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묵상

아브라함의 믿음 - 로마서 4장 1~16절

차작가 2023. 12. 22. 12:19

아브라함은 구원의 참된 예이다. 3;27-31 절의 내용을 더 구체적으로 증거한다. 3-8절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전적인 은혜로 생각한다. 9-12절은 할례와 무할례에 대해서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위대한 인간의 행위를 묵살해 버린다. 아브라함 하면 모든 신자들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면서 위대한 영웅으로 취급한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행위를 본받자고 가르친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집을 떠나오는 행위, 전쟁에 승리하고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바치는 행위, 독자 이삭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죽이려고 했던 행위 등등, 위대하다고 생각되는 신앙적인 행위를 본받자는 것이 교회가 강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교회의 생각을 무색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 오늘 본문이다.

성경:

1절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오

2절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절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4절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절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6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절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 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절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9절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10절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11절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 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2절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13절 아브라함이나 그 휴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14절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15절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16절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해석:

1.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은 그 믿음은 무엇인가? (3절)

(창 15:5) 아브라함은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서 의롭게 되었다. 그런데 갈라디아서에 보면 이 자손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가 정확하게 기록이 되어 있다.

(갈 3:16) 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창세기 15장 5절의 ‘자손’은 히브리어로 ‘제라’이다. 그 단어는 단수다. 하늘의 별들은 복수인데 그 별들과 같은 자손은 단수이다. 그리고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그 자손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까 창세기 15장 5절의 하나님께서 자손을 걱정하는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뭇 별들을 보여주시면서 자손을 약속하시는 장면은 단순히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들의 중다(衆多) 함을 예언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 자손들이 어떻게 탄생하게 될 것인지도 함께 가리키고 있는 장면이다.

아브라함을 의롭게 한 믿음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객관적 믿음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믿음은 발휘하는 자에게서 생산되어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어떤 강한 힘에 의해 끌려가는 형국을 일컫는다. 그래서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믿음을 가리켜 ‘고삐를 쥔 자에 의해 끌려가는 것이 믿음이다’라고까지 말씀을 하셨다. 다른 말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구원의 전 과정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계획되고 진행되고 완성이 된다.

2. ‘믿음으로 의롭게 여김을 받았다’는 본문 4:5과 ‘행함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았다’는 약 2:21-24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5절에 보면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라고 한다. 우리는 지금껏 일을 많이 한 사람이 경건하고 믿음이 있고 일을 하지 않은 사람은 믿음이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을 아니 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이 하나님을 믿는 자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다고 하셨다. 행위를 기준으로 해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사람들에게 전혀 다른 말씀을 하고 있다. 이런 말씀이 버젓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사들은 이 말씀을 그대로 설교하기를 꺼려 한다. 혹 교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행함이 사라질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교인들이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교회의 성장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일을 아니 해도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르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약 2:21-24절의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이에 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라는 말씀은 어떻게 된 것일까?

분명히 여기서는 아브라함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아브라함의 행함은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낸 행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물로 준 그 믿음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행하도록 한 것이다. 따라서 믿음은 행함을 가져오게 되어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가 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행함으로 믿음을 판단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만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살아간다면 그 사랑이 우리 안에서 일하실 것이다.

3. 아브라함이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인가? (11절)

할례란 육의 계통이 단절되는 것을 말한다. 즉 육으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 난 민족이라는 의미가 할례이다. 따라서 할례를 받은 자는 항상 '나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살아간다'라는 의식이 있어야 했다. 이 정신이 없으면 아무리 할례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이스라엘이 아니다. 할례받은 자는 하나님의 약속을 보여주고 의를 보여줘야 할 사람이다. 그래서 신명기에서는 몸의 할례가 아니라 마음의 할례를 말했던 것이다. 즉 육체의 할례는 단순히 육체 위에 흔적을 남기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생각하신 할례는 아담으로부터 끊임없이 이어지는 육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으로 할례의 표를 받았다는 것은 의의 표가 할례라는 의미가 아니라 의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드러내는 것이 곧 할례라는 뜻이다. 그러나 육체의 흔적으로서의 할례가 아니라 육체를 부정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으로 의로 여김 받은 자의 흔적임을 말씀한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무할례자든 할례자든 모든 자에게 조상이 되는 것이다.

4.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의 뜻은? (14절)

아브라함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았고 그 믿음이 있는 자가 곧 아브라함의 후사인데, 행위가 있어야 참된 믿음이고 행위가 있어야 진짜 신자라고 한다면 결국 아브라함이 의롭다 함을 얻은 믿음은 헛것이고 약속 또한 폐하여지고 오직 인간의 행위만이 살아서 구원을 이루어 가는 논리가 돼버린다는 의미이다.

5.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한다’는 뜻은? (15절)

율법은 우리에게 행위를 이끌어 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로 몰아넣고 있다. 율법이 오기 전에는 내가 하나님이 진노의 자식임을 몰랐고 내가 바로 멸망의 자식임을 몰랐는데 율법을 받고 보니까 바로 나 자신이 하나님의 뜻에 전혀 어긋나 있는 멸망의 자식이라는 것이 발각이 된 것이다. 그 일을 율법이 하고 있다.

6.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는 누구인가? (16절)

아브라함의 후사는 결코 자기 행위에 미련을 두는 자가 아니다. 인간의 행위에 선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 들고 나올 깨끗한 행위가 없음을 알고 어떤 행위에도 미련을 두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후사라고 할 수 있다. 후사는 인간의 행위를 거부한 자이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선물로 주어진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이다. 믿음이 있기에 나는 진노 아래 있는 자라는 것을 알고 주님을 놓지를 못하는 것이다. 주님을 놓는 것이 영원한 멸망임을 알기 때문이다.

적용: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인간의 행위를 통해 보조를 받으면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를 차버리고 믿음이 독단적으로 등장을 한다.

행위가 없이 믿음만으로도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되는데 믿음에다가 행위를 보태서 믿음을 더 믿음답게 만들어 보겠다는 것은 결국 믿음이 없는 불신앙임을 뜻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아브라함은 행위로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음을 살펴봤다. 3:28절에서도 말씀하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라고 분명히 선언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이 말씀에 순종된다면 이 시간부터 우리는 우리의 행위를 기준으로 해서 믿음을 계산하고 신자 다운 모습을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결론을 내려놓고 말씀을 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