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묵상

성령으로 - 갈라디아서 5장 2~6절

차작가 2024. 1. 12. 13:14

A. 그리스도 안에서 속박이 아닌 자유 (5:1–15)

1. 자유(1절) 2. 성령(2절-6절) 3. 사랑(7절-15절)

성경, 해석:

5:2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

그리스도 안에서는 그 어떤 법도, 신앙의 기준도 효력이 없다. 유대인들이 그토록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의 표로 삼았던 할례도 그리스도 안에서는 아무런 효력이 없다. 할례도 효력이 없다는 것은 그 어떤 법도 우리를 주님께로 인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는 교회가 어떤 기준을 정해서 그것을 지킬 것을 성도들에게 요구한다면 그것은 크나큰 잘못임을 알아야 한다.

성도니까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극히 당연한 것으로 여기실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성도니까 기도해야 하고, 성도니까 예배드려야 하고, 성도니까 헌금해야 한다는 것은 기도, 예배, 헌금 등을 성도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된다. 즉 기도, 예배, 헌금이 은혜와 사랑이 아니라 법으로 등장을 하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기도를 하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예배에 빠진다는 것 때문에, 헌금을 하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상대방을 책망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행위를 하지 않아도 정당하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법으로 하느냐 은혜와 사랑으로 하느냐를 묻고 싶은 것이다.

 

2절-6절을 보면, 그들의 운명은 네 가지이다.

3장과 4장에서 선포된 것인데, 여기에 다시 강조된다.

첫째, 2절을 보면,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율법주의자들에게는, 그리스도가 아무 유익이 없다. 그리스도의 삶과 고난과 죽음이,

그들에게는 아무 유익이 없게 된다.

 

법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은 한 가지나 몇 가지 법을 지켜서 되는 것이 아니다. 3절을 보면 할례를 받는 사람은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법을 지키고자 한다면 또 다른 법, 법 모두를 다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인간이 없기 때문에 4절에서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즉 법을 지켜서, 신앙의 어떤 법칙을 지킴으로서 성도 되고자 하는 사람은 이미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에서 멀어진 자라는 의미이다.

5:3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

둘째, 3절을 보면,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율법의 한두 가지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율법 전체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이것 자체가 저주이다. 곧 죽음이다.

 

5: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셋째, 4절을 보면,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율법주의자들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지게 된다.

5: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넷째,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율법주의자들은, 의의 소망이 없다. 즉,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성령으로” - 성령에 의해서 through Spirit! - 이 말은, ‘육체로’의 반대이다.

“믿음을 따라” - by faith - 이 말은, ‘행위로’의 반대이다.

“의의 소망을 기다린다” - 우리가 옳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옳다 인정하신다. 이것은 종말론적으로 궁극적으로 완성되는 ‘구원’(salvation), 궁극적인 ‘성화’(ultimate sanctification), 궁극적인 ‘영화’(ultimate glorification) 이다.

 

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나,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나, 별 차이가 없다. 아무 효력이 없다. 율법을 지킨다, 또는 지키지 않는다, 율법 그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바로 그러한 신앙이 문제이다.

율법은 아무 효과가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효과가 있을까?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적용:

율법을 위반했을 경우, 받을 형벌이 무서워서, 율법을 지킬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의 성품은 변화하지 않는다.

오직,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뿐이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사랑의 힘으로 산다. 율법의 힘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의롭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은 좋은 일이다.

그 동기와 힘이 사랑일 때, 좋은 일인 것이다. 그 동기와 힘이, 율법적일 때, 그것은 ‘은혜로부터 떨어지는 것’이 된다.

우리가 이렇게 예배를 드리고, 헌금을 하고, 봉사를 하는 것, 참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그 동기와 힘이 사랑일 때, 아름다운 것이다.

그 동기와 힘이 율법적이라면, 그것은 ‘은혜로부터 떨어지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