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말씀 묵상

느헤미야 8장에서 13장까지 묵상

차작가 2023. 9. 25. 12:25

1차 포로 귀환은 스룹바벨의 인도하에 49,897명이 이루어지고 성전 재건은 스룹바벨을 통해 이루어진다.

2차 포로 귀환은 1,754명이 에스라의 인도하에 귀환이 이뤄진다.

1,2차 포로 귀환은 에스라서에 기록되어 있다.

2차 포로 귀환 때 느헤미야가 에스라와 함께 협력하여 사역하고 느헤미야를 통해 성벽 재건이 이뤄진다.

3차 포로 귀환은 느헤미야의 인도하에 42,360명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게 기록되어 있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하고 나서 에스라를 통해 말씀을 회복하는 내용이 오늘 8장에서 13장까지 다룬다.

오늘 다룰 내용이 느헤미야의 핵심 내용이다.

이 모든 과정을 성경을 역사 순으로 배열하면 먼저 에스라 1장에서 4장 그리고 학개서 다음 스가랴 다음 에스라 5장에서 6장

다음 에스더 다음 에스라 7장에서 10장 다음 느헤미야 마지막으로 말라기서이다.

왜 이렇게 역시 순으로 배열하냐면 고레스왕에서 다리오왕 에스더의 남편 아하수에르왕 느헤이먀의 아닥사스다왕으로 시대가 변하기 때문이다.

이런 순으로 성경을 읽으면 훨씬 더 재미있다.

느헤미야서는 7장까지는 성벽을 재건하고 지도자를 세우고 포로에서 귀환한 사람들을 기록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오늘 8장에서는 가장 핵심 내용이 시작된다.

8장 1절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각자의 성읍에 거주할 때 일곱 달이 지났을 때 모든 백성들이 일찍이 수문 앞 광장에 모여서

에스라에게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한다.

이제부터 머리로 이 광경을 상상하면 은혜가 되고 이해가 쉽다.

광장 앞에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에스라가 회중 앞에 율법책을 가지고 와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읽는다. 그때 사람들은 그 말씀에 모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광장 앞에는 에스라가 특별히 제작한 나무 강단이 기다랗게 놓여 있고 에스라를 중심으로 좌우로 제사장들이 서있다.

사람들은 에스라가 율법책을 읽자 "아멘 아멘" 하고 손을 들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을 하며 여호와께 경배한다.

백성들은 율법의 말씀을 듣고 울고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인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고 울지 말라"말한다.

느헤미야는 다시 백성들에게 돌아가 살찐 것을 먹고 단것을 마실 때 혹시 준비 못 한 사람들에게는 나누어주라 한다.

왜냐면 이날은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고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고 말한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듣자 그 말을 밝히 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였다.

그 이튿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이레 동안 절기를 지키고 여덟째 날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다.

그달 스무나흘 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금식하고 굵은 베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했다.

그동안 하나님이 광야에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고 죄가운데 있는 그들을 용서하심에 감사했다.

주께 부르짖을 때에 하늘에서 들르시고 크신 긍휼로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심에 감사했다.

그들은 그동안 9장 29절에 "다시 주의 율법을 복종하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경계하셨으나 그들이 교만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 가운데에서 삶을 얻는 주의 계명을 듣지 아니하며 주의 규례를 범하여 고집하는 어깨를 내밀며 목을 굳게 하여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이 죄를 범하였음을 고백했다.

그들은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이제는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다 봉인하였다.

그 언약에 사인한 사람들의 이름들과 내용이 10장에 기록되어 있다.

그중에 가장 핵심은 바로 영적 개혁이다.

영적 개혁 핵심의 첫 번째는 언약을 다기 새기고

두 번째는 이방 여인과 통혼하지 않고

세 번째는 안식년과 안식일을 지키고

네 번째는 성전세와 제단 나무를 드리고

다섯 번째는 제사장과 레위인 후원과 헌신을 다짐하는 것이다.

이것이 느헤미야의 영적 개혁이다.

솔로몬의 이방 여인들과 혼인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종교 혼합주의가 일어나 하나님의 진노를 샀고

안식년과 안식일을 그들의 욕심으로 지키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제사장들에게 당연히 주어야 될 십일조도 드리지 않았다.

그래서 제사장들은 먹고살기가 힘들어 뿔뿔이 흩어지고 결국은 하나님의 전을 버리게 된 것이다.

이 모든 개혁에 그들은 동의하고 사인한 것이다.

그러나 누가 이 예루살렘에 살 것인가에 대해서 결정을 해야만 했다.

왜냐면 성전과 성벽은 완전하게 재건되었지만 그들이 거주할 집들은 성 안에 아직 지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대부분은 각자가 거주하고 있는 성읍이 있었으므로 자기의 집을 버리고 다시 예루살렘 안으로 들어오려면

거주할 집을 지어야 하는 수고로음과 주위에는 위협하는 사람들로 인해 어려움도 감내해야 했기 때문이다.

지도자들은 이미 예루살렘에 거주하였지만 그 남은 백성들은 제비를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 성에 거주하게 하고

나머지 십분의 구는 다른 성에 거주하기로 했다.

11장 이후에 나오는 말씀은 그 거주지에 따라 기록한 내용이다.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백성들은 복을 빌어 주고 각자의 성읍에 거주하게 된다.

느헤미야는 이 모든 과정을 정리하고 다 함께 모여 성벽 봉헌 예배를 드린다.

예루살렘 성벽을 그림으로 보면 상상하기 좋다.

나는 그림을 보며 읽었는데 모양이 삼각 깔때기를 거꾸로 엎어 놓은 모양이다.

분문은 남쪽에 있고 이곳은 짐승들의 오물과 쓰레 크기를 배출하는 곳이다.

그리고 분문 바로 위는 샘문이 있고 그다음 위는 수문이 있고 그다음이 마문이고 다음이 동문이고 다음이 함밋갑문이고 여기까지는 동쪽이며

다음이 양문 다음이 어문 여기까지는 북쪽이고

다음이 옛 문 다음이 골짜기문이다. 여기까지는 서쪽으로 배치되어 있다.

총 문이 10개이다.

이 성벽 위에 올라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찬양을 한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몸을 정결하게 하고 또 백성과 성문과 성벽을 정결하게 하고 난 뒤 유다 방백들을 성벽 위에 오르게 한다.

그리고 감사 찬송하는 사람들을 두 무리로 나누어 성벽 위로 대오를 지어 가게 한다.

그리고 모든 무리가 큰 제사를 드리고 함께 즐거워했다. 그 소리가 멀리서도 들렸다.

그러나 이 개혁은 끝까지 잘 지켜지지 않았다.

13장에 보면 그들의 그 인봉한 결심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건축하고 난 뒤 아닥사스다왕에게 돌아갔고

이후 아닥사스다왕 제32년에 느혜미아가 왕에게 나아가 왕에게 말미를 청하였다.

왜냐하면 엘리아십이 도비야를 위해 하나님의 성전 뜰에 방을 만든 악한 일을 한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느헤미야는 이 일로 심히 근심하여 도비야의 세간을 그 방 밖으로 다 내던지고 사람들에게 명하여 그 방을 정결하게 하고

다시 하나님의 전에 그릇과 소제물과 유향을 들여놓았다.

이 일을 자세히 알아본즉 레위 사람들이 받을 몫을 주지 않고 레위 사람들이 직무를 행하는 노래하는 자들이 각각 자기 밭으로 도망하였기로

민장들을 꾸짖으며 "어찌 하나님의 전이 버린바 되었느냐 레위 사람들을 불러 모아 다기 제자리로 세워라"했다.

그들 중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 요야다의 아들 하나가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으므로 느헤미야는 내 쫓아 버렸다.

그리고 다시 레위 사람들을 각자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거룩하게 하고 자신의 직무를 감당하게 하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게 하고

레위 사람들이 받아야 할 몫을 받게 했다.

오늘 말씀 중에 세 가지가 인상 깊었다.

첫 번째는 성벽이 재건되자 두 무리가 나뉘어 좌우로 나팔을 불며 행진을 하고 함께 번제를 드리는 장면이었다.

두 번째는 온 백성이 함께 모여 서서 모세의 율법을 에스라가 낭독하는 것을 듣고 회개하고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마지막으로는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하고 난 후 페르시아로 돌아갔다가 백성들의 범죄함을 듣고 다시 돌아와

꾸짖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모습이 무엇보다 가슴에 와닿았다.

느헤미야와 에스라를 통해 무너진 성전과 성벽이 재건되고 무엇보다 말씀을 통해 무너진 백성들의 마음이 회복되어

영적인 회복을 이루는 진정한 회복이 이뤄짐을 보았다.

인간은 연약하여 또 무너지지만 참 어른이 있어서 잘못을 지적하고 그들을 세우는 느헤미야를 통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이 땅에는 교회는 많이 있으나 진정한 교회는 많이 사라지고 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르게 서야 하겠지만 잘못을 지적하고 훈계할 진정한 선배 어른이 이 시대에 필요하다.

잘못을 지적할 줄 모르는 어른들.... 오히려 잘못된 관습을 통해 교회를 더 무너뜨리는 영적 지도자들로 인해

교회는 더 병들어 가고 앞으로 미래는 암담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왜 이 시대에는 잔정한 리더인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같은 사람이 없을까?라고 한탄하기 보다

우리가 에스라와 같은 목사 또는 사역자

느헤미야와 같이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바로잡아주는 평신도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말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