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
한국은 인구 10만 명당 자살 사망자 수가 24명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정신의학계에서는 자살자 3명 중 2명은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본다. 이만큼 우울증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필라델피아도 미국에서 시카고 다음으로 우울증이 높다는 보고를 본 적이 있다.
성경에서 우울증
다윗의 경우:( 사울에게 쫓기고 아들에게 반란을 겪으면서 우울증을 겪었다. 시 38:6 내가 아프고 심히 구부러졌으며 종일토록 슬픔 중에 다니나이다 38:7 내 허리에 열기가 가득하고 내 살에 성한 곳이 없나이다 38:8 내가 피곤하고 심히 상하였으매 마음이 불안하여 신음하나이다 )
예레미야 경우: 바빌론 침략을 통한 야훼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그의 강력한 설교 내용 때문에, 심한 박해를 겪어야 했다. 왜냐하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이 다윗 왕조와 맺으셨다는 언약에 근거, 야훼의 성전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자만했는데,[3] 이에 대해 예레미야는 너희가 율법, 즉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면서 죄를 짓는 생활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심판이 있을 것이라며 유다 백성들의 비위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자신의 고향인 아나돗에서 위협을 받았고, 예루살렘의 제사장들과 하나님의 심판은 없다는 거짓 예언을 하면서 대중들의 비위를 맞추는 거짓 예언자들에 의해서 생명을 위협받기도 했으며[4], 여호야김 왕에게 위협을 느껴 도피했고, 거짓 평화를 외치는 예언자인 하나냐에 의해서 공적으로 모욕을 받았으며 웅덩이에 던져지기도 했다.
본론:
오늘 본문의 엘리야도 우울증에 빠진 것을 볼 수 있다. 우울증 환자가 주로 택하는 극단적인 방법인 자살하는 것처럼 엘리야도 죽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1. 과거에 그는 누구였나?
1) 기적들: 야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약 5:17) 사르밧 과부의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죽은 외아들을 살렸다.
2) 갈멜산 사건: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을 갈멜 산으로 모아.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말며.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하니라.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2. 우울증에 걸린 이유?
엘리야는 지금 depression 가운데 있다. Depression은 다음의 2가지 때문일 것이다.
1) 하나는 삶의 방향을 잃어 버릴 때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뭘 해야 할지를 잃어 버릴 때이다. 갈멜산에서 승리한 후에 아합이 변하든지 아니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힘 입어 이스라엘에 대해서 힘찬 개혁을 하는 것이 엘리야의 삶의 목표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백성들의 지지도 없고 아합이 변하기는 커녕 그 아내 이세벨의 살해 협박으로 인하여 삶의 방향을 잃어 버리게 되었다.
2) 두 번째는 심각한 생명의 위협에 처해졌기 때문이다. 1-2절: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이렇게 삶의 방향을 잃고 또 생명의 위협까지 받으니 결국 살고 싶은 의욕이 없어진 것이다. 아무 의욕이 없는 것이 바로 depression이다. Depression은 삶 전체를 무너지게 한다. 엘리야가 바로 그런 죽음의 위기의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래서 어느 때 보다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필요했다.
3. 이런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하시는가?
1) 바로 이때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행하신 일은 무엇이었는가?
기적을 보여 주셨는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호렙(시내) 산까지 가게 하셔서 거기서 하셨던 일은 세미한 음성을 들려주신 것이다. 호렙산(시내산)은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고 또한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을 받은 곳이다. 여기에 의미가 있다. 왜 우울증에 빠진 엘리야를 호렙으로 부르셨는가? 그것은 우울증에 빠진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야 하고 또한 말씀을 들어야 근본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음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였다.
2) 세미한 음성으로 다가 오심
나는 엘리야가 들었던 그 음성이 세미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성경에는 세미하게 표현되었지만 아주 작은 그런 의미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을 인간이 범죄 한 이후로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임재하셨던 하나의 방식으로 생각한다. 인간은 범죄 한 이후로 하나님과 communication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귀는 열려있지만 못 들었다. 눈은 떠 있지만 본다. 결국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졌다. 그 이후로 하나님은 어떻게 인간과 교제하셨느냐 바로 이런 방식으로 교제하셨다.
아담이 처음 범죄 했을 때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고 물었던 바로 그 방식이다. 가인이 범죄 했을 때 네 아우는 어디 있느냐라고 물었던 그 방식이다. 이런 방법이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했던 것이고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내셨던 방법이다. 이것이 바로 자고 있던 사무엘에게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셨던 그 음성이고요,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실 때 이는 사랑하는 네 아들이라고 했던 바로 그 음성이다. 바로 그 음성을 엘리야가 들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그 세미한 음성은 구체적으로 어떤 음성인가?
하나님의 그 음성은
첫째로 사랑을 담은 음성이다. 12절 말씀을 보면 , 하나님의 음성을 세미한 음성이다. 아주 부드러운 음성이다. 다른 표현을 쓰지 않고 속삭이는 듯이 말씀하신 것은 바로 사랑으로 말씀하신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웅장하게 가 아니라 gentle whispering 하게 말씀하신다는 것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스럽게 말씀하신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그 음성 앞에 가면 우리의 설움이 폭발하게 된다. 그래서 엘리야가 10절처럼 말하게 된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히 유별하오니(열심히 섬겼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모든 설움이 세밀한 음성 앞에 폭발했다.
두 번째로 그 음성은 우리의 존재를 일깨워 주는 음성이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우리의 identity에 대해서 일깨우는 음성이다. 13절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물으시길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영어 번역이 더 마음에 와 닿는다 What are you doing here?(새 번역-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What are you doing here? 이건 책망이 아니에요. 조소나 비웃는 게 아니다. 깨우는 것이다. 잃어버린 어떤 것을 일깨우시는 말씀이다. 이것이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제대로 깨우치지 못하면 제대로 깨달을 수 없고 살아 갈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람이 패배자의 되어서 있으면서 나는 끝났구나 이젠 소망이 없구나 라고 절망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온다. 바로 What are you doing here? 우린 그 음성을 들어야 한다.
바로 그 음성은 우리의 존재를 깨우는 음성이다. 그 음성을 들으면 그 때 부터 사람들이 일어선다. 절망, 좌절 등과 같이 죄가 쳐 놓은 그물에 우리가 안 빠질 수는 없다. 빠질 수 밖에 없지만 거기서 찾아 오시는 그 음성을 듣는 게 더 중요하다. 그것이 신앙이고 영성이다.
음성은 세밀하고 부드럽지만 우리들의 결단은 확실해야 한다. 일어서서 단호하게 나아 갈 때 믿음의 역사가 일어 난다.
세 번째로 그 음성은 구체적으로 우리의 인생을 인도해 주시는 음성이다.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은 막연하고 공허한 게 절대 아니다. 그 음성에는 너무도 구체적인 삶의 방향이 들어 있다. 잃어버인 삶의 목표와 방향을 말해 주신다. 15-16절 읽자.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도 구체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제는 그 음성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추상적이거나 현실적이 아니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그 사람들은 아직 하나님의 진정한 말씀을 못 들었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음성은 세미한 음성이지 희미하거나 모호한 음성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제대로 듣기만 한다면 그 음성에는 구체적인 direction이 다 들어가 있다. 문제는 안 들어서 문제이다.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 이것은 우리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마스터 키와 같다.
4. 아예 이젠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심:결론 우울증에 빠진 엘리야에게 세미한 음성으로 오신 하나님이 이젠 영적 우울증에 빠진 우리를 위해 예수님이 오셨다. 우리 인간들과 함께 살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려 주셨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돌아 가심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바로 만날 수 있는 통로를 제시해 주셨다. 최종적으로 하늘 나라로 가면서 아예 우리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도록 성령을 보내 주셨다. 성령 하나님께서 늘 항상 거하시면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다. 이런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길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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