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설교

하나님이 진정으로 바라시는 것 - 미가 6장 6-8절

차작가 2023. 11. 15. 11:41

도입: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한다. 어떤 때는 일일이 말씀해 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우리에게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원리를 제공해 준다.

그런데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이 가려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 욕망이 근거가 된 판단과 생각으로 하나님을 제멋대로 규정하고 그에 따라 적절한 믿음의 행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 예가 오늘 본문 6-7 절이다.

본론:

1. 선지자 미가의 경고

이스라엘은 큰 시련을 겪고 있었다. 북 이스라엘은 이미 앗수르에게 멸망을 받았고, 남쪽 유다 역시 큰 위기에 처해 있었다.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그러한 고통을 겪는 것이 하나님이 불의하기 때문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항상 이스라엘에게 함께 하셨고 그들을 인도하셨다. 결국 이스라엘의 고통은 그들의 죄의 결과였던 것이다.

2. 경고에 대한 이스라엘의 생각

그런데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때 대개 어떤 생각을 할까?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해 자신의 정성과 믿음을 보이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로 증명하고자 하게 된다.

이처럼 제물로 자기 믿음을 증거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할 때 중요한 것은 자연히 제물의 가치에 있게 된다. 제물이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일수록 믿음과 정성이 크다는 것으로 증거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6-7절에서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라고 말한다.

 

3. 이런 생각을 갖게 된 배경

그래서 이방인들은 최고의 정성을 담은 제물로 맏아들을 바치기도 했다. 사람에게 맏아들보다 더 귀하고 소중한 것은 없다. 따라서 맏아들을 제물 삼아 신을 경배한다면 그것은 최고의 제물을 가지고 신을 섬기는 것이 되기 때문에 인간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내놓을 것이 없는 최고의 정성이 되는 것이다. 그것으로 신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세상의 생각이고 신에 대한 시각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허물과 자기의 죄를 위해 맏아들을 바치고 몸의 열매를 들고 하나님을 찾았다. 몸의 열매란 아마 육신의 고행이나, 고생을 자처한 신앙적 행위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육신의 고행, 또는 고생을 자처한 신앙적 행동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인간의 정성으로 여겼다.

4. 미가 선지자의 반응

선지자는 하나님이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나아가고,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바친다고 해도 그것으로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인간이 바치는 제물을 보시고 기뻐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바치는 것을 보시고 기뻐하시면서 그 뜻을 돌이키시는 분이 아니다. 따라서 자기의 정성을 제물을 도구 삼아 드러내고자 하고, 그것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 죄와 허물에 대한 징계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을 인간의 욕망의 눈으로만 바라보는 종교의 시각일 뿐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시 51:16-17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삼상 15: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5. 하나님이 구하시는 것(원하시는 것)이 따로 있다. 8절 말씀

1) 정의를 행하는 것(to do justly)

2) 인자를 사랑하는 것

3)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 (하나님 앞에 겸손한 것 )

4)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신 10:12, 18)

5) 신 10:12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10:18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6. 정의를 행하는 것

“정의”란 하나님께서 자신의 창조질서를 운영하시는 방법이다.

성경에 따르면 정의는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토대이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들이 자기가 있어야 할 곳에 있도록 하셨다. 바다는 바다에, 땅은 땅에, 하늘은 하늘에, 별과 달과 태양은 하늘에, 눈과 비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도록 하였고, 시내와 강은 그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도록 하였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을 때 하나님의 피조 세계는 서로 간의 사이가 좋은 상태에 있게 된다. 모든 것들에 제자리에 있을 때만이 “사이가 좋은 것”이고 이렇게 될 때만이 진정한 샬롬의 상태이다. 역으로 이야기하자면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지키면서 서로의 사이가 좋은 상태를 가리켜 “정의로운 상태”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정의는 창조세계의 근간이며 창조세계가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유지되는 근본적 토대이다.

당시에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Many people in Micah’s day were not being just (Micah 2:1-2; 3:1-3; 6:11)

§ 미 2:2 밭들을 탐하여 빼앗고 집들을 탐하여 차지하니 그들이 남자와 그의 집과 사람과 그의 산업을 강탈하도다

예) 팔레스타인 제거 주장. 이스라엘의 아일렛 새이크(38·Ayelet Shaked)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공개했는데, 이 의원은 "팔레스타인인들은 실질적으로 모두 다 테러리스트들이고 팔레스타인인을 낳고 기르는 그들의 부모는 테러리스트를 공급하는 것과 다름없다. 따라서 모든 팔레스타인 엄마들을 죽여야 한다"라고 했다. 이어 그는 "팔레스타인들은 죽은 자식을 따라가야 한다. 이것이 정의다. 집도 부숴버려야 한다"라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3:1-3 너희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기뻐하여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그들의 살을 먹으며 그 가죽을 벗기며 그 뼈를 꺾어 다지기를 냄비와 솥 가운데에 담을 고기처럼 하는도다

6:11 내가 만일 부정한 저울을 썼거나 주머니에 거짓 저울추를 두었으면 깨끗하겠느냐

이처럼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무너지고 정의는 무너져 있었다.

7. 인자(mercy)를 사랑하는 것

히브리어로 헤세드라는 이 의미는 어떤 사람이 도움이 필요로 할 때 마음이 반응하는 것 to a heart response to the needs of others which compels a person to help when this is possible.

헤세드= faithful covenant love 신실한 언약적 사랑. 특히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신실한 사랑

당시 사회에 이런 인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 Not showing loyal love to those to whom they were supposed to be committed (2:8-9; 3:10-11; 6:12

8.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

행하는 것 => walk with the Lord => walk는 live이다.

겸손히 => 주의해서, 조심해서 (carefully)라는 뜻으로 경외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한다는 것은 주의 깊게 혹은 조심하는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을 말한다.

당시 상황은 그러지 못했다. 우상숭배에 젖어 있었다. Not walking in humble fellowship with God (2:3).

미 1:5, 7 이는 다 야곱의 허물로 말미암음이요 이스라엘 족속의 로 말미암음이라 야곱의 허물이 무엇이냐 사마리아가 아니냐 유다의 산당이 무엇이냐 예루살렘이 아니냐 7 그 새긴 우상들은 다 부서지고 그 음행의 값은 다 불살라지며 내가 그 목상들을 다 깨뜨리리니 그가 기생의 값으로 모았은즉 그것이 기생의 값으로 돌아가리라

또 다른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하라고 했다. 구약에서 하나님과 동행한 인물이 에녹이다.

창 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히 11:5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그래서, 하나님과 함께 행한다는 뜻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율법의 정신을 버리고 율법의 껍데기만 지키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상기시키는 구절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다.

마 23:23에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미 4:5만민이 각각 자기의 신의 이름을 의지하여 행하되 오직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영원히 행하리로다 (walk) => 영원히 믿음으로 살겠다는 뜻이다.

 

결론: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정의를 행하고 불쌍한 이웃들에게 긍휼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남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없고 정의롭게 살지 못하고 예수 안에 있는 믿음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면 교회 나오는 것도 기도하는 것도 헌금하는 것도 어찌 보면 아무것도 아닐 가능성이 많다. 예배 열심히 참석하는 것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반드시 정의와 긍휼과 믿음의 삶이 따라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힘으론 정의와 긍휼과 믿음의 삶을 살 수 없다. 남을 공평하게 대하는 정의를 온전히 실천할 수는 없다. 도움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신실하게 도와주는 긍휼을 한없이 베풀 수는 없다. 한계가 있다. 나의 힘만으로는 믿음을 끝까지 지킬 수 없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면 이런 삶을 살지 못하는 자신들의 행위가 용서받을 줄 알았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면 하나님께 사랑받는 존재가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율법의 중요한 정신인 정의와 긍휼 그리고 믿음을 버리지 말라고 하셨다. 그런데 이 율법의 정신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다. 즉,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제자들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까?라는 질문을 한다. 예수님은 그 질문에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이라고 답변하셨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가장 바라시는 것은 예수님을 알고 그분 안에서 살아가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