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설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 - 창세기 45장 1-8절

차작가 2023. 11. 15. 11:42

서론:

인생을 살면서 점점 깨닫는 것은 ‘내 뜻대로 되는 것이 거의 없다’이다. 하루 일을 계획하고 시작했는데도 돌이켜 보면 계획대로 잘 이뤄지지 않는다. 모든 일들이 내 뜻대로, 내 생각대로 잘 이뤄지지 않는 것이 인생인 것 같다.

그렇지만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전부 나쁘진 않는 것 같다. 왜냐면 계획했던 것 보다 더 좋은 결과들도 종종 생기기 때문이다. 인생은 이와 같이 ‘뜻대로 되지 않는 일’과 ‘행운’이라는 조합으로 이뤄진 시스템 같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이 좌절도 경험하고 행운도 경험하면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데, 문제는 (어떤 때는) 행운은 나와 상관없이 느껴질 때가 있다. 계속해서 계획대로 일이 되지 않을 땐 좌절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에는 여러 가지 exciting 한 이야기들이 있는데 그 이야기 중의 하나가 바로 요셉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왜 하나님께서 요셉의 이야기를 창세기 37장부터 시작해서 50장까지 무려 창세기 전체의 5분의 1 이상 할당을 해 놓으셨을까?

그 이유는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중요한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 읽은 본문은 요셉 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climax 부분이다.

 

오늘 같이 읽은 본문은 애굽의 총리인 요셉이 누군인지를 못 알아 보는 요셉의 형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내용이다. 요셉을 노예로 팔았던 형들은 동생이 살아있고 노예가 아닐 뿐만 아니라 이집트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요셉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본론:

45:5절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팔게 된 원인은 창세기 37장에 나와 있다. 그 원인은 크게 두 가지인데 첫째는 ‘요셉이 형들의 과실을 아비에게 고 한 것 즉,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 야곱에게 매번 고자질 한것’ 이었고 둘째는 요셉이 꾼 꿈이었다. 요셉은 두 번의 꿈을 꿨었다. 첫 번의 꿈에서는 형들의 곡식 단(sheaves of grain)들이 요셉의 단에게 절했고, 두 번째 꿈에서는 해, 달 그리고 11별들이 요셉에게 절하는 것이었다. 이 꿈으로 인해 요셉의 형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형들의 안부를 알아 오라는 아버지 야곱의 심부름을 가던 차에 마침내 형들에게 붙들려 미디안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다. 미디안 상인들은 애굽의 시위대장 (경호대장) 보디발에게 요셉을 팔게 되어 요셉이 애굽에 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렇게 요셉을 팔았던 그 형들에게 요셉은 5절에서 ‘나를 이곳에 판 이유로 근심도 말고 한탄도 말라고’ 오히려 위로해 주고 있다. 요셉이 꾼 꿈대로 요셉의 형들은 요셉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이고 절을 하게 되지만 이제는 자신들의 생명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자신들이 노예로 팔았던 동생이 이제는 애굽에서 바로왕 다음으로 권력이 있는 총리가 되어서 그들 앞에 서있기 때문이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팔 때 창세기 37장 20절에 처럼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라고 조롱 섞인 말을 했었다. 그들은 요셉을 팔 때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했었을 것이다. 이런 순간이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요셉의 꿈이 현실로 나타나자 그들은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그들은 요셉 앞에서 두려워 떨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는 근심했을 것이다. 또한 요셉을 판 것에 대해 후회하고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스스로에게 화를 (영어 번역에 보니까 angry with themselves로 되어 있음) 내고 있는 것이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형들에게 요셉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은 놀라운 말을 한다. 7절에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이 구절을 통해 우리는 요셉의 진실된 신앙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요셉은 자신에게 닥친 고난의 원인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고난의 원인은 겉으로는 형들에게 있었지만 그 뒤에 숨어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님이었다고 고백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요셉의 위대한 점이다. 이러한 고백이 진정으로 믿음 있는 자의 신앙고백이 된다.

우리의 인생에 어떤 고난이 닥쳤을 때 믿음이 없는 눈으로 보면 문제의 진짜 원인은 절대로 보이지 못한다. 본질 보다는 오히려 비본질 즉, 가짜가 크게 보이는 법이다.

만약 요셉이 자기가 처한 현실에 대해 원망만 하고 불평을 했었더라면 진정한 문제 해결은 없었을 것이다. 애굽의 총리가 되기 전까지 요셉처럼 인생이 안 풀렸던 사람도 아마 드물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도 아닌 친 형들에게 노예로 팔렸었다.

일반적으로 노예에게는 희망이 없다. 희망 없는 노예로 그저 시키는 일이나 대충 하고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열심히 일했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셔서 보디발 집에 노예로 있으면서 인정을 받아 모든 살림을 관리하게 되었다. 신뢰도 받아서 이제는 좀 편하게 지내는가 싶더니 그 아내가 잠자리를 같이하자고 계속 유혹했다. 다만 그 유혹을 뿌리쳤을 뿐인데 오히려 그것 때문에 감옥에 가기도 했다. 그 인생이 노예에서 죄수로 바뀐 것이다.

옛날 감옥은 지금과 달라서 보통에 지하에 있었기 때문에 햇볕도 잘 볼 수가 없었고 땅은 항상 축축한 그런 곳이었다.

시편 105편은 감옥에 갇혀있는 요셉을 잘 묘사하고 있다. 18절에 보면 ‘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라고 되어있다. 여기서 몸은 히브리어로는 ‘혼’이라는 뜻이다. 몸이 쇠사슬에 매여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혼(נֶפֶשׁ)이 매여 있다는 말이다. 혼이 나간 상태, 정신이 나간 상태라는 뜻이다. 우리가 상상하는 담대히 고난을 견디는 모습이 아니었다.

이쯤 되면 원망이라도 하고 자포자기 할텐데 성경은 요셉의 그런 모습에 대해 말하지 않고 오히려 간수장의 눈에 들어 다른 죄수들을 돌보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감옥에 갇혀 있던 술 맡은 관원장(Cupbearer) 의 꿈을 해석해 준다.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의 해석대로 사흘 후에 석방이 되었다. 그때 요셉은 “나의 일을 바로에게 알려서 나가게 해 달라고” 그에게 부탁한다. 그러나 그 술 맡은 관원장은 까마득히 잊어버린다. 자그마치 2년 동안이나. 2년 동안 술 맡은 관원장으로 부터 아무 소식도 없었다.

17살 때에 노예로 팔려 13년 동안 노예와 죄수의 신분으로 살면서 요셉은 단 한번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그 자신의 삶을 함부로 그저 되는 대로 살지 않았다.

요셉은 고난을 당할 때 마다 불평보다는 그 고난 뒤에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 보았다. 8절을 보면 요셉의 고난에 대한 확실한 신앙고백을 알 수 있다.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요셉은 모든 일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일하신다는 고백을 하고 있다. 주권(Sovereignty)이라는 사전의 뜻은 ‘어떤 외적인 영향을 받지 않고 홀로 그 뜻대로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은 야곱의 가족들을 살리시려고 요셉의 고백처럼 요셉을 미리 애굽으로 보내셨다. 창세기 50장 20절 말씀(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처럼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죽이려 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다. 생각해 보면 형들을 통해서 노예로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려 경호대장 보디발에게 팔린 것도 하나님의 뜻이었다. 보디발집에 그것도 외국인으로서 가정 총무가 된 것도 기적이었고 하나님의 뜻이었다.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친 이유로 억울하게 감옥으로 가게 되었는데 바로 죽음을 당하지 않고 왕의 죄수를 가두는 감옥으로 간 것도 기적이었고 하나님의 뜻이었다. 감옥에서 죄수의 몸으로 죄수들을 돌보게 하신 것도 기적이었고 하나님의 뜻이었다. 술 맡은 관원과 빵 굽는 관원의 꿈을 해석해 준 것도 기적이었고 하나님의 뜻이었다. 심지어는 솔 관원이 2년 동안 까마득히 잊어 버린 것 조차도 기적이었고 하나님의 뜻이었다. 만일에 솔 관원이 바로 요셉의 사정을 생각하여 감옥에서 풀어주었더라면 2년 뒤에 있을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며 요셉이 총리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적당한 때에 바로 왕의 꿈을 정확히 해석하여 애굽의 총리가 된 것도 기적이었고 하나님의 뜻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알아야 한다. 고난이 닥치면 겉으로 보이는 것만을 보지 말아야 한다. 그 뒤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봐야 한다.

 

사탄은 겉으로 보이는 것만 주목하게 해서 하나님을 볼 수 없게 만든다.

요셉이 겉으로 드러난 형들에게만 집착해 있었다면 원망과 복수심으로 인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뒤에 계시는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성공적으로 이룰 수 있었다. 우리들은 우리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자기의 계산과 어긋나는 결과가 주어질 때는 보통 절망하고 근심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Sovereignty of God)을 믿는 자에게는 어떤 경우든지 불행이나 절망이 있을 수가 없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데도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결코 불행한 일이 될 수가 없다. 왜냐면 주권적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렵게 하시려고 일부러 그런 일들을 계획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계산과 방법으로 우리들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함임을 믿어야 한다. 우리 기독인들이 확신에 찬 생활을 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하나님의 주권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지금 어떠한가? 우리에게 주어진 고난은 무엇인가? 만약 우리가 고난 가운데 있다면 마태복음 10:29의 “10: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는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믿길 바란다. 주권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을 때, 고난의 근본적인 원인을 바르게 알게 되고 그 고난을 고난으로 여기지 않고 그 고난을 능히 이길 수 있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는 육신에 속한 사람이고 둘째는 영에 속한 사람이다. 육신에 속한 사람은 영의 세계를 알지 못한다. 사람이 육신에 속한 사람인지 영에 속한 사람인지는 고난을 대하는 자세로 부터 알 수 있다.

만일 요셉이 영적인 세계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었다면 고난의 원인이 그 형들이라고 생각하고 그 형들을 절대 용서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셉은 세상 모든 일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영적으로 안 사람, 즉 영에 속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잘못했던 형들을 진정으로 용서 할 수 있었다. 왜냐면 그 형들도 결국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도구였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영적인 사람은 따라서, 요셉은 창세기 50:20절에서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다"라고 고백할 수가 있었다.

로마서 8:9은 영에 속한 사람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예수의 영이 내 가운데 있으면 나는 영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마음속으로 구주로 영접하지 않았다면 예수의 영이 내 가운데 없어서 영에 속하지 않고 육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즉,

예수를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삶이 이끌어 간다는 말이 된다. 반면에 예수님과 상관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주권과도 상관이 없다.

 

이처럼 영에 속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 요셉은 결국에는, 8절에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라고 되어 있다. 바로의 아비에서 “아비”라는 원문의 뜻은 Counselor라는 뜻이다. 즉, 바로 왕의 Counselor가 되었다는 것이다.

바로가 일이 생길 때마다 요셉을 찾았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의 결과이다. 예전에 (창 37:5)는 형들의 잘못을 일러바치기만 해서 그와 상의할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던 부족했던 요셉이었지만 지금은 왕이 그에게 상담을 요청하고 왕에게 조언을 해 주는 사람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온 집의 주인이요, 애굽을 다스리는 사람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고난을 통해 이뤄진 결과임을 알 수 있다.

 

결론:

오늘 요셉의 고백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 하시고자 하는 것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반드시 하나님의 계획과 주권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이 같은 영적인 진리가 적용된다는 것은 아니다. 오직 예수의 영이 있는, 영에 속한 사람에게만 이 영적인 진리가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만 하면 우리의 인생은 결코 실패가 없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책임져 주시고 그분의 완전하신 뜻대로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떠한 어려운 상황이 닥치더라도 근심이나 염려하지 말고 묵묵히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참고 견디면 요셉처럼 결국에는 온 땅의 사람들을 하나님의 뜻으로 다스리는 결과를 얻게 된다. 요셉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