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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전하는 교회 - 에베소서 2장 6-9절

차작가 2023. 11. 29. 11:47

도입:

靈에 대한 한자어 설명

농아- (聾啞)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 농(聾)- 귀 위에 용(사탄)이 자리 잡고 있어서 듣지 못한다. 어둠(흑암)의 권세 아래 있었을 때 우리는 듣지 못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으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를 통해 살리셨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면 (세상 사람들은) 에베소서에서 말하는 내용 그리고 오늘 본문 6절 말씀을 듣고도 들리지 않는다.

본론:

2: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셨을 뿐 아니라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인정하든 안하던 간에)허물로 죽은 자이다. 아무 가치가 없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멸망의 세계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는 것이 마땅한 피조물이다. 그런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부활은 허물로 죽은 우리를 살리시고 생명에 있게 하기 위해서다. 예수와 함께 생명에 속하게 된 우리는 이미 죄와 사망에서 자유를 얻고 거룩과 의로움으로 옷 입은 신분이 되었다. 그 때문에 하늘에 앉힌바 되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것일까?

첫째는 함정의 깊이를 모르기 때문이다 (실감하지 못함)

둘째는 하늘로 높이신 그 위대한 높이를 모르기 때문이다.

앉히셨다는 과거형이다. 앉힐 것이다가 아니다. 즉 완성되었고 완결되었다는 의미이다. 더 이상 어떤 부가적인 것이 필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경은 구원을 이미 성취된 사건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구원이 행위의 여부와 상관없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이미 신분의 변화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8절: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 은혜에 의하여: 하나님의 전적인 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믿음은 구원의 원인이 아님. 그리스도가 구원의 원인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구원의 원인이지 믿음이 구원의 원인은 아님. 믿음은 매개체에 불과 => 하나님의 자비를 거부하지 않는 것.

하나님의 선물이라: 바울이 믿음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한 이유가 무엇일까? 자신이 예수님을 만나고 구원 받은 일에서 절실히 알았기 때문이다. 바울이 예수를 믿고자 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바울을 찾아오셨고 예수님을 알게 하신 결과이다. 바울의 노력과 열심은 전혀 개입되지 않았다.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출발점이 된다.

9절: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유대인들은 행위를 강조함. 선한 일을 해서 구원을 받은 게 아니라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믿음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다. 은혜의 믿음에 초점을 두고 풍성하신 은혜를 나타내는 것에 하나님의 뜻을 둬야 한다.

 

이렇게 은혜로 구원시키신 이유는

7절 2: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이는: 이와 같이 구원하신 이유는

여러 오는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 구원받은 우리와 교회의 사명이다.

우리를 살리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악한 속성이 제거된 상태로 살아감으로써 세상에 아름다운 삶을 실천하고 그것으로 세상을 바꾸는 일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은 7절에서 밝힌 것처럼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게 하는 데 있다. 이 일을 위해 부름 받고 그리스도의 생명에 속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 허물과 죄로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것보다는 아예 새로운 인간을 만드셔서 은혜를 나타내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 문제는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신 풍성한 은혜를 모른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마귀의 유혹에 빠짐으로 허물과 죄로 죽은 자 가운데서 자기 백성을 택하시고 그를 살리시는 방식으로 은혜를 알게 하시고 그 은혜를 나타내게 하셨다. 그러므로 신자는 하나님이 하신 일에서 하나님의 긍휼이 얼마나 풍성한가를 알아가고 감사하고 감격할 수 있어야 한다.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있는 신자는 세상보다는 은혜에 더 큰 가치를 두게 된다. 은혜 아래 있기에 땅의 것이 없다고 해도 간다.

이웃보다 많은 것을 가졌다고 해도 그것으로 자랑하지 않는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행하는 선한 일이고 이것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신자는 어디에 있든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존재한다. 항상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세계로 부름 받았고 예수 안에서 천국을 살고 있다. 이것을 땅의 것으로 확인할 수 없다. 우리가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할 수 있는 것이 풍성하신 은혜를 받은 증거이다.

우리는 여전히 선악과를 먹은 인간의 속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것으로 우리가 허물과 죄로 죽은 자임을 실감하게 된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렸다는 말씀을 보면서도 살 가치가 없는 자신을 확인하게 된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실상이다. 자랑할 것이 없고 내 놓을 것이 없는 존재이다. 그런 우리를 부르시고 살리시고 하늘에 앉히셨다. 신자는 이 은혜만으로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은혜를 나타내는 것이다.

나는 구원을 받을 자격이 없고 지옥 가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받아들임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진심으로 은혜를 아는 것이다.

결론:

농아로 돌아가서. 아(啞). 우린 흑암의 권세 아래 있었을 때 듣지 못했다.

먼저 악(惡)에 대해서 살펴보자 – 버금 아: (최고 보다 한 수 아래. 하나 부족한 것. 예) 아열대: 열대지방보다는 덜 열대. 아황산 황산보다 산소가 하나 부족한 것이다.

십자가를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막고 있는 마음이다.

그렇다면 벙어리아(啞)는 무슨 뜻일까? 입은 있으나 십자가를 막고 있는 상태이다. 십자가에 대해선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진짜 벙어리이다.

오늘 메시지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전하라는 사명을 받았다. 그런데도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진짜 벙어리가 된다. 그런데 왜 전하지 않을까? 듣지 못해서이다. 다시 한번 신앙을 점검해 봐야 한다. 나는 왜 십자가를 전하지 못할까? 그리고 십자가를 전하는 사명을 잘 완수해야 할 것이다.

사람이 죽기 전에 오감 중에서 가장 최후까지 감각이 있는 기관은 귀이다. 끝까지 들어야 한다는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