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말씀 묵상

에스겔 41장에서 48장까지 묵상

차작가 2023. 9. 29. 12:00

41장부터는 뜬금없이 성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님이 환상 중에 보여주신 성전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다.

하나님은 역시 시대를 앞서가신다.

지금의 세상에서 말하자면 메타버스와 같이 실감 나게 성전 입구부터 에스겔에게 자세하게 보여주시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실제적으로 메타버스에서 만들어서 제목을 "에스겔이 경험한 성전"이라고 만들면 나도 보고 싶다.

많은 학자들이 이 부분에 있어서 이렇다 저렇다 말을 많이 해서 이해가 안 돼서 나누기가 어렵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하나님이 에스겔이 제사장의 수료를 마치고 제사장을 막 시작할 때 바벨론으로 끌려와 그랄강가에서

막노동을 했기 때문에 에스겔이 상심이 큼을 아시고 위로해 주시는 환상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앞 부분에 나오는 환상 중에 에스겔의 머리를 집어 올려 이스라엘 성전에서 행해지는 더러운 우상 숭배를 보게 하시고

하나님이 더럽혀진 성전을 떠나가시는 슬픈 장면을 봄으로 에스겔은 감당하기 어려운 절망이 있었을 거라 짐작할 수 있다.

성전이 파괴되고 에스겔이 돌아가더라도 더 이상 제사장 직분을 감당할 수 없다는 슬픔에 빠졌을 것이다.

그런 에스겔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성전에 대한 치유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상상해 봤다.

물론 나의 이 상상력이지만...

그래서 가장 많이 알려진 47장을 나누기로 결정했다.

이곳에 나오는 해석도 너무나 다양했다.

그러나 47장을 나의 시작과 느낌으로 한번 해석해 보았다.

교회에서 사용하는 일반적인 해석에 근거하여 나름대로 해석해 본 것이다.

1절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을 데리고 성전 문 앞에 서게 한다.

성전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흘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가는 물을 본다.

그 물이 오른쪽에서 스며 나온다.

실제는 성전 주위에는 물이 흐르지 않는다.

그런데 성전에서 물이 스며 나오는 것이다.

그때 어떤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가며 천척을 측량한 후에 에스겔에게 그 물을 건너게 한다.

그때 그 물이 발목까지 차오른다.

원문은 발목의 물이라고 되어있다.

히브리어 성서에는 발목의 물은 용서의 물이라고 되어있다.

일부 학자들은 세례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

아쨋거나 발목 위에 물이 차오르고 그 물은 무릎 위에 차오르고 그 물이 허리까지 차오른다.

허리에 차오른 물은 에스겔이 건너지 못할 정도의 강이 된다.

그 물은 헤엄칠 정도로 가득해지고 사람이 건너지 못할 강이 된다.

여기서 신기한 것은 어떤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계속 물이 차오르는 정도에 따라 "천척을 측량"을 하는 점이다.

그래서 한참을 생각해 보았다.

여기서 물은 성령을 뜻한다고 하는데 나도 그 부분에서는 동의한다.

그리고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예표한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예수님의 손에 줄이 있고 천척을 측량하는데 천척의 정확한 길이는 알 수 없다.

그래서 그냥 원문에 의하여 천척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처음에 예수님을 만날 때 혼자 문지방의 스며 나오는 정도의 물 가운데에 예수님을 만난다.

그의 손에 이끌려 말씀 앞에 나아 가다 보면 물이 어느 정도 차게 되고 또 좀 더 나아가다 보면 또 물이 차게 되고

이렇게 예수님의 손에 이끌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을 천척의 시간으로 본다면 어떠한 시간이 지나면 점점 그 물이 발목에서 무릎으로 무플에서 허리로 또 허리에서 강으로 우리가 체험하는 성령을 표현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리고 반드시 예수님과 함께 걸어야만 그 방향을 잃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척이라는 측량은 인생의 시간일 수도 있고 우리가 감당하는 사건일 수도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천척이라는 측량은 인생의 넘어가야 할 각각의 챕터일 수도 있다.

예수님과 함께 걸어간다면 헤엄칠 수 있지만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으면 그 강을 건너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나의 개인적인 묵상이다.

그런데 상당수의 주석가들은 47장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물이 상징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 그리고 성령의 역사 그리고 성령의 직접 체험이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은 이것은 성령의 역사이며 성령의 역사는 개인적인 경험이며 이 경험은 각 개인적이지만 여럿이 모이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뜻하고

한 개인이라도 자신에게 임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이 물은 혼자 인간의 힘으로는 건너지 못하는 경험이지만 예수님과 함께라면 능히 헤엄칠 수 있는 경험이다.

이 물은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른 이 물은 바다를 살린다.

뿐만 아니라 이 물은 강물도 번성하게 하여 그곳에 있는 물고기도 많게 하고 생물도 살리고 각처의 모든 것이 살게 된다.

47:8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47:9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47:10 또 이 강 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보여 준다.

이 성령의 물을 경험한 사람들은 온 세계로 흘러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생명을 살리고

하나님을 그들의 삶을 통하여 보여 준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이것은 치유의 하나님이다.

죽어있는 생명을 살리고 고치시는 하나님을 보여 준다.

11절에서는

47:11 그 진펄과 개펄은 되살아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이 부분에서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상징한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지만 나는 그 의견에 동의하기 어렵다.

진펄과 개펄도 사실 자연에서는 꼭 필요하고 오히려 자연을 회복하고 많은 생물들에게 유익하며 꼭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 성령은 생명을 살리고 또 물이 많이 필요한 곳에는 물이 흘러가게 하고

물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곳에는 물을 제한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 자체가 나는 성령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물이 충만한 곳에는 잎이 시들지 않고 열매를 많이 맺고 라파의 하나님 즉 약의 재료가 된다.

그 물은 그러나 반드시 성소를 통해서 나오는 물이어야만 한다.

나는 "천척을 측량하고" 이 부분에 있어서 알 수 없는 끌림이 있었다.

예수님을 문지방에서 만나는 것도 많은 감동을 주었다.

문지방은 첫 발을 내미는 장소이고 첫 만남을 상징한다.

예수님을 처음 만나고 함께 손을 잡고 첫 발을 내디딜 때 성령이 나에게 임하시고 하나님이 정하신 천척의 측량의 때를 지나면

하나님은 한 챕터를 지나가게 하셔서 물이 점점 차오르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을 통과할 때 혼자 건너지 못하는 그런 강을 나는 헤엄치며 건너갈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성령의 강에 해엄치게 되는 순간 나는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고 사람들을 치유하는 약의 재료로 쓰일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이것은 성소를 통하여 즉 예수님을 통하여 얻어지는 삶의 열매임을 깨닫게 하셨다.

하나님은 바로 성전에서 그리고 말씀에서 만날 수 있고 성령이 내 안에 계실 때 인생의 바다에서 헤엄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