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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3장 12~14절

차작가 2024. 4. 13. 11:10

12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절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절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보충 설명:

12절

사도 바울이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천국이나 구원의 문제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즉 천국이나 구원을 이미 얻은 것도 아니고 온전히 이룬 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천국을 두고 하는 말이라면 결국 사도 바울은 천국을 얻고 구원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 힘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말을 살펴보면 사도 바울은 먼저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되었음을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그리스도 예수께 붙들려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어떤 체험을 어떻게 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든 상관없이 예수님이 우리를 붙들었다는 것이다. 결코 우리 스스로 예수님을 찾아 나온 것이 아니다. 이것을 두고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것으로 말하는 것이다.

또 하나님이 부르셨다고 해도 하나님이 그 속에 성령을 보내셔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을 수 있는 자로 만드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결국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과 긍휼과 능력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모두가 하나님에 의해서 된 것이다. 이것을 두고 하나님에게 잡혔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잡힌 바 된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잡힌 바 된 그것’이라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사도 바울을 붙잡은 목적을 두고 하는 말이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에게 잡힌 바 된 것은 아무런 목적도 이유도 없이 무작정하신 일이 아니다. 뭔가 하시고자 하는 일이 있고, 이루시고자 하는 뜻이 있었고, 그 일에 바울을 부르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께 부름을 입은 자들은 예수님이 자신을 왜 부르셨는지를 깊이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결국 바울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자신을 택하시고 부르셔서 자신을 붙잡으신 그 뜻과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간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사도 바울이 자신의 전 생애를 두고 목적하는 것이고, 이것이 곧 바울에게는 삶의 의미요 이유였던 것이다.

13절

신앙에는 완성이란 게 없다. 즉 점진적으로 완성을 이루어 가는 ‘성화’를 신앙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물론 ‘성화’ 자체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간이 점차적으로 나아져 가는 차원에서의 성화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스스로를 봐도 알 수 있듯이 나아진 듯 보이다가도 어떤 상황과 계기가 주어지면 감추어져 있던 우리의 본성이 그대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때문에 성경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성화’는 하나님을 알 수 없는 인간이 성령에 의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에 대한 마음이 상실되지 않고 날마다 붙들려 있는 것으로 말할 수 있다. 즉 성화는 흔히 이해하는 것처럼 인간의 노력이 만들어 내는 어떤 열매가 아니라 성령에 의해서 하나님께 잡힌 바 된 신자로 살아가는 것 자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신자가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가 구원을 얻기 위한 것이 전부라면, 그리고 세상에 생존하는 동안에 열심히 주님을 섬김으로써 나중에 하늘에서 상을 받기 위한 것이 전부라면 결국 믿음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 주어진 선물이라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아직 잡은 줄로 여기지 않았다는 말은 바울이 자기 구원을 위해서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만약 바울이 자기 구원을 위해서 그리스도를 믿었던 것이라면 분명 바울은 이미 잡은 자이다. 즉 믿음의 목적이 이미 이루어진 상태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바울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미 구원된 자였기 때문이다.

바울이 잡고자 하는 것은 자신을 붙잡으신 하나님의 뜻이었지 자기 구원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뜻을 잡기 위해서 산다는 것 역시 하나님의 뜻을 완성시키기 위해 산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을 두고 한 말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14절

앞의 것을 바라보고 좇아간다고 할 때 한 가지 주의할 것이 있다. 그것은 본문에서 말하는 ‘푯대’ 그리고 ‘하나님이 부르신 부름의 상’이라는 용어로 인해서 바울이 마치 하늘에서 받게 될 상을 기대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거 바울은 이미 하늘의 모든 것을 얻은 자였다. 하나님의 약속 안에 있었던 바울이기에 자신이 하고 못하고 와 상관없이 약속 안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것으로 여겼던 바울이었다. 그러므로 상을 얻기 위해서 좇아가는 바울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부름의 상’이란 신자가 열심히 함으로써 그 대가로 주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이미 포함되어 있는 열매인 것이다. 즉 하나님의 부르심은 상까지 포함된 부르심인 것이다. 우리가 잘했다 못했다 와는 전혀 상관없이 약속된 상이다. 그러므로 부름의 상을 위해 좇아간다는 것은 상을 얻기 위해서 열심히 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에 약속되어 있는 상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신자가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려야 할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를 날마다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새로운 하루에서 새로운 일을 겪으며 새로운 교훈을 가르침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뒤에 있는 것에 붙들려 있을 수 없다. 날마다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새로운 교훈을 배우며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하루를 잘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적용: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목적을 깊이 생각해 봤었다.

그리고 나를 목회자의 아내로 살게 하신 목적도 생각해 봤었다.

그 부르심의 목적에 잡힌바 되어 살아가길 소망한다.

불교 가정에서 태어난 나를 택하셔서 온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게 부르셨고 믿음의 자녀를 낳고 말씀으로 바르게 양육하는 부모로서도 부르셨고 사역도 하게 부르셨고 지금은 나와 남편을 좀 더 광범위한 사역을 하게 하셨다.

나는 무슨 일을 결정할 때 항상 " 하나님의 뜻일까? 하나님이 나에게 두신 목적에 부합할까?" 하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매번 던지는 질문이지만 늘 고비가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나의 삶에 언제나 최선이었음을 안다.

그리고 후회함이 없다.

그래서 항상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