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말씀 묵상

요한계시록 11장에서 15장까지 묵상

차작가 2023. 10. 13. 11:27

요한계시록은 역시 어렵다.

요한계시록은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 평신도라면 반드시 검증되어 있는 목회자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교회에서도 요한계시록을 잘 다루지 않기 때문에 강해 설교를 듣는 것이 참 어렵다.

개인적으로 나의 대부분의 묵상은 CBS 성서학당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계시록은 CBS 성서학당의 송태근 목사님의 54편의 강해가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한꺼번에 다 들을 수 없지만 1장에서 21장까지 계시록을 읽을 때

이번 통독에서는 8장 집중 공부 다음 통독시는 9장 집중 공부 이런 식으로 목표와 분량을 정해 놓고 집중해서 공부하면 묵상에 큰 도움이 된다.

오늘은 11장에서 15장까지 읽었지만 그중에서 두 증인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11장만 강의를 반복해서 들었다.

요한계시록 11장 1절에 보면

11:1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11:2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11: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1절에서 "측량하되"와 2절에서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와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와 3절에서 "굵은 베옷"이라는 말씀이 있다.

우선 그중에 측량하다를 설명하면 헬라어로 메트레손라고 하는데 "재다, 측량하다"이다.

그런데 측량하다 속에는 설계하다는 의미가 더 크다.

측량은 언제나 건축을 전제로 한다.

로마로부터 기독교인들이 많은 박해를 받고 있던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완전한 설계를 보여 주는 것이다.

교회란 물론 지역 교회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건물이 아닌 우리 신자들이 진정한 교회이다.

그러므로 1절에서 말하는 측량하다 설계하다는 말은 로마의 학정 아래 고통당하는 성도들에게 믿음에서 흔들리지 말 것을 권면하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설계하신 일은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성경 속에서 2는 확정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수이다.

두 증인 이란 환란 속에서도 교회와 성도들이 증인의 역할을 감당해야 함을 말한다.

하나님은 고난 가운데 있는 두 증인 ( 교회와 성도)을 향해 하나님의 영원한 설계를 보여주시는 것이다.

요한복음 2장 21절에 보면

2:21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님이 곧 성전임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전은 예수님 자체이시다.

2절에서 성전 바깥마당을 측량하지 말라는 의미는 여기서 "측량하지 말라"는 것은 "담을 헐어 버리겠다"라는 뜻이다.

바깥 뜰에 있는 담을 헐어 버리면 사람들이 들어오게 된다.

그때 이방이들에게 내어 주었을 때 즉 고통 가운데 바깥뜰 즉 한정된 공간을 내어 주었을 때 마흔두 달 동안 짓밟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마흔두 달은 삼 년 반이고 1260일을 뜻한다.

삼 년 반이라는 수치는 제한적 기간이고 제한적 환란을 의미한다.

일시적이지만 고통과 환란을 겪게 된다.

다니엘 7장 25절에 보면 "성도들은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다니엘서도 묵시문학에 속하기 때문에 등장하는 표현들은 문학적 표현이다.

그러므로 일시적으로 즉 한정된 시간 동안 이방인들에게 내어주어 고난을 당할 것을 설명하고 있다.

11:4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11:5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11:6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6절에 보면 "비", "피", "여러 가지 재앙". "땅을 치다" 이 표현들은 구약의 등장하는 엘리야나 모세를 연상하게 한다.

엘리야와 모세의 삶은 현대의 교회와 성도들이 본받아야 할 삶의 모습이다.

마태복음 17장 12절에 보면

17: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이렇듯 예수님도 고난을 받으셨다.

그 당시 신자들이 로마로부터 직면해 있던 핍박은 죽음이었다.

그들에게 이 고난은 잠시 한정되어 있는 것을 명심하고 이때가 지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하나님이 설계하신 그 계획을 이루어 주심을 기억하라는 말씀이다.

결국은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계획은 끝내 이루실 것이며

우리에게 두 증인과 같이 끝까지 믿음을 가지고 구약의 엘리야나 모세와 같은 그들의 삶을 본받아

하나님이 설계한 일은 이루실 것을 소망하며 살아라는 말씀이다.

오늘 말씀은 힘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거운 말씀이었다.

끝까지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이 나를 향한 설계가 기대가 되기도 하지만 그 안에는 고난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분의 생각을 이해할 순 없지만 그분이 나의 인생의 설계자 이 시기에 나는 맡기는 작업을 날마다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