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가르침

예수님의 가르침 43: 하나님의 나라를 체험하려면 - 요한복음 6:1-15절

차작가 2023. 11. 12. 11:42

오병이어의 기적은 사복음서에 전부 기록된 사건으로 매우 중요하고 유명한 사건이다.

우리가 오병이어의 기적을 대할 때 마다 어떤 생각을 할까? 기적을 베푸신 예수님의 능력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또 어떻게 그런 일들이 벌어 질 수 있을까 궁금해 한다.

먹을 것을 해결해 주시는 예수님만 생각하면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법칙에 지배 받는 백성들이다. 그럼,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법칙에 지배 받고 살고 있는가? 혹은 그 법칙에 맞게 살려고 노력하는가? 편할 대로 세상 방식에 따라 살고 있지는 않는지.... 한 쪽은 세상, 한 쪽은 하나님 나라에 살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말씀을 통해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지를 알아 보길 원한다.

본문:

1. 오병이어의 배경

누가복음 9:1-9에서 보면

"1절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2절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 6절 제자들이 나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10절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이 행한 모든 것을 예수께 여쭈니 데리시고 따로 벳새다라는 고을로 떠나 가셨으나"

파송 과정에서 믿음의 위력을 경험했던 제자들이 자신감도 더 분명해 졌다. 이만하면 하나님 나라 운동은 성공적이라고 생각하던 차에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예수를 따르던 많은 사람들을 먹일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2. 예수님의 목적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 오병이어 기적을 일으키셨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사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스스로 해결하길 원하셨다. 그런데 제자들은 해결 할 수 없는 이유만 앞세웠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눅9:1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막6:37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

분명히 제자들이 훈련 받아야 할 부분이 있다.

"마 14:15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막 6:37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요 6: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자신들이 해결할 수 있는 조건이 아무 것도 없으니 이들 스스로 먹을 수 있으면 먹고 그렇지 못하면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 이다.

3. 이들이 직면한 위기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

빵이 없는 것은 현실이지만 그것을 해결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위기는 단지 문제일 뿐 위기 그 자체는 아니다.

바로 능력이 없으면 문제가 위기가 된다. 훈련 받고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체험한 제자들이 현실에서 문제점을 만나자 이러저러 하니 못한다고만 이야기 하고 있다. 이걸 해결하려면 이러한 수준의 조건이 요구된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해 있다고 하면서 여전히 현실의 틀에 묶여 있는 것이다. 파송의 경험을 통해 믿음의 위력을 맛 보고서는 막상 새로운 문제에 부딪히니 하나님 나라의 힘을 믿고 나서는 것이 아니라 조건 위주의 사고 방식으로 현실을 대하고 있는 것이다.

출애굽 후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 모습과 같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10가지의 재앙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의 능력을 체험 했다. 구원의 가장 climax인 홍해를 가르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직접 보고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광야길 3일 만에 온갖 불평을 쏟아 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과 똑 같다. 하나님은 출애굽 사건을 통해서 그들이 믿음으로만 살기를 원하셨다. 따라서, 아무것도 없는 광야라도 구원하신 하나님의 그 전능하심만 믿고 따르길 원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체험하려면 바로 믿음이 필요하다.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방식을 믿음으로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보기에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을 찾고 있다. 그건 이런 상황에서 해결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이들이 능력이 없다는 것이 위기라고 하는 까닭은 이들이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한다면서 실제로는 현실의 논리에 굴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믿음은 그것을 돌파하는 능력이다. 것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이 위기의 본질이다. 이것을 가지려 하지 않는 것이 위기의 실체이다. 예수께서 이들에게 너희들이 해결하라고 하신 것은 바로 이러한 관점과 시선의 변화를 촉구하고 계신 것이다.

4. 위기 돌파를 위한 작은 계기

바로 이런 때에 소년이 가저 나온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마른 생선’은 결과적으로 위기를 돌파하는 작은 계기가 된다.

"요 6: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6: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그러나 이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마른 생선은 이들이 직면한 현실과 견주어 보면 그야말로 절망스러운 자신이었다. 그러기에 안드레가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현대인의 성경)’라고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는 희망의 근거가 되기 보다는 낙담의 이유가 되는 것이다. ‘오병이어’는 오늘날 기독교에서 은혜의 상징과 구호로 여겨지고 있으나 그 당장의 현실에서는 더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암담한 진실을 드러내 주고 있는 증거이다.

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처지에 이들 모두가 처해 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접근했는지 살펴보자.

요 6: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마가복음은 이들이 무리를 지어 앉도록 하신 것을 증언하고 있다.

막 6:39 제자들에게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6:40 떼로 백 명씩 또는 오십 명씩 앉은지라

각자 뿔뿔이 흩어질뻔 했던 공동체를 복구하셨다. 각기 알아서 강한 자는 살아 남고 약한 자는 죽는 그런 식이 아니라 공동체적 연대 기반을 다지셨다.

그 다음은 감사의 기도를 올려드렸다.

요 6:11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감사 기도를 드리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아무리 미미하게 보이는 것이라도 ‘감사’로 시작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일깨운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모든 조건이 다 구비되어야 비로소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니라, 작은 시작도 감사하며 시작할 때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충만하게 채워지는 것이다. 간구하는 자세가 곧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보이신 것이다.

이걸 알아 보는가, 아닌가에 하나님 나라의 체험이 걸려 있다.

5. 원하는 대로 나누어 주신다.

획일적 배급이 아니라 필요에 따른 나눔이 여기서 주목되고 있다.

요 6: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식구 수대로 주신 것이 아니다. 이들이 원하는 주관적 요구에 따라 배분하셨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필요는 다 다르다. 그 차이를 인정하고 그것을 채우는 구체적이고 섬세한 방식이었다. 이제 그들은 배불리 먹었다. 그러나 그 다음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요 6:12-13 6: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6: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충분히 먹고 난 뒤, 남은 것을 아껴 모았다. 넉넉해지면 어려울 때를 잊기 쉽다. 조금도 버리지 말라고 하셨다. 양식의 귀중함을 일깨우고 계신 것이다. 그렇게 남은 것이 12광주리나 되었다. 겨우 그걸로 뭘 하겠다고 했는데 차고 넘쳤다. 하나님 나라는 무엇보다도 차고 넘치는 축복이다. 주어진 조건에 묶이는가 아니면 그 조건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가? 그에 따라 현실은 매우 달라 진다.

6. 먹을 것을 해결하는 분으로 인식된 예수님을 사람들은 왕으로 삼으려 한다.

요 6:14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6: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그러나 예수님은 빵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어떤 위기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자신의 것으로 삼아 난관을 돌파해서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이루어 내라는 뜻을 전하신 것이다.

결론: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의 방식에 눈뜨는 일이다. 모든 악 조건 아래, 인간이 각자의 능력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도록 방치하는 방식이 아니라 아무리 작은 자산일지라도 그것을 소중히 여겨 함께 나누며 살아 갈 수 있는 그런 미래를 예수께서는 일깨우시려 했다.

이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마른 생선은 그 어떤 조건에서도 충분한 양식이 될 수 없다고 여겨지지만, 그것은 남자 어른만 5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허기를 채우고도 남는 양식의 첫 출발이 되었다. 마지막 남은 양식이 아니라 희망의 식사, 그 첫 시작이 된 것이다.

미미하다고 멸시하거나 낙담하지 말아야 한다. 그 미미함 속에 어떤 하늘의 뜻이 있는가가 중요하다.

세상 대세와 비교해서 오병이어의 존재감 밖에 없다 해도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믿으면 그것이 세상을 새롭게 채우고도 남는다. 그런 까닭에 오병이어의 기적은 하나님의 뜻을 가슴에 품은 사람이 아무리 적어도 그들이 바로 새로운 역사의 주체가 된다는 것을 또한 각성 시켜 주고 있다.

풀기 어렵기만 한 현실 앞에서 하나님 나라의 방식을 간구하는 이에게 돌파구가 열리게 되어있다. 대안은 그렇게 만들어 지는 것이다. 그래서, 온 세상의 힘에 비하자면 우리가 기껏해야 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에 불과한 것 같은 나!

그런 우리가 이 세상을 새롭게 먹여 살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