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말씀 묵상

욥기 22장에서 31장 묵상

차작가 2023. 9. 25. 12:38

21장에서 욥이 인과응보의 논리에 반박하며

어떤 사람은 악해도 죽을 때까지 건강하고 안전하고 평안하며 그릇에는 음식이 가득하고 윤택하다.

그러나 어떤 이는 마음의 고통을 품고 죽을 때도 행복을 맛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헛되이 위로하는냐! 너희의 대답은 가짓이다"라고 말하자

22장에서 엘리바스가 세 번째 논쟁을 한다.

"네가 네 말대로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슨 기쁨이 있겠느냐 그리고 너의 행위가 온전한들 하나님께 무슨 유익이 되겠느냐"라고 말한다.

신명기에서 나타난 하나님은 인과응보의 하나님이다.

왜냐하면 신명기에는 하나님의 율법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네가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너를 버린다 이런 식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 죄를 깨닫게 하고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구원받지 못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하나님을 찾을 수 없음을 알게 하신 것이다.

어느 누구도 율법으로 의인이 될 수 없으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또 엘리바스가 말한 것은 잘못된 논리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의로운 행동에 영향을 받으신다.

우리의 의로운 행동이 구원에 이를 수는 없지만 삶 가운데 우리가 행하는 의로운 행동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따르며 살려는 그 의지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행하는 행위가 온전하다는 것도 하나님께 이익이 된다. 왜냐면 온전함이란 마치 해바라기가 태양을 바라보는 것과 같이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는 이 삶이 온전함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완전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는 이 온전함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5절에서는 욥에게 "너의 악이 크고 너의 죄악이 끝이 없다"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올무가 욥을 두르고 두려움이 욥을 엄습한다고 말한다.

엘리바스는 욥을 완전히 죄인으로 확정한다.

또한 자신들이 욥을 낮추면 욥이 스스로 나는 교만했노라고 말하라고 인정하라고 말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겸손한 자를 구원하신다고 말한다.

자신의 눈에 들보는 보지 못하고 자신의 오만함을 보지 못하고 까닭 없이 고통 당하고 있는 욥을 교만하다고 단정 짓고 있다.

그런 엘리바스에게 욥은 그를 비난하기 보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자신에게 더 이상 위로를 주는 대상이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간절히 하나님께 나아가고 싶고 하나님 앞에 호소하고 변론하고 싶지만 어디에도 하나님은 지금 나타나시거나 보이시지 않으므로 한탄한다.

그러나 욥의 마음에는 중요한 것을 알게 되었다.

23장 10절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세 친구를 통해 욥은 하나님만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은 이 세 친구를 사용하신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고백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 (23:13-14)

이 믿음의 고백은 욥이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욥이 고난 가운데 있고 그 고난의 이유를 알 수 없으나 하나님이 이 고난을 허락하셨고 반드시 작성하신 것을 이루실 것을 깨달았다.

지금은 하나님이 침묵하시지만 반드시 그에 대한 이유를 알려 주실 것을 신뢰하고 있다.

이런 욥에게 빌닷은 세 번째 논쟁을 한다.

이들의 논쟁은 강도가 강해지지만 똑같은 맥락이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라 하며 반박한다.

그러나 욥은 쉽게 말하면 "너는 그럼 의롭냐 너는 힘없는 자를 잘 도와주었니? 기력 없는 자를 구원해 주었니?

그래 나는 네 말처럼 지혜 없다고 치자 너는 나에게 지식 있음을 참 잘도 자랑하는구나 !"

욥이 세 친구에게 일종의 넋두리처럼 말한다.

욥 생각에는 더 이상 이들과 대화할 가치도 없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자신은 아무리 생각해도 결코 내 입술이 불의를 말하지 않았고 내 혀가 거짓을 말하지 않았고 너희들이 옳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죽기 전에는 나의 온전함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말한다.

욥은 그들이 말하는 지혜와 명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지혜는 어디서 얻으며 명철이 있는 곳이 어디인가?

지혜는 숨겨졌고 가려져 있다.

28장 23절에 "하나님이 그 길을 아시며 있는 곳을 아시나니"라고 쓰여있다.

"하나님이 그 길을 아시며 있는 곳을 아시나니 이는 그가 땅 끝까지 감찰하시며 온 천하를 살피시며

바람의 무게를 정하시며 물의 분량을 정하시며 비 내리는 법칙을 정하시고 비구름의 길과 우레의 법칙을 만드셨음이라

그 때에 그가 보시고 선포하시며 굳게 세우시며 탐구하셨고 또 사람에게 말씀하셨도다

보라 주를 경외함이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 (28:23-28)

이 말씀을 읽으며 지혜와 명철을 표현한 아름다운 시 한 편을 읽는 것만 같았다.

결론은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고 명철은 악을 떠남이다.

욥은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이야기를 한다.

자신은 하나님이 자신을 보호하시던 때가 오기를 원하며 그의 등불이 내 머리에 비취고 그의 빛을 입어

어둠 속에도 걸어 다녔던 때를 생각한다. 이 말씀이 너무 슬펐다.

그런 욥은 이제는 아이들까지 비웃고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며 조롱하고 이젠 그들의 놀림거리가 되었음을 말한다.

심지어 자신을 미워하여 스스럼없이 얼굴에 침도 뱉는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자신을 곤고하게 하셔서 무리가 내 앞에 굴레를 벗었음이라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이 너무 처절했고 화가 났다.

그렇게 선한 일을 많이 베푼 욥이 돈과 건강이 없어지자 그들이 욥이 당한 현실 앞에서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어쩜 이렇게 한 놈도 욥에게 친구가 되어 주지 못하고 위로가 되어 주지 못할까라는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이 현실 앞에서 욥은 13절에서 "그들이 내 길을 헐고 내 재앙을 재촉하는데도 도울 자가 없구나"

비로소 욥은 어떤 의미에서는 세상 것이 헛되고 가진 것이 물거품같이 사라지고 오직 하나님과 자신만이 남아 있음을 느낀지도 모른다.

그러나 욥은 끝까지 하나님께 의뢰하고 자신이 당한 고난이 부당함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나를 공평한 저울에 달아보시고 그가 나의 온전함을 아시기를 바라노라" (31:6)

이렇게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살기를 노력했는지 가슴에 담아 두었던 모든 말을 탄식하며 하나님께 토로한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만큼 욥이 당한 현실이 마음 아팠다.

어떠한 적용보단 이 시간만큼은 욥을 위로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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