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장의 에베소 교회에 대해 공부를 했다.
요한 계시록 묵상은 혼자 하기에 너무 어려워 미리 책을 준비해 두고 읽으며 공부하는 마음으로 준비하려고 했으나
달라스로 이사하며 어느 박스에 뒀는지 찾질 못해서 아쉽게도 다음 편에 묵상할 때 더 보강하기로 했다.
그러나 CBS 성서학당의 요한계시록 편이 너무나 잘 강해해 주셔서 많은 도움을 받으며 묵상할 수 있었다.
오늘은 2장에서 5장을 천천히 읽었다.
그중에서 첫사랑을 잃어버린 교회로 잘 알려진 에베소 교회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강의를 들었다.
요한계시록 1장 20절에 보면
1:20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를 상징하고 일곱 별은 교회를 지키는 일곱사자(천사)를 뜻한다.
여기서 천사 즉 사자는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부름을 하는 종의 역할을 하는 존재이다.
요한계시록 1장 10절에 보면
1: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 나팔은 전쟁이나 축제를 상징한다. 계시록의 나팔소리는 왕의 출현과 축제를 상징한다.
계시록이 쓰인 역사적 시기는 도미티안 황제의 기독교 박해로 많은 기독교인들이 환란과 중에 있었으므로 환란을 겪고 있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밧모섬에서 유배 중이던 사도 요한은 환란과 인내 속에 백성들에게 나팔 소리로 표현하며 왕의 출현과 축제를 선언하는 것이다.
오늘 등장하는 에베소라는 곳은 종교와 사상과 철학의 중심지였다.
에베소 도시에 유명한 것은 사도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자들에게 가르쳤던 두란노 서원과
더 유명한 곳은 에베소의 상징이었던 아데미 신전이었다.
아데여신은 풍요의 상징인 신이었으며 이 신전의 규모는 약 5만 명 이상을 수용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
아데미신전은 로마 황제 숭배의 근거지였다.
아데미 신전이 건축된다는 것은 그 도시의 경제적인 이익을 주므로 대부분의 도시들은 신전을 유치하려는 경쟁을 벌였었다.
에베소 교회가 세워진 배경은 사도행전 18장 18절에 보면
18:18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고린도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함께 고린도교회를 세우고 그들과 함께 사도바울은 에베소롤 옮기게 되었다.
사도행전 19장 10절에 보면
19:10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에베소에 도착한 바울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함께 주의 말씀을 전함으로써 에베소 교회를 세웠다.
이 당시는 순회 사역을 하던 때였다. 사역자는 부족하고 복음 전할 곳은 많았기에 짧게는 몇 달 길게는 3년 정도 머물며 복음을 전하던 시기였다.
에베소 교회는 3년 정도 사역한 비교적 오래 사역한 교회였지만 다른 선교지로 떠나는 사역자가 생기면 그곳에는 반드시 거짓 선생이 들어와
교회를 힘들게 하는 상황이었다.
이 에베소 교회도 마찬가지였다.
에베소 교회가 받은 책망과 칭찬은 무엇인가를 본문에서 살펴보면
2: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라는 전능하신 그리스도에게 확실히 붙잡힌 교회를 의미한다.
여기서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뜻한다.
즉 일곱 교회 사이를 거니신다고 표현한 것이다.
1장 20절에 보면 정확하게 나와있다.
1:20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교회의 주인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뿐이라는 것이다.
2장 2절에 나오는 "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라는 말이 나온다.
초대교회 스데반 집사와 같이 집사로 세워졌던 니골라라는 사람이 사역자로 활동하다가 거짓 교사로 변질되었다.
니골라라는 뜻은" 니콜"과" 라"와 합성된 말인데 "니콜"은 "점령하다"라는 뜻을 지니고
"라"는 "라오스"의 줄임말인데 "백성"이라는 뜻을 가진다. 즉 백성들을 점령하다 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니골라라는 이름과 똑같은 이름이 구약에도 나온다.
"발람"도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사람은 모압왕의 발락의 물질에 넘어가 이스라엘을 범죄에 빠지게 한 거짓 선지자이다.
사도행전 20장 29=30절에 보면
20:29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20:30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니골라 당은 바울이 활동하던 시대에도 있었다.
에베소서에서 말하는 거짓 교사 자칭 사도는 니골라당을 뜻한다.
이들은 당시 유행하던 철학과 기독교를 혼합한 변질된 복음으로 이익을 취했다.
그들은 그들이 만든 변질된 복음을 가르치고 사람들을 모아 돈을 버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그래서 바울은 거짓 교사와 구별되기 위해서 복음을 가르칠 때 돈을 받지 않고 자신이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함으로 그들과 구별했다.
진리가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순회 복음 전도자들이 떠난 자리에는 니골라당과 같은 철학과 복음을 혼합해 만든 거짓 교사와 영지주의자들이 교회에 숨어 들어왔다.
진리를 붙잡기 위해서 에베소 교회는 부단히 노력했다.
그래서 2장 2절에서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라고 말하는 것이다.
에베소 교회가 진리를 붙잡기 위해 노력한 것을 칭찬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질책도 있었다.
2장 4절에 보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에베소 교회는 진리에 대한 사랑을 칭찬받았지만 진리만 강조해서 진리의 본질적 의미를 잃어버렸다.
진리의 목적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 뒤따라와야 한다.
그러므로 에베소 교회는 자신의 출발이 어디였는지 돌아보고 회개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진리 속에 담긴 사랑을 회복해서 삶 속에서 그 사랑을 실천해야 되는 것이다.
진리의 형식은 붙잡았지만 본질적인 행함은 실패한 것이다.
우리는 진리의 본질이 변질되지 않도록 지혜가 필요하다.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진리만 앞 새우는 것은 첫사랑을 잃어버린즉 본질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 나에게 주어진 키포인트는 "어디에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이다.
왜 이런 일이 생겼지? 어느 시점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했지? 그 시작을 먼저 파악하는 것이다.
아무리 진리가 중요하지만 그 본질을 잃어버린다면 안 하느니만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회개할 문제이고 하나님께서 책망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은 모든 성경 말씀에서 일관되게 말씀하시는 것은 사랑이다.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사랑을 버리면 진리도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항상 생각하는 것을 명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을 기억한다면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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