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절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19절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20절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다
21절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22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는 알지 못하고
23절 다만 우리를 박해하던 자가 전에 멸하려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 다함을 듣고
해석:
1: 유대 교회들이 바울을 변화 시킨 복음에 대해 하나님께 영광 돌림 (18–24)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간 것이 그로부터 3년이 지난 후이었다는 사실은 그의 복음과 사도직이 사도들에게 의존하지 않았음을 증거한다. 그가 3년 만에 베드로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도 그와 함께 단지 15일간 머물렀다. 게다가 거기서 그는 베드로 외에 주의 동생 야고보만 보았을 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다. 여기 언급한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모였던 최초의 총회를 사회했던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적 인물이었다.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이라는 표현은 야고보가 사도들과 대등한 위치에 있었음을 암시한다.
2: 20절에서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다
바울의 말과 기록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었다. 거짓 증거는 제9계명을 범하는 큰 죄이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것은 생명과 같이 중요하다. 그러나 사람이 진실을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의 진실을 알아주는 것도 중요하다. 성경은 진실한 증거의 책이다.
3: 23절에서 다만 우리를 박해하던 자가 전에 멸하려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1:24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길리기아는 바울의 출생지인 다소가 있는 지방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들’이라는 표현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구원받아 그와 영적으로 연합되었음을 나타낸다. 바울이 회심한 지 3년이 지났고 또 예루살렘에 올라가 짧은 기간 베드로와 주의 형제 야고보를 만나고 교제하였으나, 유대의 교회들은 아직 그를 얼굴로 알지 못하는 상태에 있었다. 바울의 사도로서의 소명과 그의 복음 사역은 이와 같이 독립적으로 시작되었던 것이다.
여기에 하나님의 하신 기이한 일이 있다. 여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고 은혜가 있으며 그의 능력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핍박하던 인물을 불러 구원시켜 그가 핍박하던 그 이름 예수를 전파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종으로 만드신 것이야말로 그의 놀라운 은혜를 증거하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상 종종 이런 기이한 일들을 행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형들이 팔아버린 요셉을 통해 형들을 구원하시는 일을 행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동족을 구원하려는 그의 선한 뜻이 꺾이어 미디안 광야로 도피하여 야망 없이 지내던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삼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많은 고난을 받아 쫓겨 다니던 다윗을 들어 약속대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삼일 만에 부활시켜 세상의 구주와 주로 삼으셨다.
바울의 전한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직접적 계시로 되었고 사람에게서 받은 것이나 배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본문에서 여러 가지로 증거 되었다.
첫째, 그는 회심 직후 혈육과 의논하지 않았고 사도들에게도 올라가지 않았다.
둘째, 그는 아라비아로 갔다.
셋째, 그는 3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베드로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넷째, 그는 그때에도 단지 15일간 예루살렘에 머물렀을 뿐이다.
다섯째, 그는 그때에도 예루살렘에서 베드로와 주의 동생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다.
여섯째, 이 모든 말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다.
일곱째, 그가 회심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유대의 교회들은 아직도 그의 얼굴을 잘 알지 못하였다.
우리는 바울이 참된 사도이며 그가 전한 복음이 주 예수께서 직접 계시하신 복음, 곧 하나님의 진리임을 알자. 이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이 없다. 우리는 이 복음과 배치되는 모든 다른 복음들을 경계하고 멀리해야 한다. 오직 이 속죄의 복음만 모든 인류에게 구원과 영생을 줄 수 있다. 그 복음을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과 영생이 있고 그것을 거절하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멸망과 형벌이 있을 것이다.
적용:
바울은 과거에 조상의 전통의 열심으로 인해 예수님을 핍박하는 사람이었다.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일 때도 옆에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 종교적 열심이 결국 예수님의 적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 바울을 하나님은 복음 전도자로 삼으셨다. 하나님은 바울의 어떤 선행을 근거로 부르신 것이 아니었다. 그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핍박하던 인물을 불러 구원시켜 그가 핍박하던 그 예수님을 전파하게 하시는 일을 종종 보게 된다. 하나님의 계획을 우린 다 깨달을 수 없지만 지나고 나면 왜 그리하셨는지 알게 되고 감사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을 반드시 구원하시고 그 구원을 위해 사람을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린 잘못된 열심이 오히려 복음을 방해하는 걸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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