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절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절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절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절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절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본문:
전하고자 하는 내용: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실 때 믿음을 보겠냐는 말씀에 따라 진정으로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전하자.
1. 예수님이 이 비유를 드신 이유는?
1) 9절처럼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서이다.
- 의롭다는 것은 죄 없다고 인정 받는 것이다.
- 의롭다고 믿는 것은 이 믿음이 착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본문 바로 앞 8절에서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말씀하신 것과 관련이 있다. 즉 믿음으로 산다고 하지만 실상은 자신을 의로운 자로 여기고 그런 자신과 비교하면서 다른 사람은 멸시하는 바리새인의 속성으로 사는 것이 이 세상의 실상이라는 것이다.
- 구원 받았다고 철석 같이 믿고 있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멸시 하는 것이다.
2. 누가 자신이 의롭다고(구원 받았다고) 믿고 있는 사람인가?
1) 바리새인들
2) 근거는? 자신들의 의로운 행동들, 세리처럼 나쁜 행동을 하지 않음을 자랑하는 점에서.
- 토색(강도),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한다고 말하는 점에서
-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즉 대속죄일 때만 금식해도 된다(레 23:32) 그런데 월요일과 목요일에 금식했다고 자랑하는 점에서. 금식은 영적 가치가 있지만 그들이 하는 금식은 남에게 인정 받으려는 마음이 컸다.
그들은 도덕적으로 반듯하고 인격도 좋으며 신앙생활에도 부지런했다. 비록 서로 자기 의를 자랑한다 할지라도 적어도 세상의 질서만큼은 어지럽게 되지는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세상도 교회도 세리보다는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을 원하는 것이다.
3) 왜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칭찬을 받지 못했을까?
그가 한 모든 행위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세리라는 자와의 비교를 통해 상대적 우월감을 누리고, 자신의 깨끗함과 종교적 열심을 자랑하기 위함에서 나온 것이라는 게 하나님의 노여움을 유발해 낸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율법을 율법의 본질인 사랑과 은혜로 풀어내지 못하고, 자신을 자랑하고, 남을 비방하는 데에 쓰는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비판을 받게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심판하시는 근거는 토색, 불의, 간음이 아니라 자기 사랑이라는 완악함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무시하고 그 분의 영광을 탈취하여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인간의 자기 사랑은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무시하는 행위이다.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것은 바로 인간의 자기 사랑과 자기 영광 챙기기이다.
주님은 그토록 열심히 종교 행위를 했고 그토록 열심히 착한 일을 행했던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시기도 하셨다.
(요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이렇게 착한 일이든 악한 일이든 자기의 영광과 가치와 자랑과 만족을 챙기기 위한 모든 시도가 귀신들린 자의 행위라는 것이다.
4) 바리새인들이 스스로 의롭다고 착각한 믿음을 가진 이유는?
- 바리새인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했다. 이것은 세리와 다른 점이다. 이것이 착각하는 믿음을 가져 오게 된다.
우리는 누구인가? 엡2: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골 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 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바리새인이 행함(자기의 글)을 드러낸 이유는 자기가 죽은 자이고 소망이 없는 자임을 모르기 때문이다. 즉 자아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예) 죽은 시체에 아무리 화장을 해도 예쁘지 않다. 바리새인의 선한 행동은 바로 이와 같이 죽은 시체에 화장하는 것과 같았다.
-남보다 더 반듯하게 살았다는 것 때문에 자신을 나은 자로 여기는것이야 말로 자신을 높이는 바리새인의 속성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럴 때 자신이 의를 행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는 자였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5) 자기 부인이 없으니 기도하는 태도가 교만한 태도가 된다.
서서 기도하는 태도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의도이다. 따로 기도하는 태도는 자기는 의로운 사람이므로 세리와 같은 사람과 다르고 상종도 하지 않겠다는 의도이다. 바람직한 기도 자세 아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같지만 실제는 자기 이야기하는 것이다.
3. 반면에 세리는 누구였나?
1) 반면에 유대인들에게 세리는 로마를 위해 일하는 매국노였으며 세금을 과다하게 부과하고 강제로 거둬들이면서 토색하고 자기 배를 불리는 악한 죄인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둘 중 누구를 참된 신앙인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2) 세리가 뭘 했나? 기도하는 태도 부터 달랐다 .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고 자신의 죄 된 실체를 올바로 자각하고 하나님의 긍휼에 자신을 맡겨 버렸다. 뭐 대단한 종교 행위를 하는 것도 아니고 대단하게 착한 일을 했다는 기록도 없다. 그냥 ‘난 하늘을 쳐다 볼 자격도 없는 그런 죄인입니다. 저 좀 도와주세요.’하고 진심 어린 자기 부인을 하고 있다. 그게 진짜 낮아지기의 삶이다.
인간은 그렇게 예수라는 구원자 앞에서 ‘저는 주님에 의해 구원을 받아야만 하는 죄인에 불과합니다. 저를 구원해 주세요’라는 고백을 하는 자리에 서야 한다. 그때 존재는 비로소 살아있는 존재가 된다.
3) 죄인 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죄 없음을 선고 받았다.
- 마가복음 2: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 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 롬 4:24-25 24.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25. 예수는 우리가 범죄 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결론:
자신이 이미 죽은 자이고 소망이 없음을 제대로 알았더라면 비교하지 않고 겸손 할 수 있다. 죽은 자를 두고 누가 더 낫다고 비교하는 것만큼 헛된 일이 없다. 세리는 죽은 나를 살리는 능력이 주께 있음을 믿으며 주만 바라볼 뿐 이었다.이로 인해 세리는 은총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의인이 된 것이다. 자아가 죽었기에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바라 볼 수 있었다. 하나님이 의로 여기시는 의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가능하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자신이 죽은 자임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내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이 죽음에서 벗어날 길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음을 고백하고 구원의 이르는 믿음으로 살기를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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