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묵상

그리스도인입니까? - 사도행전 11장 19-30절

차작가 2023. 12. 14. 13:35

도입:

파일럿 양성되는데 걸리는 시간 및 경비:

가령 F-16 조종사의 경우,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1인당 $20만 불의 돈이 들어간다. 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비행훈련 과정을 마치고 전투비행 대대에 갓 배치된 조종사를 요기 조종사라 부르는데, 약 2년간의 비행훈련 과정을 거쳐 요기 조종사가 될 때까지 300만불가량의 비용이 든다. 그 뒤 훈련을 거듭하며 10년차 베테랑 조종사가 될 때까지 8년간 580만 불의 돈이 더 들어가 모두 900만 불의 양성비용이 든다. 한 나라의 하늘을 지키기 위해 파일럿 한 사람을 양성하는데 이런 경비가 드는데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가진 그리스도인 한 사람을 만드는 것도 만만치 않다.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인이 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가와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 사명이 무엇인가를 보여 준다.

본문 해석:

1. 먼저,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만들어 지기 위해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가 필요하다.

1) 19절: 하나님이 흩어지게 하심으로 이방 지역에 복음이 전파되게 하셨다.

이방 지역인 안디옥(예루살렘으로 부터 북쪽으로 약 300마일 떨어진 수리아의 수도, 여기서 로체스터까지)에 복음이 전파된 이유가 예루살렘에 있던 예수를 믿는 자들이 사울의 핍박을 피해 흩어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인 복음 전파 사역을 이루신다.

2) 21절: 주의 손이 제자들과 함께 하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주께 돌아 오게 되었다.

- 주의 손이 함께 하지 않으면 복음 전파는 어렵다.

- 주의 손이 함께 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 주의 손은 하나님의 능력을 말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결국은 사람들을 주께로 돌아오게 한다. 인간의 힘으로 되는게 아니다.

- 사도행전의 역사는 성령의 역사다.

- 행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 삼천 명이 회개한 사건은 인간의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된 것이다.

- 이방사람 고넬료 집에 모였던 사람들이 베드로의 설교에 생명 얻는 회개인 성령을 받은 일(10장)

-이것을 에스겔에서는 새마음(36:26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이라고 표현했다.

성령이 사람을 변하게 만든다. 성령은 영혼에 새로운 생명을 심어준다.

-새로운 영적 삶의 원리가 심어지고 영혼을 지배하는 성향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

- 이렇게 성령의 역사로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아간다.

- 그런데 한 사람의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을 만들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상상 할 수 없는 값을 치르셨다. 파일럿 한 사람 만드는데 900만 불을 지불한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이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생명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구원의 사역이다.

2. 그리고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을 만들기 위해서 두 번째로 살펴봐야 할 것은 여러 준비된 사람들의 수고가 필요하다.

1) 19, 20절: 먼저, 흩어진 사람들이 박해라는 고난 가운데서도 목숨 걸고 예수를 전하는 수고가 있었다. 이런 수고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21절) 하나님은 인간과 함께 일하시지 혼자 하시는 분은 아니다. 충분히 그럴 실 수도 있지만 함께 하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

2) 다음으로 도움의 손길을 보내고 거기에 순종해서 가는 수고를 생각해야 한다. 22절: 주께 돌아온 사람들이 많으므로 그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낸다. 바나나는 다소에 있는 사울을 찾아 안디옥으로 데려온다

3) 그리고 두 사람이 무리들을 가르침으로 그들의 가르침을 받은 예수의 제자들이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칭함을 받게 되었다.

(26절) => 예수가 누군가를 가르쳤는데 최소 1년 정도 걸렸다. 교회 사역 중 전도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가르치는 것이다. 배우지 않으면 예수님에 대해서 모른다. 물론 개인적인 성령의 역사는 있겠지만 하나님은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해 준비된 사람들을 보내신다. 요즘 말로 하면 목사들을 각 교회로 보내셔서 예수님과 하나님에 대해 가르치게 하신다.

3. 이렇게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와 헌신된 사역자들의 수고와 가르침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된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칭호이다. 그리스도의 사람이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라는 뜻으로서 오로지 그리스도의 뜻을 좇아 행동하는 사람이다. 안디옥의 제자들은 오직 그리스도에 대해서만 말했기 때문에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신자는 세상이 볼 때도 예수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 이것이 안디옥의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들의 삶의 의미가 오직 그리스도에게 있으며 그리스도로 살고 그리스도로 죽는다는 정신으로 살아가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었다.

종이컵 안에 있는 모든 물건들은 종이컵이 움직이는 대로 움직인다.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4.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이처럼 안디옥에서 제자들이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았다고 하는데, 본문에서는 갑자기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오게 되고 그중에 아가보라는 사람이 성령으로 '천하가 크게 흉년 들리라'라는 예언을 했다. 그리고 그 예언이 '글라우디오'라는 로마 황제 때 실제로 실현되었음을 말해준다.

여기서 우리는 왜 갑자기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오게 되고 안디옥에서 흉년을 예언을 했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단지 흉년에 대한 예언을 하기 위해서라면 선지자가 안디옥에 올 필요가 없었다. 흉년은 예루살렘도 포함되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에서도 얼마든지 예언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런데 굳이 안디옥에 와서 예언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흉년에 대한 이야기가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았더라는 말씀 뒤에 등장한다. 이러한 정황들을 살펴볼 때 흉년에 대한 예언은 제자들이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은 것과 연관이 있지 않는가라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오늘 본문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열쇠는 29절에 있다.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라는 이 말씀이야말로 갑자기 흉년이 등장하는 이유를 알게 해준다.

하나님은 무턱대고 심심해서 흉년이 있게 하거나 홍수를 일으키는 분이 아니다. 신자와 불신자에게 똑같이 흉년이 있게 함으로써 그 속에서 성도다움을 보이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이다.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았더라고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만 말하고 그리스도밖에 없는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인'이라고 일컬음을 받았다면 그러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은 분명히 따라오게 된다. 본문은 바로 그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아가보는 제자들이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 받는 안디옥에 와서 흉년을 예언했다. 그리고 흉년이 들자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았던 제자들이 어떻게 행동했나?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냈다. 여기서 부조라는 것은 봉사한다는 뜻의 말이다. 즉 흉년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유대의 형제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물질을 보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안디옥은 흉년을 당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안디옥도 같이 흉년을 겪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았던 제자들은 유대의 형제들을 위해 봉사함으로써 진심으로 그리스도만을 생각하고 그리스도밖에 모르는 '그리스도인'임이 보여지게 된 것이다. 결국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이 누구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흉년이 있게 하셨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실제 삶에서 맺어지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열매를 증거하고 자 하신 것이다. 진심으로 그리스도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이며 그리스도의 은혜로 살아갈 때 그것이 어떠한 열매로 맺어지는가를 증거하고 자 하셨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만으로 사는 사람이다. 만약 우리가 진심으로 그리스도밖에 모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그리스도만 생각해야 한다. 과연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는가를 생각해 볼 기회를 본문이 주고 있다. 안디옥의 제자들은 흉년에서도 유대의 형제를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 봉사했다. 이것이 그리스도밖에 모르는 믿음의 열매이다.

그리고 안디옥의 제자들은 흉년이란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동안 하나님만 믿었고 복음만 전했는데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라는 불평이 전혀 없다. 그것은 유대 형제들을 위해서 부조를 하는 그들의 행동에서 볼 수 있다. 흉년에서도 그리스도에 대한 마음이 변함이 없었고 흔들림이 없었기 때문에 나보다도 형제를 생각하는 그리스도의 마음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항상 마지막, 즉 종말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현재에 서서 현재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종말에 서서 현재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주와 함께 거하는 그날을 기다리는 사람으로서 오늘 현재를 살아도 그날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신자는 언제나 나의 기쁨을 위해서 싸우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자신을 복종시키기 위해서 싸우며 살아간다. 흉년이라는 상황에서도, 그리고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항상 주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가기 위해 자신과 싸우며 주님께 복종하기를 원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다. 이것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서 구별된 삶을 살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러한 일의 도구로 부르셨다.

결론: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와 헌신된 사역자들의 수고와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대부분을 감당하시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하심에 조금 동역하는것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자랑할게 없다. 오히려 그리스도인 되게 만들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유일한 길은 예수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의 씨가 이미 뿌려 졌기 때문에 생명을 가졌다면 어떤 형태로든 그 생명을 표현하게 되고 당연히 자라서 열매를 맺게 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생명의 열매를 많이 맺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길 우린 기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