기도를 시킬 때, 이는 성경에서 벗어난 약속이다. 믿기만 하라 식의 전도는 이제 그만해야 한다.
6) 하나님의 은혜는 죄가 더는 신자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임임에도 우리는 그저 죄에 대한 용서의 교리에 매달린다.
(롬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를 주님과 연합시켜서 십자가에서 같이 죽게 하신 이유는 우리가 새 생명 가운데서 살게 하기 위해서이다. 새사람은 이제는 내가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분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율법에 기록해 주셨던 많은 하나님의 성품과 삶의 방식과 교훈들을 받아들여서 살기를 즐거워하게 된다.
7) 그래서 구원받은 자들은 이렇게 된다. 시편 119편에 보면,
119:10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119:33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119:127 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들을 금 곧 순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는 율법을 좋아할 사람이 없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것은 다 사라지고 내가 믿는 자가 되어서 모든 의가 다 내게 와서 이제는 하나님 안에 들어와 있어서 다시 율법을 보니까 은혜인 것이다. 이렇게 살면 정말 신나고 너무 복되고 너무 행복한 삶이겠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8) 이렇게 은혜 받은 자는 반드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게 되어 있다.
6. 결론:
본문 5:19절은 이 땅에서 살 때 얼마나 하나님 말씀에 순종 했는가에 따라 천국에서 작은 자 혹은 큰 자로 여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1) 여기에서 천국이란 교회를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의 천국을 사람이 죽어 영혼이 머무르는 곳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예수님이 현재 말씀하시는 천국은 교회를 뜻한다. 이 교회가 존재하는 동안에 잘 못 나가서 구약을 무시하고 가르치게 되면 교회 안에서 작은 자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순종은 구원을 체험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2) 믿음을 강조한 사도 바울도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a. “진리를 온 마음으로 (wholeheartedly) 순종하여” (롬 6:17, 참고 살후 1:8).
롬 6: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b. 순종은 예수의 계명을 지키지는 것으로(요 14:15)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c. 혹은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의 계명으로 나타난다(요일 3:23).
3: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d. 예수께서는 영생의 길에 관한 질문에 명확하게 답하신다.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마태복음 19:17)
구원을 얻으려면 계명들을 지키라는 예수의 말씀을 행위 구원이라면서 배격하고 율법주의라는 이유로 거부한다면 우리에게 과연 예수를 믿는 믿음이 있는 것인가? 예수를 믿음이 없이 과연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교리에 관한 믿음으로 구원받지 못한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교리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이미 구원받았다고 확신하면서 계명들을 어기고 살인하고 간음하며 도적질하는 자들을 구원하실 자유가 하나님께 있지만 구원하지 않으실 권리도 있다. 하나님께서 그런 자들을 벌하시기로 결정하신다면 우리가 이신칭의 교리를 근거로 하나님께 부당하다고 따질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해 주실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우리를 용서해 주실 의무가 없다. 하나님의 은혜는 법칙이 아니다. 은혜로 구원받는 것도 법칙이 아니라 구속사 속에서 발생하는 사건이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사랑의 행위이다. 이신칭의 교리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교리적 법칙 속에 가두면 위대한 사랑의 하나님을 제한하게 된다.
예수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믿음으로 구원 받은 감격으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온전한 구원을 이루어 가는 우리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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