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묵상

복음의 실제적 유익 - 로마서 5장 1~11절

차작가 2023. 12. 24. 11:56

인간 쪽에서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수단이나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안다면 자연히 주님에게만 모든 기대를 두고 살아갈 것이다.

행함을 포기하라는 것은, 우리의 행함이 하나님 앞에 의가 될 것이라는 그 생각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성경:

1절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절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절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로,

4절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절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절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절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절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해석:

1. 어떻게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게 할까? (3-4절)

환난이 있으면 낙심하고 말고 환난을 통해서 인내를 배우라고 한다. 그러면 그 인내는 연단을 낳게 되고 연단은 소망을 낳게 되니까 결국 환난은 하나님이 우리를 소망 가운데 살게 하려고 주신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환난을 하나 던져 주시면 그 환난을 받아서 우리 스스로 소망을 가지는 차원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환난 속에서 스스로 인내하고 연단을 배우고 소망을 이루는 차원으로 나아가지는 인간이 있을까?

결국 이러한 가르침에서 교인들이 가지는 심적 부담은 환난을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려움이 있을 때 그것을 기뻐하지 못하고 갈수록 낙심되고 인내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자기 믿음에 대한 의심을 가지게 된다. 이것이 예수님으로 즐거워하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환난을 통해서 자기 자신의 믿음의 수준을 높이고 그 높은 수준을 앞세워서 만인 앞에 당당하게 서고 하나님 앞에도 당당하게 나서려는 착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기도를 못해서 부끄럽다, 성경을 못 봐서 부끄럽다, 이런 모든 것이 예수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수준을 보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환난을 즐거워하려고 하게 되고 환난을 이기려고 하게 되는 것이다.

어려운 일, 힘든 일이 있을 때 낙심이 되고 염려와 근심에 빠진다고 해서 '나는 믿음이 없는 자다'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껏 낙심하고 염려하고 근심하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우리 스스로 낙심하지 않으려고 하고 근심하지 않으려고 하지 말라는 뜻이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계신다. 예수님 역시 세상에서 환난을 겪으신 분이시다.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당하신 분이시다. 그러나 예수님은 환난 중에서도 낙심하지 않으셨다. 인내하셨다. 연단을 받으셨고 오직 하늘에만 모든 소망을 두신 분이었다. 이 예수님을 즐거워하자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말씀으로 살아갈 때 미움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요 15:19절에 보면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께 속한 신자는 결국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고 환난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 환난이 어떤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고 해도, 어떤 어려움과 힘든 일이 우리의 주위에서 발생한다고 해도, 주님만 바라보기를 게을리 해선 안된다. 주님이 당하신 십자가를 보고, 주님의 인내를 바라봐야 한다. 그럴 때 주님의 인내가 우리의 인내로 다가오게 될 것이고, 주님의 연단이 우리의 연단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주님의 소망 안에서 우리도 주님과 같은 소망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환난 중에도 주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는 신자의 삶이다.

항상 우리의 시선과 관심을 주님께 두려고 해야 한다. 자기를 바라보지 말고, 교회도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 소망은 우리 자신이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고, 교회로부터 나오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이 '주로 말미암아'이다.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해도 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것이 우리들의 운명이다. 저주의 운명에 희생과 사랑으로 개입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는 것이 신자이다.

적용:

어떻게 하나님 안에서 즐거운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우선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자임을 늘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진노 아래 있는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 인해서 임을 다시 한번 마음에 둬야 한다. 하나님이 진노를 생각하고, 진노 아래서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세상에서 하는 일이 안된다고 해도 괜찮은 것 이 될 수 있다. 어차피 잠시 머물다가 떠날 세상이고, 다 썩어지고 불에 타버릴 것들인데 그것에 미련을 둔들 결국 우리들의 마음만 아프고 염려와 근심만 끊이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세상을 하나님의 심판의 장소로 보고, 세상의 것을 섞어질 것으로 볼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복을 받은 자라고 할 수 있다.

힘들고 어렵다고 느껴질 때 신앙의 기본으로 돌아가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복잡하게 생각해서 힘이 드는 것이다. 복잡하다는 것은 내 생각이 들어가서이고 내 욕심 때문이 대부분이다.

이 땅의 인생이 대충 80으로 보면 쏜살같이 달려가는 인생은 찰나이다. 복잡하고 힘들게 살아갈 필요가 없다. 이런 일에 미련을 둘 시간적 여유도 없다. 아까운 인생 오직 내가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서 구원을 받았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언제 간 주님의 심판대에 설 날을 생각하면 인생이 간단해지고 평안해진다. 세상의 것은 썩어질 것이다. 이것을 아는 인생이 복을 누리는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