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묵상

유대인에 대한 책망과 진짜 유대인이 되는 길 - 로마서 2장 17~29절

차작가 2023. 12. 22. 12:13

로마서 2장의 마지막 부분에 도착했다. 사도는 로마서 1장 16절과 17절에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서만 산다.’는 로마서의 대 주제를 제시한 뒤 18절에서부터, 왜 인간은 예수님이 이루신 의로만 살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중이다. 그게 로마서 3장까지 장황하게 이어지는 내용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인간 측에서 생산해 내는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을 만족하게 해 드릴 수 없을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가입하지 않은 인간들의 모든 행위는 아무리 선해 보이고 근사해 보여도 다 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간들은 자신들이 내어놓은 행위를 근거로 남을 외모로 판단하고 심지어 율법 지킴이나 양심이라는 것을 가지고도 자신들의 치부를 가리는 데에만 급급했다.

앞절에서 하나님의 의가 아니면, 인간들은 율법을 지켜서 망하고, 양심을 따라 살아서 망한다는 것을 배웠다. 율법은 보편적 아담 군상들의 대표로 택해진 기능적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던 하나님의 리트머스 시험지였고, 양심은 그 기능적 이스라엘 밖의 모든 인간들에게 주어진 리트머스 시험지였다.

그 둘은 같은 기능을 한다. 그런데 그 율법과 양심이라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에덴동산의 선악과처럼 인간들의 마음에 가 닿자 ‘죄인’이라는 색으로 금방 반응을 나타냈다. 인간들은 그 무엇을 가지고도 전부 자기 자신의, ‘하나님처럼’의 위상을 지키려 안간힘을 쓰더라는 것이다. 바울은 오늘 본문인 17절부터, 그러한 인간들의 어리석음과 우매함을 율법과 그 율법의 총화라 할 수 있는 할례를 가지고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설명을 하고 있다.

성경:

17절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18절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19절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20절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21절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너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22절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23절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24절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25절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26절 그런즉 무할례 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27절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28절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절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 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 서니라

해석:

1. 사도 바울은 어떤 이유로 유대인들을 율법을 범한 자로 말하고 있나? (23, 25절)

어떻게 사도가 모든 유대인들을 다 이렇게 율법을 범한 자로 매도해 버릴 수가 있나? 그게 이 역사를 통과해야 하는 모든 인간들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그 속에는 우리도 들어 있다. 우리는 율법을 잘 지켜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율법을 범했고 앞으로도 범할 수밖에 없음에도 하나님의 은혜, 그리스도의 의에 의해 구원을 받았다. 사도는 지금 그러한 은혜의 구원을 강조하기 위해 모든 인간들의 기특해 보이는 열심들을 전부 낱낱이 까발려 버리는 것이다. 사도는 하나님의 의에 의한 구원의 도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들의 열심은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2. 25절의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의 요점은 무엇인가? (25절)

선택받은 자로서의 특권을 보여 주는 외적 증표는 사실상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율법에 담긴 하나님의 진짜 메시지를 거부하고 하나님께 반항하는 마음을 품는다면 할례와 같은 외적 의식이 아무 유익이 되지 못한다.

3. 26절에서 ‘무할례자(이방인)가 율법의 규례를 지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율법의 참 의미를 이해하고 그 의미를 지킨다면 성령으로 마음이 변화되어 믿음으로 순종하는 이방인들은 진정한 유대인이 된다는 것이다. 마음이 변화되어 율법이 가르치는 바 인간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4. 27절은 무슨 뜻인가?

이방인들은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심판에서 건짐을 받는 반면 태생적으로 유대인인 사람들은 마지막 심판 때에 정죄 당하고 멸망하게 된다. 유대인이 되는 자격요건을 자신들의 특권으로 여기지 말라는 의미이다.

5. ‘표면적 유대인은 유대인이 아니다’라는 뜻은? (28절)

표면적 유대인이라는 말은 자칭 유대인, 그러니까 율법이나 제사나 선행 등의 행위로 자신들을 치장하여 외모 상으로는 전혀 나무랄 데 없는 그러한 인본주의자, 율법주의자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표면적 유대인은 진짜 유대인, 다른 말로 하나님의 진짜 백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표면적으로 지켜 낸 율법은 진짜 율법의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원하셨던 진짜 율법의 행위는 ‘주님 저는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제게 주님의 긍휼히 필요합니다’라는 자기 부인의 고백이었고 그러한 자기 부인에서 나오는 사랑의 방향 바꾸기가 진정으로 하나님이 원하셨던 율법의 행위이다.

6.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다’라는 뜻은? (28절)

표면적 육신의 할례, 즉 표면적 율법 지킴은 할례가 아니다, 율법을 지킨 게 아니다’라고 확고하게 다시 한번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왜 율법의 상징으로, 율법의 표상으로 할례를 들고 있느냐 하면, 율법이라는 것은 할례를 받은 이스라엘에게만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할례라는 의식 속에 진짜 율법 지킴이 무엇인지가 잘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할례는 율법이 그러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행하신 은혜의 행사를 이해하고 바라보고 붙들라는 의미로 주셨던 것이지 할례를 행하는 것 자체가 인간의 공로나 업적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켜서, 할례를 받아서, 자신들의 가치 향상과 자아 확장에, 자기 발전에 사용했다.

바울은 율법과 할례가, 다른 말로 인간들이 구축하는 인간들의 외모가, 하나님 나라 백성 되기에 전혀 무관한 것임을 반복하여 강조를 하고 있다.

할례나 율법 지킴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도구요 방법일 수 없다. 그 길은 오직 믿음이라는 길뿐이다. 오히려 율법 지킴이나 할례 행함은, 인간들의 행위는, 인간들의 자기 자랑, 자아실현, 자아 확장의 더러운 욕망의 표출이다.

진짜 할례당은 예수만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자가 진짜 마음의 할례를 받은 자라고 말하고 있다.

7. 할례의 본질은? (29절)

마음에 임하는 내적 변화이지 생식기에 가하는 외적 변화가 아니다.

성령이야말로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의 마음에 할례를 베풀어 할례받은 유대인으로 만드는 분이다.

적용:

본문에 기술된 유대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들이 주의해야 할 것은 성도는 신앙생활에 연륜이 붙을수록 ‘난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라는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단은 눈에 보이는 자신의 가시적 행위를 통해 자신에게도, 타인들에게도, 훌륭하고 자랑스러운 존재로 평가를 받으려 한다. 그런데 구원은 외모를 근거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만 주어지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다. 구원받은 성도라면 우리의 내적 변화에 힘을 써야 한다.

살면 살수록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더 깨닫게 되는것은 "나의 공은 하나도 없다"이다.

그동안 내가 이루었다고 생각한 그 모든 것들도... 내 열심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였다.

이것이 나의 고백이고 우리들의 고백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