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묵상

하나님의 공평한 심판 - 로마서 2장 1~11절

차작가 2023. 12. 22. 12:10

로마서 1장 마지막 부분을 공부하면서 정작 여기에 기록된 죄의 세목들의 주인은 예수 안 믿는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일차적으로 우리 자신이라는 것에 동의했다.

원래 인간은 선악의 판단을 스스로 하며 살도록 지어지지 않았다. 선악 판단의 주체는 오직 한 분 하나님뿐이시다. 그런데 인간들이 자기들 스스로 법과 윤리와 도덕 등을 만들어 놓고 그러한 것들을 기준으로 하여 선악을 판단하며 스스로 선악 판단의 주체자로 서 버린 것이 타락이다. 그것이 바울이 로마서 1장 말미에서 그토록 부르짖던 불의다.

성경:

1절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2절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3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4절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5절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6절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절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절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9절 악을 행하는가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10절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11절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해석:

1. 왜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자신이 정죄를 받을까? (1절)

‘판단, 크리노’라는 단어는 재판정에서 재판관이 죄의 내용과 질, 형량 등을 선고할 때 쓰는 단어이다. 사도는 이미 1장에서 성도를 포함한 모든 인간들이 유죄라는 것을 선고했다. 그러한 처지에 있는 것이 인간들이라면 그 누가 있어 다른 이를 자신의 선악구조 하에 심판을 내릴 수 있겠는가? 그 이야기가 오늘 본문의 핵심이다.

판단에 있어서 전제되는 것은 우리에게 옳음이 있느냐는 문제이다. 옳음이 있어야 남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 땅에는 옳은 자가 없다고 선언한다. 그것이 1:24-32절의 말씀이다. 세상 모든 사람을 악하다고 선언한다. 악한 자가 남이 악하다고 나무랄 수 없다. 내가 남을 판단할 때 판단하는 그 모습이 바로 나에게도 있는 모습이기 때문에 결국 내가 나를 정죄하는 결과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마 7:1-2절에서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라고 하셨다. 비판하지 말라는 것은 세상에는 남을 비판할 격이 있는 자가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남을 판단하는 그 행위 자체가 정확하게, 스스로 자신을 ‘죄 있는 자’로 심판해 버리는 행위라는 뜻이다.

2.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된다는 말은? (2절)

선인과 악인은 그들의 행위로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로 갈라진다. 예수를 전적으로 의존하느냐 아니냐로 선인과 악인이 갈라진다. 그들의 행위가 얼마나 선하게 바뀌었느냐, 그들이 착한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느냐로 갈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걸 믿음이라고 한다.

예수를 믿고 자신에 대한 신뢰를 놓는 자가 구원받은 자이지 자신의 행위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러한 행위를 내어 놓는 자신을 신뢰하고 칭찬하는 그런 자가 구원받은 자가 아니란 뜻이다.

따라서 심판의 기준은 성도들의 성숙이나 변화가 아니라 예수가 되는 것이다. 심판은 진리대로 되는 것이지 사람의 행위나 외모를 근거로 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 ‘진리대로’라고 번역이 된 헬라어 ‘카타 알레떼이안’은 ‘진리에 의해서, 진리를 따라서’다. 심판은 진리를 기준으로 내려지는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1장에서 살펴보았듯이 그 진리는 ‘true thing, 실체’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런데 인간들이 자기들의 판단 기준을 가지고 함부로 사람들의 선이됨과 악인 됨을 규정하고 가른다. 그중 대표적인 자들이 유대인들이었다. 그 유대인은 바로 그들처럼 종교인으로 전락해 있는 우리 성도들을 가리킨다.

3절 그렇게 눈에 보이는 인간들의 행실로 그 사람들의 선악을 판단하는 자들은 그들이 악하다고 심판을 해 버린 자들과 똑같은 일을 행하는 것이란 말이다.

3.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는 말의 의미는? (6절)

하나님께서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인간에게서 선한 행위가 나올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결론은 '없다'이기 때문에 결국 6절 말씀에 근거해서 모든 인간은 멸망에 빠져야 한다. 이것이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만약 오늘 이 시간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면 우린 당장 죽어서 지옥에 가야 할 자들이다. 그런 우리들이 천국을 가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의 행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고,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행한 대로 보응하시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의 악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은 내버려 두시는 것이다. 1:24절에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버려 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라고 말씀하고 있고. 26절에서도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버려 두셨다고 말씀하고, 28절에서도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하는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 두셨다고 한다. 이런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은 모두가 하나님께 합당치 못한 일이다.

하나님이 내어버려 두신 인간의 상태는 모두가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 싫어하고 각기 제멋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인간 스스로 하나님을 마음에 두고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내어버려 둔 인간들 속에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찾는 자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지 인간 스스로의 깨달음이 아니다는 것이 분명하다. 이것을 말하는 것이 4 절이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라고 말한다. 내어버려 둔 인간들 가운데 회개라는 것을 하는 자가 있을 수 있다. 교회를 찾아 나오면서 나는 죄인입니다는 고백을 하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종교성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인간의 종교성은 자신의 잘못된 것을 뉘우치게 할 수 있다. 그 뉘우침으로 회개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회개를 자기의 것으로 삼아버리는 점이다. '내가 회개했다'라고 생각하니까 회개한 자신에 대해서 의를 가진다. 이것이 하나님이 내어버려 두신 자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자기들끼리 종교를 만들고 하나님을 만들어서 종교 놀이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 그대로이다.

그러나 회개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인도하신 결과라고 4절에서 분명히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내어 버려두신 자들 가운데 하나님을 알고 자신의 죄인 됨을 고백하는 자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인도하셨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가 있다. 그리고 회개한 자들은 자신이 어떤 운명 속에서 무엇을 근거로 해서 빠져나왔는가를 밝히 알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만 노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4. 선을 행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나? (7절)

누구든지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가 선한 자이다. 예수님을 영접했기 때문에 선한 자가 되었다가 아니라 선하신 예수님 안에서 선한 자로 인정받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예수님 안에서 선을 행하는 것은 무엇일까? 선한 일이란 예수님 안에서 남을 도와주고 착한 일 하는 것이 아니라, 7절에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선한 행위이다. 즉 세상의 것을 구하지 아니하고 하늘의 것을 구하며 살아가는 삶, 다른 말로 나그네로 살아가는 삶, 그 자체가 바로 선한 행위이다. 하지만 이것은 버려진 인생에게서는 불가능한 일이고 오직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인도함 받아 자신의 죄를 아는 회개에 이른 자들에게서 보일 수 있다.

나그네로 사는 것, 이것이 바로 선한 일을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쓸데없는 일에 매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참고 선을 행한다는 것은, 주님이 오시면 세상은 끝나는 것이니까 그때까지 나그네로서 부족한 것이 있고, 남들보다 못한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장래의 영생의 나라를 바라봄으로써 미련을 떨쳐 버리라는 것이다.

구원은 율법을 잘 지키고 교회를 잘 다니는 종교 행위를 통해서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세상을 나그네로 살아가느냐를 통해서 구별된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 헬라인의 구별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나그네로 살아서 구원받자는 것이 아니다. 나그네로 산다면 그는 이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택함 받은 자로서 주님 안으로 부름받은 자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에게서 세상이 아닌 영광과 존귀와 썩어지지 아니하는 것을 더욱 추구하고 소망하는 마음이 발견된다면 그것은 저주 아래 있던 나를 택하셔서 믿음을 더해주신 결과임을 알고 감사할 뿐이다.

적용:

1) 남을 판단하려는 마음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까?

쉽게 자기의 행동을 기준으로 해서 남을 판단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이렇게 하는데 너는 왜 이렇게 못하느냐는 것은 자기 자신을 보지 못하고 있는 어리석음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뭔가 잘한 것이 있어 보인다고 해도 그것이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도구로 사용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남을 판단한다는 것은, 자신의 행위를 마음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나로 하여금 하도록 하셨다가 아니라 내가 했다가 돼버리기 때문에 우쭐거리는 마음을 가지게 되고 자기보다 못한 듯 보이는 사람을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2) 인간은 모두가 죄인이라고 했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1장의 말씀이다. 죄인이면 모두가 동일한 죄인이다. 악한 죄인이 있고 덜 악한 죄인이 있는 것이 아니다. 똑같이 죄인이다. 도둑질하고 살인한 것과 상관없이 똑같은 죄인이다. 도둑질 한 사람의 마음이 나에게 없는 것이 아니고, 살인자의 마음이 나에게 없었던 것이 아니다. 다만 그 마음을 적당히 위장하고 드러내지 않고 살았을 뿐이다.

3) 진심으로 회개한 성도라면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나를 인도하셨음에 대해서 감사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감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회개를 나의 공로로 앞세워서 나의 회개를 선의 기준으로 삼아버리고 회개치 않은 자들을 판단한다면 그것은 결국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나를 용납하시고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내어 버려두신 자들 가운데 하나님을 알고 자신의 죄인 됨을 고백하는 자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인도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개한 자들은 자신이 어떤 운명 속에서 무엇을 근거로 해서 빠져나왔는가를 밝히 알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만 노래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나를 인도하신 결과이지 결코 내가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면, 남이 회개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를 판단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도 회개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있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도구로 삼아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만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나로 하여금 회개하도록 한 것만 있을 뿐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최고의 것은 '나에게는 의가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