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가르침

예수님의 가르침 44: 참된 자유를 얻으려면 - 요한복음 8:31-47절

차작가 2023. 11. 12. 11:44

인류의 문화사를 돌이켜보면 인류의 모든 역사는 자유를 추구하는 자유 운동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노예 해방이라든지, 조선이 일제 36년에서 해방된 사건이라든지, 미국의 독립, 프랑스 대혁명, 러시아 대 혁명 등 세계의 역사는 억압하려는 자들과 자유를 얻으려 하는 사람들의 투쟁의 역사였다. 그런데 자유를 위한 투쟁이 이쯤 되었으면 이제 자유에 대한 갈망이나 몸부림이 줄어들어야 할 텐데 인류는 점점 더 자유를 향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세계 곳곳에 돌고 있는 전운(戰雲), 과격해지는 시위의 현장, 현재보다 나은 상대적 행복의 추구 등 모든 것의 근저(根柢)에는 그 모양은 다르지만 ‘자유의 성취’라는 영원히 풀지 못할 인류의 숙제가 그 원인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왜 인류는 끊임없이 자유를 추구하는데 자유에 대한 갈망은 더 커져만 가는 것일까? 그것은 인간들이 자유에 대한 정의를 잘못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유를 정의하기를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막는 억압의 대상에게서 벗어나,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를 자유라 한다. 내가 묶여 있는 속박과 규제로부터 벗어나 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상태를 자유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정도는 맞다.

그러나 인류는 자기들이 무엇에 의해 묶여 있는지를 모른다. 그래서 엉뚱한 것들을 대적으로 오인하여 저항을 하는 삶을 반복하면서도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오늘 본문을 잘 읽어 보면 우리 인류가 해방되어야 하는 억압의 주체는 약소국 입장에서 볼 때 강대국이 아니라 ‘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님은 요 8:24에서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은 ‘너희가 죄 속에서 살다가, 죄 속에서 행하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라는 말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로마서 말씀처럼 죄가 삯으로 주는 사망을 받아들고는 영원한 어두움 속에서 이를 갈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들에겐 이 사망으로부터 다시 말하면 영원한 형벌로부터 자유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신다. 아담 이후로 태어나는 모든 인간을 억압하고 있는 세상의 주인은 죄이다.

그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인간은 절대 자유를 느낄 수 없다.

 

본론:

인간들은 죄의 노예이다.

34절 ‘죄의 종’이기 때문이다. 죄를 짓는 자(who is constantly doing sin. Who lives in sin)마다 죄의 종이라고 말씀하신다. 종이란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죄의 종이란 죄가 주인이라는 뜻이다. 죄가 주인이기 때문에 죄의 지시를 받으며 살아간다. 죄를 많이 범해서 죄의 종이 된 것이 아니라 죄의 종으로 존재했기 때문에 죄가 보일 수밖에 없다. 또한 우리가 죄의 종이라는 말은 영원한 죄인이라는 것을 말한다. 마치 쇠사슬에 묶여서 감옥에 갇힌 사람과 같다. 죄짓는 것을 멈출 수 없다. 그럼, 우리는 죄의 종이라는 증거가 있는가?

1. 죄의 종이라는 첫 번째 증거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아비’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 롬 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

아담과 하와를 거짓말로 꾀여서 죄를 짓게 해서 결국 사망에 이르도록 한 존재이다.

마귀가 무엇으로 하와를 속였나? 선악과만 먹으면 네가 하나님과 같이 되어 하나님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자유’를 상급으로 걸어 하와를 속였다. 하와는 마귀에게 속아 그 ‘엉터리 자유’를 갈망하면서 선악과를 덥석 물어 버렸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으로부터의 자유를 획득하고 싶었던 아담과 하와의 가정에 최초로 찾아온 것이 형제간의 살인이었다. 인간이 정의하고 추구하는 세상적 자유는 자신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욕망에서 출발한 것이어서 그 자유의 열매는 나 아닌 다른 존재들의 살해로 연결되었다.

그래서 어떤 절대자에게서 벗어나 내 마음대로 살아보겠다는 자유를 향한 죄인들의 공통된 염원이 오히려 역사 속에서 다툼과 전쟁과 분열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아담 안에서 태어나는 모든 인간들은 자신들을 억압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적으로 간주하며 그것들로부터의 해방을 삶의 목적으로 삼아 자신들이 하나님처럼 되어 다른 이들을 통제하는 자리에 앉고 싶다는 야망을 안고 태어났다. 성경이 그것을 한 마디로 ‘죄’라 칭한다. 주님의 말씀대로 자신을 자랑하고 증명하기 위해 태어나고 존재하는 모든 인간들은 죄 속에서 태어나, 죄 속에서 살다가, 죄 속에서 죽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인간들을 죄의 종이라고 한다.

따라서 인간은 그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기까지는 그 죄가 지향하는 ‘나도 하나님처럼’이라는 자아 숭배의 목표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하늘에 닿으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

욥의 일을 보면 사탄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 수 있다. 하나님 앞에서도 거짓 참소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아비인 사탄을 따라 행하기 때문에 거짓말하고 살인하는 죄의 종이 될 수밖에 없다.

2. 죄의 종이라는 두 번째 증거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서 그대로 행하지 않는 것)

1) 39, 40절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아브라함이 행한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창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 12: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창 18장 (하나님의 사자를 기쁨으로 초청) 22장 (믿음으로 이삭을 바친 것)

2) 무엇이 아브라함이 행한 일인가? 하나님을 믿은 것 (창 15:5,6)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갈 3:16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창세기 15장 5절의 ‘자손’은 히브리어로 ‘제라’이다. 그 단어는 단수이다. 하늘의 별들은 복수인데 그 별들과 같은 자손은 단수이다. 그리고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그 자손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창세기 15장 5절의 하나님께서 자손을 걱정하는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뭇 별들을 보여주시면서 자손을 약속하시는 장면은 단순히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들의 중다(衆多) 함을 예언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 자손들이 어떻게 탄생하게 될 것인지도 함께 가리키고 있는 장면이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그들의 힘과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 즉 하나님의 친 자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가 될 것임을 이미 창세기 15장 5절에서 예시(豫示) 하고 계신 것이다.

이런 아브라함이 행한 것을 너희는 하지 않았다. 배척했고 오히려 나를 죽이려고 한다.

 

3. 죄의 종이라는 세 번째 증거

37절: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자기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지 예수님 말씀대로 살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예수님을 거부한다. 다른 주인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나 자신이 주인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주인이 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했고 그래서 죽이려고 했다는 뜻이다.

 

문제 해결

이렇게 죄의 종인 상태에 있기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항상 죄를 짓고 그 죄책감에서 살 뿐만 아니라 결국에 죄의 삵은 사망임을 알고 심판받고 멸망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33절에서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니라 하느냐’라고 하신다. 비록 이방 민족의 침입으로 포로로 잡혀가 간 적이 있어도 선택받은 백성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여전히 하나님께 환영받는 존재들이라는 자부심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성전과 제사법을 통해 자신들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특권 의식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출 19: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신 7:6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이에 대해 예수님은 ‘죄의 종’된 상태에서 벗어 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신다.

 

1. 31, 32절 내 안에 거하면 자유롭게 된다

1) 31, 32절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 자유롭게 되기 위한 조건이다.

2) 내 말에 거한다 => If you hold to my teaching => 예수님의 가르침은 모두 진리이다. (45절) 그리고 이 가르침들(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 14:23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을 붙들면이라는 뜻이다.

3) 여기서 ‘거하다’라고 번역이 된 헬라어 ‘메노’는 ‘계속하여 거하다, 계속하여 머물다’라는 뜻이다. 그 말씀은 성도와 말씀과의 동고동락, 불가분의 관계를 가리키는 말씀이다.

4) 성도와 말씀이 괴리(乖離) 해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내 말에 거하는 자’는 말씀과 삶이 괴리의 상태에서 물과 기름처럼 따로 노는 그런 사람이 아닌 말씀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사는 이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5) 럼, 어떻게 항상 말씀을 붙들 수 있나? 말씀을 묵상하고 공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다. 즉, 순종하는 것이다. 순종하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이 결국엔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게 되고 죄가 더 이상 지배하지 않게 되므로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다.

6) 이렇게 사는 사람이 참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게 되며 그 진리가 자유롭게 할 수 있다.

7) 주님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 말씀하신 후 하나님의 아들이신 당신께서 바로 진리 이심을 밝히신다.

36절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요 1: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 이 진리는 과학적 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는 진리(saving truth)를 말한다.

2. 36절 아들이 자유롭게 한다

1) 힘이 있어야 한다. 종이 아닌 그 집 아들이 힘이 있다. 종은 임시적으로 그 집에 거할 수 있다. 언젠가는 팔려 가는 신세이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을 보라. 결국은 하갈과 함께 사라에 의해 쫓겨 난다. 이삭은 그 아들이므로 그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

2)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대상 17:13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니 나의 인자를 그에게서 빼앗지 아니 하기를 내가 네 전에 있던 자에게서 빼앗음과 같이 하지 아니할 것이며 17:14 내가 영원히 그를 내 집과 내 나라에 세우리니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3) 예수님이 어떻게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는가?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고후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갈 4: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4:7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3. 42절 이 아들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고 하나님께서 보내셨으므로

1) 하나님께로 나왔고 => 본질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께서 보내 심으로 예수님 자신이 육신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 이심을 말한다. 그래서 죄를 사하시는 권세가 있으시다.

2)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 시기 위해 함께 일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결론:

하나님의 은혜로 죄로부터 자유하게 된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죄로 부터 자유롭게 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참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마음으로 영접해야 한다. 그리고 늘 그와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때 진리를 알게 되고 비로소 그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