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절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10절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11절 "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2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보충 설명:
9절 이렇게 내려오셨던 그분은 다시 올라가셨다. 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완성하시기 위해 다시 올라가셨다.
10절 올라가신 이유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 모든 것을 완성하시기 위해서이다) 너무나 불완전한 상태의 온 세상을 완전하게 회복시키기 위해서이이다. 하늘에만 계셨더라면 하늘의 복만을 받았을 것이고 땅에만 계셨더라면 땅의 복만을 받았을 것이다. 고로 하늘과 땅 모든 것을 완성하셨다.
11절 하나님의 진리를 배우기 위해 두 가지 방법 주셨다. 하나는 교회를 통해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을 통해서이다.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사람 등은 가르치는 사람을 뜻한다. 하나님은 개인적인 명상이나 묵상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겠지만 하나님은 교회와 교회에서 세운 가르치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배울 수 있게 하셨다. 예수님을 믿고 새사람이 되어도 우린 영적 어린아이 상태이다. 그래서 우린 하나님 말씀을 충분히 먹고 자라야 하기 때문에 진리의 말씀을 배워야 한다. 교회에서 함께 배우는 말씀의 강도와 깊이는 혼자서 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성장을 가져온다. 혼자만 배울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혼자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죄의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목사는 가르치는 것에 장로는 치리와 행정에 성도는 돌봄에 최선을 다할 때 교회는 그 역할을 잘 감당해 갈수 있을 것이다.
12절 교회에 가르치는 직분자를 세우신 이유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시려고 하는 것이다.
성도를 온전케 한다는 의미는 깨어진 부분을 때워 모양을 제대로 갖추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은 우리의 깨어진 부분을 일일이 때워서 제대로 된 인격을 만드는 것이다. 상처 난 부분을 말씀으로 잘 때워 일일이 치료받아야 한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성숙과 소망에 이르게 한다.
12절에서 말하는 봉사의 일은 교회의 봉사가 아니라 예배를 드리는 걸 뜻한다. 우리가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최고의 기도 찬양 말씀을 청종하는 자세를 통해 우리의 예배의 기쁨이 회복된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이 복이라는 말씀이 예배를 통해 이루어진 는 것이다.
흔히 우리가 예배시간 은혜받는다고 말하는데 이런 소극적인 예배가 아니라 우리가 예배 시간 최고의 서비스를 하나님께 드리므로 우리가 하나님 가까이 가는 복을 누리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움은 교회를 온전케 자라게 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전을 짖는 것이 우리가 잘 자라는 것이다.
적용:
오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예전교회의 한 권사님 생각을 많이 했다.
예배 시간이 끝나면 자주 남편에게 항의 전화를 하시든지 복도에서 붙잡고 설교에 대한 불만을 많이 토하셨다. 오늘 설교는 이래서 싫고 저래서 싫고 누구 들어라고 한 소리 아니냐는 둥... 정말 남편이 힘들어했었다.
성경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면서 모든 성도들의 형편에 따라 피해 가며 설교를 하느니 목회를 안 하는 게 나을 것이다.
말씀을 듣고 마음에 찔리면 회개를 하는 게 옳은 거지 바르게 선포한 말씀에 항의를 한다면 올바를 성도의 자세가 아니었을 것이다. 설교 한편을 준비하기 위해 기도하고 대략 설교 노트를 만들기 위해선 10시간에서 14시간 정도 소비한다고 들었다.
다른 목사는 모르겠고 우리 남편은 그렇다고 한다.
설교를 준비하며 듣는 청중이 좋아할 만한 설교를 골라 한다면 아마도 그 목사는 거짓 목사일 것이다. 남 듣기 좋은 말씀을 전하라고 그 권사님은 남편에게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목사는 가르치는 것에 장로는 치리와 행정에 성도는 돌봄의 역할을 잘 해야만 건강한 교회가 될 것이다.
그런 항의를 듣고 있는 남편을 보면서 나는 공황발작이 오고 불안해지고 힘든 시간을 보냈었다.
돌아보면 감당할 수 없는 직분의 무게가 결국은 병으로 이어진 것 같다.
성도를 온전케 하는 게 즉 성도의 깨어진 부분을 치료하는 것이 나의 남편의 역할이었는데 그 약이 쓰고 아플지라도 치료를 해야 되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 일에도 용기가 필요했고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만 바라보며 일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진리라면 반드시 각자의 맡은 일을 하는 것이 옳다.
사역을 그만두고 후회가 없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서정희 씨가 결혼 생활을 돌아보며 후회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가 없다고 했다.
사실 나도 감히 그렇다.
사역을 그만둔 것도 감당한 것도 후회가 없다.
최선을 다해서 임했기에 미련이 없다.
그러나 제3막의 인생을 들어서며 그때는 고난이었던 순간들이 잘 인내하고 지나오며 현제 말할 수 없는 축복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걸 매 순간 경험하며 그때는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한 실패자 같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건 아니라는 생각에 감사하다.
그때 타협하고 권사 되고 싶은 사람은 적당히 세워주며 사역을 했더라면 아마도 지금 후회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위 목사님들께서 물이 맑으면 물고기가 안 사는다는 둥 적당히 유들유들하게 하라는 조언을 무시하고 사역을 한 것은 고통은 있었지만 후회는 없다. 지나고 나면 진리는 진리로 불의는 불의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젠 새로운 사역의 방향을 두고 오늘 말씀 가운데 예배자로서의 기본적인 삶에 더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배를 통하여 우린 하나님 가까이 가는 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며 하나님 가까이 있다는 건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복을 누리는 삶을 위하여 나는 매일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하는 것에 게을리하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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