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 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주시기를 마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
2절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3절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오셔서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지라
4절 이에 그들이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이르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나이다
5절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큰 믿음이란?
우린 예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을 갖기를 소원한다. 또한 큰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소원한다.
그러나 이러한 큰 믿음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믿음이 생기고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큰 믿음은 무엇인가를 살펴보자.
1. 첫 번째, 큰 믿음은 사람들을 돌아보는 마음에서부터 시작한다.
1) 2절 :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 백부장: 100명의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관. (군단-6,000, 센트리아 -100명, 6개 센트리아-600: 대대, 10개 대대가 레기온 6,000) 1군단에 60명의 백부장, 10명의 대대장, 1명의 군단장-총 71명의 지휘관으로 구성된다. 당시 정규 병력이 약 60만에서 70만 명으로 추정하므로 로마 군대 지휘관들이 약 700에서 800명 정도 있었다고 하면 백부장은 고급 지휘관이었음을 알 수 있다. 기록에 따르면 이 백부장 지위는 로마 지도자들의 아들이라면 거의 모두가 거쳐가는 중요한 지위였다.
전쟁에 자주 출전하는 관계로 미혼이 많았으며 그 수하에 일을 돕는 노예들이 많이 배정되었다. 여기서, 종이라고 하는 것은 노예를 말한다. 당시 노예는 삶의 도구에 불과한 존재였다. 노예는 단지 도구 취급받았고 존재 가치가 없었다. 그래서 병에 걸리더라도 살릴 책임이 없었다. 심지어 도움이 되지 않으면 죽여도 상관없었다.
2) 그런데 이 백부장은 자신의 노예를 너무 사랑했다는 것이다. ‘사랑’으로 번역된 헬라 원어는 ‘엔티모스’라고 하는데 이 말은 ‘소중한 존재’라는 뜻이다. 그 노예가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그 백부장에게 소중할 수도 있었겠지만 근본적으로 그 백부장 마음엔 그 노예뿐만 아니라 모든 노예들에 대해서 소중한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살리길 원했다. 이런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살릴 방법을 찾게 되고 예수님을 만남으로 병을 고침 받게 된다.
3)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믿음에 불을 붙이고 기적을 가져오게 한다.
4) 큰 믿음을 갖기를 원하세요? 기적을 체험하길 원하세요? 먼저,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마음이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결국에는 기적을 체험하고 믿음을 소유한다.
5) 사업체 종업원들을 잘 caring 하지 않거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이 믿음을 달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그렇다고 불성실한 종업원을 무조건 관대히 대하라는 말은 아니다. 성실하지 않은 사람들은 꾸중도 하고 질책도 할 수 있다. 다만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학생 때 외국인 노동자들을 전도하고 섬길 때가 있었다. 일하다가 발가락을 심하게 다쳤는데 사업체 주인이 치료를 제때 해 주지 않아 발가락이 불구가 된 경우를 보았다. 그런데 그 사업체 사장이 알고 보니까 어느 교회 집사라는 것이었다. 생각해 봤다. 과연 그 사장은 믿음이 있을까? 믿음이 있다면 도대체 뭘 믿을까?
3절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오셔서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지라
4절 이에 그들이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이르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 하니이다
5절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6절 예수께서 함께 가실 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7절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8절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2. 두 번째, 큰 믿음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태도에서부터 시작한다.
1) 3절에 보면,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지라’ 자신이 직접 가지 않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마태는 다르게 기술하고 있다. 마태복음 8장에는 백부장이 직접 예수님께 간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그럼, 성경이 한 사건을 놓고 다르게 말하고 있어서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은 아니다. 유대 장로들을 보낸 것과 직접 말한 것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당시 사회에서는 사람을 통해 말한 것은 직접 말한 것과 동일시했다. 마태는 백부장의 믿음을 강조하기 위해 직접 전한 것으로 쓰였고 누가는 백부장과 유대 장로들과의 관계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간접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기록했다. 백부장이 여러 일로 바쁜 가운데 있었음을 짐작하면 누가의 기록대로 사람들을 보내어 간구한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백부장으로서 다른 바쁜 일로 인해서 사람들을 통해서 보낸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자신이 예수님 앞에 감히 다가설 수 없는 겸손함을 보여 준다고 생각할 수 있다.
왜냐면 6절에서처럼 예수님이 그의 집으로 오신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이 자신의 집에 오시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말을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백부장은 영예 있는 신분이었으나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무가치함을 인정했다. 열왕기하 5장에 보면 문둥병에 걸린 아람 군대 장관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그가 걸린 문둥병을 치료받기 원하면서도 자신의 영예와 지위를 뽐내면서 엘리사에게 찾아온다. 그러나, 백부장은 그런 모습과는 전혀 달리 자신의 영예는 하찮은 것으로 여기고 겸손한 청원자로서 예수님께 최대한 경의와 열성과 신뢰를 갖고 간절히 부탁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 이런 겸손함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집에 가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의 정책임을 아는 백부장이었기에 유대인인 예수님이 이 방 사람 집에 오셨다는 소문이 나면 예수님께 안 좋은 일이 될 것을 염려했을 수도 있다. (예수님 저는 불결한 이방인입니다. 예수님께서 저희 집에 오시는 것으로 당신 자신을 어려움에 처하게 하지 마옵소서라는 뜻이 포함된다. Lord, don’t trouble yourself, for I do not deserve to have you come under my roof)
3) 또한 이런 겸손함은 유대인들과의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백부장은 지배자의 입장으로 있고 유대인들은 피지배인으로 있는 입장에서 보통 지배층의 계급들이 피지배층의 계급들을 학대하고 못살게 구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인데 백부장은 지배층임에도 불구하고 피지배층의 사람들에 대해서 좋은 태도를 보인 것은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에 의해 지음을 받아서 동일한 지위에 있는 형제, 자매라는 생각이 있었을 거라 생각할 수 있다. 하나님 앞에서는 지배층이건 피지배층이건 모두 다 같은 사람임을 알고 유대인들에 대해서 함부로 대하지 않고 잘 대해 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님 앞에 서면 저는 하찮은 존재이기에 ‘제가 비록 로마 장교이지만 결코 저 유대인 보다 더 낳을 게 없습니다’라는 고백을 늘 했을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이런 겸손함이 자기의 사랑하는 종을 살리는 기적을 가져오게 된다. 4-5절을 보면
유대인 장로들은 예수님을 믿지도 않고 오히려 싫어했는데 백부장이 그들에게 얼마나 잘해주었고 좋은 관계였으면 예수님께 간청하러 왔을까?. 또한 유대인들은 이방인의 집에는 가지도 않는 사람들이었는데 백부장 집은 예외로 생각한 것을 보면 백부장이 유대인들에게 얼마나 잘했으면 그 백부장이 가치 있는 사람으로 예수님께 말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예수님께 그의 종은 치료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애청함으로 실제로 그 종이 고침을 받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 하나님의 기적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겸손하면 일어난다.
4) 시 138:6 여호와께서는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굽어살피시며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심이니이다. 믿음의 사람은 겸손한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5절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3. 세 번째, 큰 믿음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1) 백부장은 피상적인 종교인이 아니었다. 백부장에게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로마의 신들을 거부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해서 듣고 받아들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2) 이런 점이 유대인들에게 호의 적이고 유대인들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다. 이방인이 유대인을 돌보는 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었다. 유대인들을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을 향한 그의 사랑 때문에 결국에는 회당을 짓게 된다. fund를 조성하고 회당을 지어 예배를 드렸다. 예배 때 하나님을 알게 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회당 예배에 정기적으로 참석해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공부함으로 하나님을 더 알아 갔을 것이다. 이런 노력 없이 믿음이 생길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결국에는 유대인들과의 좋은 관계를 맺게 되고 자신이 위급할 때 도움을 얻게 된다. 이제는 유대 지도자들이 나서 백부장을 돕게 된다. 사람과의 관계를 무시하고 오직 나의 믿음만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이 역사하기 힘든 것이다.
7절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8절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9절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나아 있었더라
4. 네 번째, 큰 믿음은 단순함에서 나온다. (7-8)
1) 백부장의 믿음은 매우 단순한 믿음이었다. 7절에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즉 예수님은 집으로 오셔서 하인을 고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먼 데서 하인을 만나지 않아도 말씀만으로도 능히 치료할 수 있다고 믿었다. 비록 이방이었지만 이 백부장은 당시 유대 장로들 보다 더 많이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냥 말 한마디로 자신의 종을 고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예수님에게는 아무런 능력의 제한도 없으며, 거리의 멀고 가까움도 동일한 것이라고 믿었다. 예수님이 원하시면 말씀 한 마디 만으로도 모든 피조물이나 자연의 세력들을 복종케 할 수 있는 신적인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고 믿었다. 즉, 예수님의 말씀만으로도 우리의 필요를 채울 수 있다는 것이다.
2) 다른 사람 보다 더 큰 믿음을 가진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 자체가 모든 필요한 것의 전부임을 믿었기 때문이다. 지휘관은 그가 현장에 있든 없든 간에 그 명령에 권위가 있다. 예수님은 모든 만물의 주관자이시므로 명령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백부장은 명령과 권위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 그 생활 자체가 권위에 순종하고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생활이었다.
예수님도 똑같은 권위 아래에서 사역하고 있음을 알았다. 예수님의 능력과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옴을 알고 있었다. 자신도 로마 황제 명을 받들며 행동하는 군인으로서 그 권세가 어떻게 오는지를 알고 있었다.
왜 말씀만 하옵소서라고 한 것인가? 자신이 직접 현장에 가지 않더라도 그 명령은 부하들에 의해서 이뤄지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만 하시면 그대로 이뤄질 줄 확실히 믿었던 것이다.
5.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큰 믿음은 결국에는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이고 또 그의 능력이 나타나도록 한다.
1) 백부장의 믿음에 예수님은 놀라셨다. 예수님께서 놀라신 경우가 2번인데 이번 경우와 마가복음 6:6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자기 고향에서 기적을 베푸는데도 믿지 않는 것에 대해 놀란 경우이다.
2)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만족시킬 만한 능력을 가지고 계시지만 그 능력이 나타나기 위한 전제 조건이 있는데 바로 믿음인 것이다.
3) 누가복음에서는 기술되지 않고 마태복음 8:13절에서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백부장의 믿음을 통해 그 종이 나음을 입은 것이다.
줄거리 요약:
어떤 백부장이 종이 병들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 장로 몇 사람을 예수님께 보내어 그의 종이 죽게 되었으므로 구해 주시길 청한다.
그들은 그 백부장이 유대민족을 위해 회당을 지어 주는 등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설명하며 함께 그 종을 살려 주시길 구한다. 예수님은 고쳐 주시기 위해 그 집 근처로 가시고 계셨는데 백부장은 벗들을 보내어 수고롭게 집까지 오시지 마시고 그저 명하여 고쳐주시길 간구한다. 자신은 예수님 앞에 감히 다가설 수 없는 존재임을 말하며 겸손함을 보여 준다. 이러한 겸손을 보며 예수님은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 하시며 고쳐주신다. 그 보내었던 벗들이 집으로 들어가 보니 그 종은 이미 나아 있었다.
결론:
기독교 신앙은 일종의 전투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군대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교회는 법률가나 사상가들의 변론쟁이 아니다.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즉, 예수님의 권위와 명령이 행해지는 곳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들은 군인정신이 필요하다.
에베소서 6:13절에서 바울은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고 권면한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시지만 충실한 군인 정신의 소유자를 그 일꾼으로 부르고 계신다. 군인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복음을 전할 때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이유는 복음은 단순하며 단순 명료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명령에 의해 행해지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인 마 28:18-20절 말씀을 대위임 명령이라고 부른다.
‘’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것은 대장군이 그 부하에게 명령한 것이다. 이 명령은 ‘왜’라고 문제를 제기하고 연구할 말씀이 아니다. 그저 복종해야 할 명령인 것이다.
백부장의 믿음을 통해 우린 다른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품고 하나님 앞에서 항상 겸손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에 군인처럼 순종하는 삶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백부장과 같은 믿음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과 위대한 대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수님과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와의 대화 - 누가복음 24장 13-35 (1) | 2023.10.28 |
---|---|
예수님과 세례 요한과의 대화 - 마태복음 3장 13-17 (1) | 2023.10.28 |
예수님과 두 제자의 어머니와의 대화 - 마태복음 20장 20-28 (0) | 2023.10.25 |
예수님과 간음한 여인과의 대화 - 요한복음 8장 3-11 (0) | 2023.10.25 |
예수님과 사탄 마귀와의 대화 - 마태복음 4장 1~11 (0) | 2023.1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