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묵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복음 - 갈라디아서 1:11~17절

차작가 2024. 1. 1. 12:44

B. 바울의 삶에 증명된 복음 (1:11–24)

바울이 예수님으로부터 개인적으로 받은 복음 (11–14)

성경:

11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12절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13절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14절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히 있었으나

15절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 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절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17절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해석: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복음은 사람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사람이 만든 종교는 사람의 행위에 중점을 두고 그 행위로부터 오는 복들을 다룬다. 하지만 기독교가 말하는 복음은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 의해서 계시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은 최고의 권위가 있다. 이런 복음을 전하는 바울도 사도의 권위로 말하는 것이고 각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사도 하나님이 주신 권위로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자신의 힘이 아니라 계사로 받았기 때문에 13,14절의 자신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알 수 있었다.

3: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히 있었으나"

바울은 자신의 과거를 간증한다. 그것은 무지한 열심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했던 과거였다. 종교적 열심은 다 좋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른 지식에서 나오지 못할 때 오히려 유익보다 해가 되기도 한다. 하나님을 믿고 섬김에 있어서는 단순한 열심보다 바른 지식을 가진 열심히 필요하다. 예수 믿기 전에 그의 이름은 사울이었다. 그가 간략히 증거 한 바와 같이, 그는 이전에 유대교인으로서 그의 동년배들보다 더욱 열심히 믿었다. 그는 교회의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에 그를 치는 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옷을 지키는 자가 되기도 했다(행 7:58). 그는 스데반의 죽임당함을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스데반의 죽음 후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일어났을 때 사울은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며 교회를 파괴했던 인물이었다(행 8:3).

바울이 다른 사도들과 별개로 받은 복음 (15–17) 에서 설명하고 있다.

4:"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주권자 하나님께서는 핍박자 사울을 불러 사도 바울이 되게 하셨다. 그의 부르심은 바울의 어떤 선행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그의 은혜였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선택에 뿌리를 둔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 모친의 태로부터 그를 택하셨다고 말했다. 우리의 생명이 모태에서 시작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은혜로 구원하시려고 이미 구별하셨다. 사실은, 그보다 훨씬 더 전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웹 1:4).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구원하셨을 뿐 아니라, 그를 통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방인들에게 전파하기를 원하셨고, 그래서 그를 사도로 삼으시고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시기를 기뻐하셨다. 그는 구원받은 성도일 뿐 아니라, 또한 사도로 부르심을 입었다. 그는 그가 받은 사명이 ‘이방인 선교’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구원받은 즉시 그의 열심은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전환되었다. 그의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알기 원하는 마음의 열심히 끓어올랐음에 틀림없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자원하는 마음을 주시며 사용하신다. 바울은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소원을 갖게 되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는 그때 그 일을 위해 혈육과 의논하지 않았다. ‘혈육’은 하나님과 대조하여 사람들을 가리킨다.

적용:

복음은 사람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그래서 행위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 종교의 대부분은 자신의 열심으로 신의 경지에 이른다고 하기도 하고 정성을 보여야만 기도가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흔히 정화수를 떠 놓고 달밤에 기도하면 소원을 이룬다고들 하고 삼천 배를 하면 간절한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기도 한다. 그러나 기독교가 말하는 복음은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 의해서 계시된 것이다. 그래서 복음은 최고의 권위가 있다. 우리는 이런 권위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다.

평생 절에서 기도하며 사신 우리 할머니는 처음 복음을 받아들이고서는 많이 당황하셨었다.

절에서 삼천 배를 드리고 수양을 해야만 자식들에게 복이 있다고 믿고 평생을 사셨는데 기독교는 너무 쉽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화로 물어보셨었다. 옛 습관을 벗지 못한 할머니에게 기도문을 적어 드리고 매일 세 번 하셔라고 말씀드린 기억이 난다. 초신자인 90세 할머니에게 기독교의 교리를 설명드리는 게 쉽지 않아서였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하루에 세 번 내가 적어드린 기도문을 외우시며 천국 가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것도 나에게서 나온 복음이 아니었나 ... 생각한다.

연세가 드셔서 못 알아 들으실 거라고 단정했었고 정확한 복음을 전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기도문에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우리가 아는 영접 기도로 시작을 했지만 후회가 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이렇듯 우린 우리의 복음으로 신앙생활을 알게 모르게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복음은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에 우리의 생각으로 해석을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도 나의 열심히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것도 태초부터 택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