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묵상

손바닥 묵상 1 - 나훔서 묵상

차작가 2023. 12. 2. 09:15

나훔서에는 니느웨의 심판과 이스라엘의 위로가 쓰여 있다.

나훔서는 전쟁영화 같기도 하고 공포영화 같기도 한 느낌으로 쓰여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전쟁통에도 위로가 있고 휴머니즘이 있는 것 같이 어김없이 이곳에도 이스라엘을 압제한 앗수르에게

분노하시고 심판하시므로 이스라엘의 위로가 되어주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이기적이라 위로의 말에 위로를 참 많이 받는다.

그 속에는 나는 니느웨 같지 않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에게 유리한 말씀을 편식하게 되나 보다.

그렇지만 나도 살고 싶고 위로를 받고 싶은 며칠이라.. 그냥 이기적으로 압제 받는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묵상을 했다.

1:6 누가 능히 그의 분노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의 진노를 감당하랴 그의 진노가 불처럼 쏟아지니

말미암아 바위들이 깨지는도다

1:7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하나님은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이시므로 반드시 죄에 대하여서는 분노하시고 심판을 하시는 분이시다.

그런 하나님의 분노는 아무도 막을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그분은 사랑이시다.

그분 만이 완전한 선이시며 그분만이 우리를 그 압제에서 구원할 수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는 반드시 보호하시는 분이시다.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이 말씀은 믿는 자녀에게는 큰 힘이 되는 말씀이다.

누가 이 환난 날에 산성이시다라는 말씀을 나처럼 이해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처럼 아프고 힘들어 보지 않고서는 이 의미의 진가를 알지 못할 것이다.

이 말씀은 살아있어 지금 나에게 역사하고 있으며 나를 절망 가운데서 일으키고 있다.

며칠 동안 오해로 말마임아 큰 아픔을 겪었다. 뭐.. 달라스에서 첫 시련이라고 할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유리하다고 느낄 때는 나는 그 사람에겐 자매가 되고 자신이 불리하면 나는 사모로 만들어 버린다.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한 교회의 새 신자이며 교회에 나온 지 6개월 된 한 목장의 목원으로 소속되어 있다.

 

그런데 갑자기 너무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런 관계에서 오는 공허함이었다.

오늘에서야 마음이 진정이 되고 편해졌다.

그래서 이젠 불공정한 계약은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본적으로 누구나 외로운 삶이다.

하나님만이 선하시고 환난 날의 산성이시므로 나의 산성이 되시는 그분을 바라보며 살아야겠다.

더 이상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건 에너지 소모라는 생각이 든다.

불가능한 건 빨리 접고 가능한 하나님께 집중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나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얼마나 감사한가!

하나님은 꿈꿔도 닿지 않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인격이시기에 완벽하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하나님만 의지하길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