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우리가 종교개혁주일을 기념하는 것은 1517년 루터로 시작된 개혁의 사건(비텐베르크 성당, 95개 반박문)이 단 일회로 종결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95개 반박문 일부- 임종에 처한 자에게 대하여 연옥 문제를 내세워서 종교상의 속죄를 보류하는 사제들의 행위는 잘못된 것이며 무지하고 어리석은 짓이다. 면죄부로 구원받을 것을 신뢰하는 것은 헛된 것이다. 헌금함 안에 던진 돈이 딸랑 소리를 내자마자 영혼은 연옥에서 벗어 나온다고 말하는 것은 인간의 학설을 설교하는 것이다. 어떠한 그리스도인도 진심으로 자기 죄에 대하여 뉘우치고 회개하는 사람은 면죄부 없이도 형벌과 죄책에서 완전한 사함을 받는다.
교회가 신령한 축복을 돈 받고 파는 장사를 하면서도 그것을 합리화 시키려 할 때 루터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 외에도 성직매매가 성행했다.
종교개혁의 기폭제는 면죄부 판매였다. (교황이 발행한 면죄부가 자신이나 친척이 연옥에 머무는 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는 것이 교회의 주장이었다.) 면죄부(Indulgence) 판매(죄를 용서해 주는 것을 돈으로 사면 죄가 사해 진다는 것)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은혜는 종교개혁의 핵심이다.
오직 믿음으로 가 나오게 된 경위는 율법으로도, 행위로도 아닌 것에 대한 것 때문이다. 루터의 오직 믿음으로 한뜻은 “믿음만 있으면”이 아니라 “다른 것이 아닌 오직 믿음으로만”이라는 뜻이다.
본론:
성경에서 예수 믿으시오의
잘못된 생각: 구원의 조건이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바른 생각: 내게 구원을 얻을 조건이 있다거나 무슨 가치가 있어 받았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로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불의하다, 죄인이라는 것은 성경은 죽었다고 표현한다.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즉,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구원의 조건이 우리에게 있지 않다는 말이다.
우리에게 어떠한 조건을 찾지 않으시고 거저 주신 것이 구원이다.
사람은 구원이 거저 준 것이기 때문에 잘 믿지 않는다 .공짜로 구원을 얻는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뭔가를 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복음을 거부하는 진짜 이유는 복음이 너무 쉽기 때문이다.
구원을 위해 절을 천 번 해라 하면 만 번도 더 할 것이다. 무슬림들(메카라는 성지 순례). => 자기 노력을 쏟아부으면 될 것 같은 이상한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에게 어떠한 조건을 찾지 않으시고 거저 주신 것이 구원이다. 이것을 성경에서 ‘믿음’이라고 한다. 우리의 조건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표현하는 단어가 믿음인 것이다. 그래서 그 믿음은 우리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다.
그럼, 로마서 10:9-10의 믿음은 누구의 것인가? 이와 비슷한 구절이 창세기 15:6절에 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여기서의 믿음은 아브라함 것일까? 하나님의 것일까?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창세기 11장에는 아브라함이 어떤 사람인지가 나와있다. 아브라함은 우상을 팔던 아버지 데라 밑에서 자란 사람이었다. 우상의 덕으로 잘 먹고 잘 살던 사람이었다. 왜 하필 이런 사람을 택하셨을까? 당시에 의인은 욥과 같은 사람도 있었는데. 믿음이라는 것은 바로 그런 불가능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창세기 12장에서 보면 아브라함이 하란 땅을 떠난 이유는 복 때문이었다. 창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마자 그곳에 심한 가뭄이 들었다. 하나님께 물어보지도 않고 애굽으로 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차마 못 할 일을 한다. 자기 아내 사래를 바로 왕에게 누이동생이라고 속였다. 자기 살려고 아내를 팔아먹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의 실수를 혼내지 않고 용서하셔따. 왜냐하면 아직 그가 하나님의 징계를 감당할 만한 사람으로 성장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오히려 바로 왕에게 징계를 내리셨다.
그리고 13장에 보면 그곳에서 나와 네겝 지방에 머물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축복하심으로 아브라함은 부자가 된다. 재산이 많아 지자 조카 롯과 함께 살 수 없어서 분가를 할 때 아브라함의 믿음의 고백이 나온다. 창 13: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바로 축복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고백한 장면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면 어디든지 복된 땅이 될 것임을 믿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15장 5-6절에서 ‘15: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순종해서 그 복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복을 아브람에게 주기로 작정하시고 하나님께서 직접 복받을 자로 만들어 내신 것이다. 따라서 여호와를 믿은 이 믿음은 아브라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알 수 있다.
22장에 가면 그 유명한 이삭을 바치는 사건이 나온다. 자신의 아들을 죽음 가운데서도 반드시 다시 살리실 것을 믿는 믿음의 조상 소유자가 되는데 아브라함이 한 일이 뭐가 있는가?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것 밖에 없다. 그래서 로마서 4:1-3을 이렇게 선포한다. 4:1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오 4: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4: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에서부터 출발한다. 믿음은 절대 우리의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믿음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하나님의 작정, 예정, 섭리, 언약 이 모든 것들을 믿음이라 하는 것이다. 이 믿음이 우리 삶에 들어와 우리를 징계도 하시고 달래 시기도 하시고 설득하기도 하시면서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 가신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개입하시고 간섭하셔서 만들어 내셨다. 하나님이 만들어 내신 믿음을 소유한 첫 번째 모델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 하는 것이지 그가 뭐가 대단해서 믿음의 조상이라 하는 것이 아니다.
로마서 1:17에서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를 살펴보자.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 구절은 종교개혁자들의 구호 이념이다. 이 구절은 하박국 2:4인용한 것이다. 하박국 선지자가 살던 시대를 이해하면 이 구절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박국 선지자의 불평은
"왜 저렇게 불경한 나라들은 잘 살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이렇게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어떻게 일을 그렇게 하십니까? 왜 이렇게 부르짖는데 대답도 안 하십니까? "이다.
하박국 선지자는 지금 자신은 의로우며 이스라엘은 선민이라는 전제하에서 하나님께 따지고 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의 이렇게 답변하셨다 ‘하박국아 너는 너와 이스라엘이 선민이고 율법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스스로 의인인 줄 알고 있는데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이 말씀은, 너나 이스라엘이나 바벨론이나 똑같은 자이다. 뭐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믿음을 선물로 주신 아들만이 의인이며 그들만이 살아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자들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으로 만드시기 위해 오히려 악인들을 사용하신다는 의미이다.
이런 말의 뜻을 이해한 하박국 선지자가 그 유명한 고백을 하게 된다. 합 3:17-18 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3: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 하나님의 백성인 나보다 죄인들이 더 잘 살고 열매도 소출도 소도 없어도 나는 내게 믿음을 선물하셔서 나에게 이루신 그 구원만으로도 난 기뻐합니다. 이렇게 믿음은 하나님께서 시작하셔서 하나님께서 마치시는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이고 선물이다.
그럼,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란 무엇일까?
앞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믿음이고 뒤의 믿음은 은혜받은 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한 믿음이다. 즉, 믿음으로 구원받은 백성은 이제부터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살라는 것이다. 구원받은 백성은 은혜를 체험한 뒤에는 실제로 야고보서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행함을 통해 검증된 살아있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다. 이 순서가 바뀌면 문제가 된다. 행함이 먼저고 은혜를 바라는 것이다. 즉, 내가 내 의지로 믿었으니까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만 바라보고 살면 되겠지라는 생각이다. 무조건 믿어서 복을 받기만 하면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이른바 '값싼 은혜'(cheap grace)로 잘못 인식되어 기독교의 부패를 가져오게 했다.
결론:
아브라함의 믿음은 롬 4:17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즉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뜻이다.
아브라함이 대단해서 믿음의 조상이 된 것 아니었다. 하나님이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웠기에 된 것이다.
우린 하나님의 은혜를 값싼 은혜로 만들어선 안된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그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파스칼은 ‘믿음이란 이성을 십자가에 못 박는 행위다’라고 말했다. 오직 믿음,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종교개혁 정신으로 살아야 하다. 믿음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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