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
우리는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가 되고 싶어 한다.
오늘은 그런 삶을 살기 위해 기초가 되는 것에 대해 알아보자. 진정한 제자가 되는 길은 그리 쉬워 보이지만은 않는 것 같다.
본문 배경:
1. 21절 이전
16:13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6:14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6: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에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16:20 이에 제자들에게 경고 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2. 22절 설명
21절에서 이 때는 바로 이 때를 가리킨다.
21절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내용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설명하셨다는 의미)” =>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 1) 고난 받고 2) 죽임을 당하고 3) 제삼 일 만에 부활할 것.
3. 22절 설명
예수님의 설명에 베드로의 반응=> 항변하여 이르되: 22절 => rebuke him => he really spoke very strongly
이유=> 베드로는 메시아 관점(영광의 왕으로 오신 메시아. 세상을 심판하고 다스려야 할 메시아. 고난은 있을 수 없는 메시아)에서, 예수님은 죽음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
“이젠 수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따릅니다. 그런데 왜 죽으려고 하십니까? 만일 그들이 죽이려고 해도 당신을 따르는 이 많은 사람들이 지켜 줄 겁니다. 그러니 예루살렘에 간다는 말과 죽는다는 말은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이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런 말이 마치 예수님을 사랑해서 하는 말 같지만 어찌 보면 그 내면에는 그동안 예수님과 함께 보냈던 시간이 아까웠을 수도 있고 또 자기가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예수님이 죽으면 없어 질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베드로의 말에 예수님은 23절에서처럼 답변하심.
4. 23절 설명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마 4:10을 연상시킨다. 베드로가 아닌 사탄을 질책하셨다. 베드로가 말은 하지만 사탄이 그 뒤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가복음 4장 13에서는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에서 사탄이 잠시 떠나 있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다시 사탄이 시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탄은 끊임없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사탄이 베드로를 이용하는 줄 알고 계셨다. 사탄은 십자가가 결국에는 그의 머리를 부술 것으로 알고 있었다. 십자가가 죽음의 권세를 깨뜨릴 것을 알았다. 십자가가 사람들을 죄로 부터 자유롭게 하고 결국에는 그의 왕국이 멸망할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는 것 만은 막아야 했다. 그래서 사탄은 십자가를 경멸했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지 말라고 유혹하고 십자가 없이 영광과 권세를 누리라고 유혹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이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고 말씀하셨다. 사탄은 예수님을 넘어지게 하는 자이다. 예수님을 넘어지게 한다는 뜻은 곧 예수님이 하실 일을 못 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것이 사탄적이고 마귀적인 일인 것이다.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베드로는 심한 충격에 빠졌을 것이다.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지 않도록 하고자 했는데(사탄의 화살 공격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사탄이라니. 그리고 예수님을 넘어뜨리게 하는 자라니. 예수님을 위해서 ‘절대로 죽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는데 오히려 그 말과 생각이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을 생각한 것이라니..
23절의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는 배워야 할 것이 있다. 베드로의 행동이 일반적으로 우리가 범하기 쉬운 것임을 알아야 한다. 제자란 누구를 말하나? 제자는 스승의 뜻을 잘 받들어 그분의 말을 따르는 사람이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한 조건은 사람의 일(자기중심적인 생각)보다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24절 말씀처럼 자기 부인(self-denial)을 해야 한다. 자기 부인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자신의 일을 생각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라 정의 할 수 있다.
자신의 생각을 앞서기 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는 것이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일 곧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이 죽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 인간들을 위해서 고난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관점에서의 십자가는 영광의 극치인 반면에 사람의 관점에서 본 십자가는 실패의 상징이고 우매한 것이다.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은 다르다.
여기서 베드로는 전형적인 자기중심적인 사람으로 표현 되었다. 현재의 고통을 피하기만 생각하는 자기 중심적인 생각에 사로잡히니 십자가의 죽음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생각할 수 없고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 할 수 없게 되었다. 반석으로 표현된 자신이 이제는 예수님의 일에 있어서 방해 꾼이 되어버렸다. 자기 부인이 없으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방해꾼이 얼마든지 될 수 있다.
왜 자기 부인을 말씀하시는가? 바로 이런 배경에서 비롯되었다.
자기 부인의 뜻-예수님의 모범을 통해서:
자기 부인은 자긍심(self-esteem)을 버려라라는 뜻이 아니다. 또한 어떤 선한 일을 하기 위해 자기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을 포기하는 정도가 아니다. (고아원이나 양로원 방문을 위해서 자신의 시간을 포기하는 것등) 이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
예수님 생애 자체가 자기 부인함의 삶이었다. 자기 부인이란 어떤 것인가를 예수님이 먼저 본을 보여주셨다. 그랬기 때문에 우리에게 자기 부인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을 통해 자기 부인이란 어떤 것인지를 살펴 보자.
1) 요 6: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자기의 생각을 이루려고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온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자기 부인이란 사람의 뜻을 이루는 것 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내세우기 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는 자세이다. 베드로는 자신의 생각을 내세웠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기부인이 없는 베드로를 향해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자기 부인이란 결국 자신의 일보다 하나님의 일을 행하려 하는 자세라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자기 부인이 없이 베드로가 한 행동은 예수님을 오히려 비난하게 된다. 자기 부인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보다 우선하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비난하게 되어있다. 어떤 때는 하나님을 원망한다. 그러면서 오히려 하나님을 자신의 생각에 맞추려고 한다. 자기 부인이 없는 사람의 기도와 자기 부인을 날마다 하는 사람의 기도의 차이점은 자신의 기도를 하나님의 뜻에 초점을 맞추고 있느냐 아니면 하나님을 자신의 기도 제목에 맞추고 있느냐의 차이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이 자신을 통해 이루어 지기를 갈망하기 때문에 매 순간마다 자신을 향해서는 no, 하나님께는 Yes라는 자세로 살려고 노력한다. 자신의 생각을 죽이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만 옳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힘들겠나? 어떤 때는 내 생각이 맞는 것 같은데 그래도 하나님이 옳다고 믿고 내 생각을 접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좋고 선한 일 같아도 하나님의 뜻에 위배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살기 때문에 자신이 인생의 주인공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 인생의 주인공으로 모시고 살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신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삶까지도 지배하도록 할 수 있다. 이런 자세로 살기 때문에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이 먼저 이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과 그의 나라에 대한 것을 우선순위에 두려고 한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자기 부인하는 삶이란 지속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이다.
하나님은 결국 날마다 자기 부인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을 통해서 그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신다. 그래서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은 비로소 진정한 제자가 될 수 있다.
2)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 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 자기 부인이란 자신을 비우는 것, 자기를 낮추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인 예수님이 종의 형체인 육신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그 자체가 자기를 낮추는 것이며 진정한 겸손의 자세라 할 수 있다. 이런 겸손은 섬김을 받기 보다는 오히려 섬기게 한다.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 자기 부인이 된 사람은 오히려 남을 섬기는 사람이다.
고후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써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 스스로 부요를 포기하시고 가난하게 되셨으니 뭘 더 포기 할 수 있겠는가? 이런 예수님을 닮아 가기 위해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에겐 능력이 나타난다.
결론: 자기 부인이 주는 유익
1) 자기 부인을 할 수 있어야 십자가를 질 수 있다.
24절 말씀에서 처럼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왜냐면, 십자가를 지는 것은 굴복하는 것이다. 자기부인이 안된 상태서 어떻게 십자가를 질 수 있겠는가? 결국은 날마다 자기 부인을 하며 사는 사람은 십자가를 질 수 있는 것이다. 십자가를 진 사람은 십자가를 지게 한 로마의 법이 맞고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말하므로 하나님의 법이 맞고 내가 틀렸다는 것을 항상 생각하기 때문에 십자가를 질 수 있다.
2) 자기 부인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남을 축복할 수 있다.
마 10: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 자기 부인을 하지 않는 성도들은 남이 잘 되는 것이 배 아프다. 자기 부인을 하지 않는 목사는 다른 교회 성장하는 게 배가 아프다.
"테레사 수녀: 예수님은 위대한 행동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이 원하시는 것은 자기 부인과 감사 뿐입니다. 자기 부인의 삶은 능력이 있고 그 삶 자체가 설교입니다."
영성의 본질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완전하고 철저한 자기를 부인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기를 부인하면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고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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