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가르침

예수님의 가르침 55: 하나님 나라를 맛보는 삶 - 누가복음 14장 15-24절

차작가 2023. 11. 13. 12:32

15절 함께 먹는 사람 중에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

16절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들 청하였더니

17절 잔치할 시간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가로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18절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하나는 가로되 나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19절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20절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장가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21절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22절 종이 가로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오히려 자리가 있나이다

23절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24절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본문 해석:

1. 본문 시작된 배경

A. 유대의 교만한 마음: 14:15 함께 먹는 사람 중의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

1) 잔치와 연관된 예수님 말씀은 청함을 받았을 때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말씀의 의미는 잔치 자리는 청함 받은 자가 높임 받거나 돋보이는 자리가 아님을 가르치시는 것이다.

두 번째로 하실 말씀은 잔치에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을 청하는 것이다.이유는 전자의 사람들은 갚을 수 있고 후자의 사람들은 갚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우리는 잔치의 의미를 분명히 알 수 있다. 그것은 잔치는 오직 베푸는 것이지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잔치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님 나라 곧 천국의 삶을 현재적으로 보여주고자 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에서 증거 되는 천국의 삶이란 천국 잔치에 청함 받은 사람으로서 내가 높임 받거나 돋보이기 위한 길을 가는 것이 아니며, 보답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베푸시는 잔치에 청함을 받아 참여된 것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정하라”(13절)는 말씀은 그 자리에 있는 바리새인을 무시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심기가 불편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라는 말로 예수님의 말씀에 반박을 한 것이다.

2) 이 말을 한 유대인은 아마도 이사야 25:6-8(25: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25:7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얼굴을 가린 가리개와 열방 위에 덮인 덮개를 제하시며 25:8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말씀을 생각했을 것 같다.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가 이 땅에 오면 그 잔치에는 오직 하나님의 백성들(유대인들 모두)만 참여 할 것이므로 그 잔치에서 떡을 먹는 자는 어떻게든 복이 있다는 말이다.

B. 목적: 이 대답에 대해 천국에 누가 들어가나 확실히 말씀해 주시기 위해서이다. 즉 모두가 아니라는 것이다.

2. 본문 이야기 전개

1) 16, 17절: 14:17 잔치할 시각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 때가 되어 청하였던(1차) 자들에게 사람을 보내어 잔치에 오라고 함(2차)

2) 18절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14:19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열 마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14:20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 참여 못하는 핑계를 댐

3) 21절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4) 22절 종이 이르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5) 23절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6) 24절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 이 비유에서 큰 잔치는 하나님 나라를 의미하므로 잔치에 들어 가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가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잔치를 맛 보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3. 먼저 누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지를 살펴보자

A. 바리새인들의 오해

1)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바리새인은 자신들이야 말로 하나님 나라 잔치에 초대될 사람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하늘나라의 잔치에 초대 한다면 그 대상은 예수님이 청하라고 한 부류의 사람들보다는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는 일에 철저하며 신앙적으로 성실히 살고 있다고 여기는 자신들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제 아무리 가난하고 몸이 불편하고 맹인과 같은 사람들 편을 든다고 해도 결국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초대되어 떡을 먹을 복된 사람은 우리들일 수밖에 없다고 반박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이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크게 오해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하나님 나라를 바리새인들처럼 규례를 지키며 열심히 신앙 생활한 사람들이 들어가는 것으로 오해한 것이다. 즉 자신들이야 말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하나님 나라 잔치에 청함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2) 우리도 바리새인과 같은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우리의 행함을 자랑하는 것이다. 이렇게 했으니까 상급을 바라는 것을 당연시 하는 것이다.

대개의 기독교인은 신앙을 외적인 열심에서 찾는다. 열심히 있을수록 천국이 당연한 것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보다 더 큰 상을 받을 것으로 여긴다.

B. 이러한 바리새인들을 청함을 거절하면서 초청에 응하지 않는 세 부류의 사람들로 비유하시면서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다.

1) 각각의 이유들이 변명 혹은 핑계가 되는 이유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사기 전에 잘 검토하고 샀어야 했다 . 사고 파는 것은 어느 정도 시간이 있을 텐데(요즘 같으면 due diligence) 늦게 불참 통보하는 것은 주인에 대한 모독이다.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시험하고 샀어야 했다. 이 정도의 소를 가진 사람이 일꾼이 없다는 것은 핑계이다.

나는 장가 들었으니,전쟁에 나가는 것 외에 핑계 댈 것이 못된다.

2) 또한 이것은 잔치 보다는 자신의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밭을 사고 소를 사고 장가드는 일은 단시간에 되는 것이 아니라 계획을 세우고 오랜 시간 준비를 해서 이루는 일이다. 일단 밭을 사고 소를 사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장가들기 위해서도 역시 돈이 필요하다. 따라서 밭을 사고 소를 사고 장가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면 그 계획을 위해 오랜 시간 돈을 모아야 한다. 그리고 드디어 계획을 이루었다면 마음이 많이 설렐 것이다. 때문에 잔치보다는 자신의 일이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일이 더 중요하니까 초청 받은 잔치를 오히려 귀찮게 여길 수 있다. 잔치 초청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없을 것이다.

3) 예수님이 말씀한 청함을 거절한 사람들은 바리새인을 뜻한다. 예수님은 이들 바리새인을 하나님 나라 잔치에 당연히 참석할 자격이 있다고 여김으로 잔치에 청한 주인에게 감사한 마음이 없는 자로 드러냄으로써 이 같은 사람들이야 말로 하나님의 잔치를 맛보지 못한다고 하신 것이다.

잔치에 청한 주인에게 감사한 마음이 없다면 주인이 베푼 잔치 역시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된다.

4. 누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나?

1) 21절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은 ‘갚을 것이 없는 자’ 소외되고 잔치에 참여할 기대 조차도 않던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 초대 되어 들어 가는 것이 하나님 나라다. 잔치에 참석하게 되는 사람은 무슨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잔치 주인에 의해 택함을 받은 사람들이다.

2) 23절 ‘길과 산울타리 가’ 이방인을 의미:

이스라엘의 실패로 이방인들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롬 11:11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 게 함이니라)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 (13:30)

2) 23절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강권함을 입은 자들)

이 내용을 전도하여 예배당을 채우라는 의미로 해석 하고 있다. 교회 부흥에 마음을 뺏긴 사람들에게는 아마 본문에서 다른 내용은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전도를 잔치에 청하는 것으로, 전도했을 때 거절하는 것을 청함을 거절하는 것으로 해석하면서 그래도 전도를 포기하지 않고 사람을 강제로라도 데려와서 예배당을 채워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해석이 천국의 비밀을 보지 못한 왜곡된 해석일 뿐이다. 잔치 비유에서 예수님은 예배당에 대한 문제를 언급하신 적이 없다. 또한 예수님이 말씀한 내 집은 하나님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지 예배당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강권하여 데려다가 채우라고 하신 사람은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이다.

강권하여 데려오라고 한 것은 강제로 데려오라는 의미로 들릴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청함을 사양하는 사람들을 강하게 권하여 데려오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주인의 청함을 받아 잔치에 참여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나 같은 자를 청한 주인에게 감사한 마음이 앞선다는 것이다. 이것이 청함을 거절한 사람들과 다른 점이다. 청함을 거절한 사람들은 자신이 청함 받을 것을 대단한 일로 여기지 않았다. 때문에 자신을 청한 주인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없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 잔치에 당연히 청함 받을 것으로 여기는 바리새인의 마음이다.

자기는 잔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인 줄 알고 멍하니 있었는데 누군가가 와서 손을 붙들고 잔치 집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그게 강권이다. 하나님의 천국 잔치는 우리가 갚을 것을 준비하여 가는 곳이 아니라 강권하여 초청을 받아 가는 곳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강권으로 이뤄진다. 절대 자신의 노력과 열심과 자격과 조건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구원의 확신은 내가 갖는 주관적인 것이어서는 안 된다. 내 행실이 성실하고 경건할 때에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다가도, 가끔 실패하거나 실수할 때에는 구원을 잃은 사람처럼 낙담하고 하는, 그런 감정적인 것과, 자신의 행위의 다소로 구원을 가늠하면 안 된다. 그건 구원의 운전대를 내가 잡고 있는 것이 된다.

* 하나님 나라를 먼 미래로 보면 안된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임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이미 임했으며,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제 삼일 만에 부활 하심으로 이미 하나님 나라의 문은 열렸다.

5. 현재 임한 하나님의 나라라면 누가 현재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맛 보지 못하는가?

1) 앞서 거절한 세 가지 경우

첫째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다.

둘째 ‘나’라는 우상에 빠져서 사는 사람이다.

셋째 자기 유익에 빠져 있는 사람이다.

초대를 받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볼일을 핑계로 잔치 집으로 가지 않았다. 쉬운 말로 자기 볼일이 있는 사람들은 그 볼일 때문에 남의 잔치에 가지 않는다. ‘나’라는 우상을 섬기는 일이 너무 바빠서 남의 잔치에 축하하러 가는 일이 귀찮은 것이다. 그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이다. 바리새인들의 율법 지킴이나 선한 행위들이 전부 자기를 위한 것임이 드러난다.

감사함보다는 서로가 자신을 높은 자로 여기며 ‘나 같은 자가 천국 안 가면 누가 가나’이런 마음으로 천국을 당연한 결과로 생각한다. 여기에는 자신을 청한 분에 대한 감사함이 있을 수가 없다. 예수님은 이것을 청함을 받았으되 잔치를 맛보지 못할 자로 규정하셨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대개의 기독교인은 신앙을 외적인 열심에서 찾는다. 열심히 있을수록 천국이 당연한 것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보다 더 큰 상을 받을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그럴수록 잔치에 청한 주인에 대한 감사함은 자기 의에 묻혀 버리게 된다. 이처럼 자기 의가 중심되어 나 같은 자를 청한 주인에 대해 감사함이 없는 사람을 천국은 원하지 않는다. 이것이 천국의 비밀이다.

2) 사실 이런 것들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비하면 사소한 것들인데 사소한 것들에 빠져서 하나님 나라에 참여 하지 못하고 그 맛을 체험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삶을 살게 된다.

현재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맛 보지 않고서 어떻게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을까?

 

6. 누가 현재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맛 보며 살 수 있는가?

1) 잔치는 마태복음에 보니까 혼인잔치라고 되어 있다.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사람은 초청자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다.

2) 초청자의 마음이 중심이 되는 사람이다. 즉, 자기 중심이 아니라 주님 중심인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맛을 알 수 있다.

3) 천국은 강권해서 데려오는 하나님의 열심에 의해서 들어가게 된다. 우리의 열심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 천국, 하나님 나라이다.

그런데 어떻게 나의 열심을 근거 삼아 더 큰 상을 받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이것은 천국에 어울리지 않는다.

천국에 어울리는 것을 나 같은 자를 잔치에 청하시고, 강권해서라도 그 자리에 앉게 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에 감사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잔치에 참여하게 된 것을 복으로 여기며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