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말씀 묵상

요한계시록 6장에서 10장 묵상

차작가 2023. 10. 13. 11:26

오늘은 6장에서 8장으로 이어지는 일곱 봉인에 담긴 심판에 대해서 공부했다.

묵상이라고 할 수 없는 게 엄청난 양의 강의를 하루 종일 들으며 그동안 몰랐던 의미를 깨닫고

성경에서 말하는 본질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마음으로 공부했다.

요한계시록에 대한 강의는 유튜브에 넘치도록 있으나 옳고 그름을 아직 판단하기 어려워서 CBS에서 송태근 목사님이 강의하셨던

강해 설교를 공부하며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되어서 이번 통독을 통하여 얻은 큰 수확이었다.

2장과 3장에서 일곱 교회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난 뒤 4장과 5장에서는 여러 비유가 나온다.

이 부분은 다음 통독으로 미루고 두 번째 일곱 봉인에 대해서 전체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새 노래가 5장 9절에서 언급되었다.

새 노래는 첫 번째 구속(구원) 애 대해 말한다.

두 번째는 새 창조가 이뤄질 때를 말한다.

세 번째는 종말적 완성이 이루어질 때이다.

새 노래는 천상의 존재들이 어린 양에게 부르는 노래이다.

그런데 왜 어린 양이 합당한 분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어린 양이 새 노래를 듣기에 합당한 이유는

첫 번째로 우리 죄를 대속하셨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능력과 지혜, 부 영광이 층만한 분위기 때문이다.

오늘 묵상한 6장 2절에서 말하는 흰말을 탄 자는 누구를 말할까?

6:2 이에 내가 보니 흰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계시록 19장 15-16절에 보면 "만왕의 왕", "만 주의 주"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여기서 검이라는 것은 말씀을 뜻한다.

그런데 계시록 6장 2절에서 말하는 흰말을 탄자는 활을 가졌다고 말한다.

인을 떼시는 분은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이 인을 떼자 흰말이 나왔다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예수님이 아니다.

예수님이 인을 때고 예수님이 나올 수는 없는 것이다.

즉, 흰말을 탄자는 예수님을 흉내 내고 있는 존재이다.

곧 적 그리스도이다.

적 그리스도는 성경과 십자가를 언급한다.

그리고 자칭 메시아라고 말한다.

성경 속에서 말하는 활이나 화살은 하나님의 대적자들이 가진 무기를 상징한다.

성경을 말하지만 그들은 교회라는 허울을 쓴 무리이며 교회를 파괴하는 자이다.

헬라어로 "아볼루온"은 파괴자라는 의미가 있다.

이것의 동사는 "아폴루미"인데 "멸망시키다"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파생된 "아볼루온"과 "아폴로"가 있는데

아폴로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태양의 신인데 아폴로가 가지고 있는 무기가 활이다.

2절에서 말하는 흰말을 탄자가 적 그리스도인 이유는

인을 떼신 분이 어린 양 즉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런데 무기가 활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여기에 흰말을 탄자는 적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 당시 영지주의는 영적인 지식, 영적인 깨달음이라는 뜻으로 육체는 악하다고 생각해서 예수님이 육체로 오신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영지주의자의 유형을 살펴보면,

첫 번째 금욕주의자가 있고

두 번째는 쾌락주의자가 있었다.

금욕주의는 육체가 악하다는 논리에서 육체를 지나치게 통제하고 학대하는 주의였다.

반면에 괘락주의는 육체가 악하므로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성향이 있었다.

여기서 우린 이단 분별의 근거가 무엇인지 알아야 된다.

첫 번째는 기독론 두 번째는 구원론 세 번째는 성경론 네 번째 종말론이다.

두 번째 나오는 붉은 말은

6:4 이에 다른 붉은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붉은색은 피를 상징한다.

붉은색은 화평을 제하여 버리고 서로 죽이는 상황을 상징한다.

화평이 없다는 것은 분쟁이 있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24장 5절에 보면

24: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적 그리스도의 등장을 예언하신 구절이다.

종말은 십자가 사건 이후부터 심판이 있을 때까지의 기간이다.

말일은 심판의 날 곧 마지막 날이다.

교회 안에도 분쟁이 존재한다.

고린도 교회가 대표적인 교회이다.

고린도 교회는 아볼로파 바울이 베드로 파 그리스도 파 등으로 나뉘었고 성찬식에 있어서도 분쟁이 생겼다.

부유한 사람들은 음식을 준비할 수 있는 여유와 시간적 여유도 있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미리 와 앉아서 떡을 떼었고 가난한 자는 교회 밖에서 나중에 떡을 떼므로 떡의 분배가 공평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어떤 사람을 떡을 떼지도 못하는 일도 발생했다.

떡을 떼는 것은 성찬식을 뜻하는데 성찬에 참여하지 못함으로 분쟁이 일어난 것이다.

붉은 말이 상징하는 것은 분쟁이다.

세상뿐만 아니라 교회 내에서도 분쟁은 일어난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가치 화평을 유지하는 것인데 분쟁으로 화평을 잃은 것이다.

5-6절에서 셋 째인을 뗀다.

6:5셋째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6:6 내가 네 생물 사이로부터 나는 듯한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 하더라

검은 말이 저울을 가졌다고 나온다.

저울은 경제활동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검은 말이란 경제의 환란을 상징한다.

6장에서 말하는 데나리온, 보리 밀 감람나무 포도주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경제가 균등하게 돌아가지 않는 양극화되어 있는 상태는 성경에서는 재앙인 상태이다.

마태복음 24장 7절에 보면

24: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경제적인 환란은 기근을 나았다.

"감람유와 포도주는 헤치지 말라" 이 말은 회복의 여지를 남겨 두신 말씀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재앙의 시작이다.

네 째인을 떼는데

6:7 넷째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넷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말하되 오라 하기로

6:8 내가 보매 청홍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죽이더라

청황색 말이 등장한다.

그 탄 자의 이름이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고 말하고 있다.

묵시문학에서 죽음의 표현은 스스로의 힘을 개선될 수 없는 세상을 말한다.

칼과 기근 전염병들의 암울한 단어로 묘사된다.

요한계시록을 해석할 때는 문학적 표현과 사실 묘사를 구분하지 않으면 오류에 빠지기 쉽다.

8절의 "땅 사분의 일의 권세"는 재앙의 범위와 강도를 나타낸다.

6장에서 말하는 땅의 범위가 사분의 일인데 8장에는 삼분의 일로 나타내고 16장에는 전부로 나타낸다.

재앙의 범위와 강도가 커짐을 알 수 있다.

네 가지 인의 특징은 공통적으로 말이 등장한다.

네 가지 인과 네 가지 주제는 적 그리스도 분쟁 기근 온역과 전염병을 다룬다.

요한계시록은 2,3장에서는 일곱 교회를 말하고 6장에는 인의 비밀을 말하고 8장에는 나팔의 비밀을 말하고 16장에서는 대접의 비밀을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 결론에 해당되는 17장에서 18장에는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을 다루고 19장에서 22장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을 다룬다.

하나님은 관계 회복을 위해 경고 차원의 메시지를 이 종말의 시대에도 계속 주신다.

6장 9절에 보면 다섯 번째 인을 떼는 말씀이 있다.

6:9다섯째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제단의 위치는 레위기 4장에 보면 땅이다.

그런데 계시록 6장에서는 하늘이다.

고린도 전서 15장 20절에 보면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 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여기서 "첫"은 절대적인 소유권과 무한한 권력을 가지 주인을 뜻한다. 헬라어로 "데스포테스"라 한다.

하나님을 데스포테스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역사의 주관자, 심판자로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주님은 진정한 데스포테스이시기에 이 역사의 주관자이시고 공정한 심판을 행하실 하나님이시다.

6장 11절에서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 행위는 하나님의 법으로 주신 "의"이다.

12절에서 14절에 보면 여섯 번 째 인을 떼신다.

6:12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같이 되며

6:13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6:14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

우주의 대 격변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어지는 15절에서 17절은 그 격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표현되어 있다.

지진이 나고 해가 검어지고 달은 핏빛으로 변한다.

우주를 표현하는 해 달 별 땅은 떠나가고, 옮겨지고, 떨어지고, 흔들리고, 떠나가고 옮겨지고라고 표현하고 있다.

즉 인간이 기초한 것 중에 영원한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영원하리라고 믿었던 모든 것들이 파괴되고 무너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성경에서 묵시문학으로 기록하는 내용은 종말, 심판, 구속이다.

우주의 대 격변을 묵시문학으로 묘사한 것은 구원과 심판과 종말을 다루기 위해서이다.

이 심판 후에 계시록 21장 1-4절에 보면 심판 이후 최종적으로 맞게 될 삶의 모습이 표현되고 있다.

심판 이후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다 펼쳐진다.

아픈 것도 다시는 있지 않고 처음 것들도 다 지나갔다.

6:15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

땅의 사람들은 하나님 밖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임금 왕족 장군 부자 강한 자 종 자유인이라고 표현한다.

종말의 순간에도 하나님을 찾지 않고 잘못된 대상을 의지하는 땅의 사람들은 17절에서

6: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오 하더라

"누가 능히 서리오"라고 말한다.

미래를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어린 양이시다.

계시록 7장 4절에 보면

7:4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십사만 사천으로 많은 이단들이 이 숫자를 다루고 있다.

인침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백성을 말하는데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완전수는 12이다.

그래서 12제자 12지파 등이 나온다.

12사도는 예수님 시대의 교회 기초를 놓았던 제자들이다.

하늘의 숫자 3은 성부 성자 성령을 뜻한다.

또 땅의 숫자 4는 동서남북을 뜻한다.

3과 4를 곱하면 12가 된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12를 완전수라 생각했다.

완전수의 완전수를 곱하면 완전한 수가 되고 144가 되고 많다는 수 1000을 곱하면 144000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숫자가 주는 의미가 있다 7은 행운의 수, 4는 운이 나쁜 수, 십리라는 의미는 장거리를 말한다.

유대인들도 숫자로 의미를 많이 표현했다.

다윗과 사울 왕 시대에 보면 사울이 죽인 수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수는 만만이라 라는 것처럼 천이라는 숫자는 많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144000이라는 수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사람은 많음을 뜻한다.

7장 9절에 보면

7: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어린 양은 심판 때 찬양과 영광을 받으실 존재이다.

누가 능히 서리오 예수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특징은 시간이 아니라 의미를 기준으로 배열하고 있다.

8장 1-2절에 보면

8:1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 시간쯤 고요하더니

8:2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일곱 천사가 서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1장에서 8장까지 보면 일곱 교회에서 일곱인 그리고 일곱 나팔 일곱 대접으로 이러진다.

8장 3절에 나오는 성도의 기도,

6:9에 나오는 제단 아래, 8:3에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고 되어있다.

성도의 기도가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데 천사가 그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을 때

우레와 하나님의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성도들의 모든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됨을 뜻한다.

억울함을 겪는 성도들의 기도를 하나님이 기억하신다는 것이다.

성도의 기도의 영향력과 결과는 이 땅에 한정되지 않는 것이다.

이 땅에서 결과물을 보지 못하더라도 그 넘어의 그 영역을 넘는 기도에 힘써야 한다.

이것이 신앙의 후손에게 남길 진정한 유산은 기도이다.

긴 강의였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었다. 이젠 일곱인에 대한 비유와 성경에서 말하는 숫자에 대한 뜻을 알았다.

오늘 강의 중에 가장 현실로 와 다았던 부분은 우리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하늘, 별, 땅, 달과 같은 터전이 흔들리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대주제자가 되신다는 것이다.

삶에서 고난이란 빼 놓을 수 없다. 삶 전체가 흔들리는 상황.. 병 등으로 인하여 ..

그 순간도 하나님은 우리의 대주제자가 되심을 기억해야 한다.

어제 딸이 와서 다니는 회사가 앞으로 많은 인원 감축이 행해진다고 불안해하며 기도 부탁을 했다.

지난 4월에도 250명이나 레이오프를 했는데 또 한차례 더 한다고 한다.

불안해하는 딸에게 하나님은 항상 너의 앞에 가시고 너 뒤에는 엄마 아빠가 있다고 하며 기도한다고 말해주었다.

23살 아직 어린띨에게는 삶의 터전을 뒤흔드는 일일 것이다.

오늘 마지막 절에서 기도가 아이들에게 남겨 줄 수 있는 유일한 유산이고 유일한 해결책임을 알게 하셨다.

언젠가는 예수님은 오신다. 종말의 때를 사는 우리는 늘 주님의 재림을 생각하며

모두 구원하시기 위해 재앙이나 고난을 통해 보여주시는 사랑의 메시지를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함을 생각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