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말씀 묵상

시편 41편에서 50편 묵상

차작가 2023. 9. 26. 12:45

오늘은 41편에서 50편을 묵상했다.

150편으로 되어있는 시편은 5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 1권은 1편에서 41편까지이다.

그래서 제1권의 마지막 시인 41편을 나누고자 한다.

41편은 개인 탄원시적이 강한 지혜의 시라고 할 수 있다.

본 시에는 개인의 답답한 상황에 대해서 간구하는 내용뿐 아니라

구원을 주신 하나님을 향한 감사 찬양 그리고 약한 자에게 자비를 베푸는 자가 누리게 될

복을 소재로 하는 교훈적인 내용이 담겨있다,'

시의 마지막 절은 시편 제1권의 송영의 역할을 하고 있다.

41:1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

41:2 여호와께서 그를 지키사 살게 하시리니 그가 이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 주여 그를 그 원수들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41:3 여호와께서 그를 병상에서 붙드시고 그가 누워 있을 때마다 그의 병을 고쳐 주시나이다

"복이 있음이여"에 해당하는 이 말은 제1권의 서두인 시편 1편 1절을 시작하면서 했던 말이다.

이를 통해 시편 1권이 복으로 끝맺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시편을 한 권으로 묶어 주기 위한 것이다.

즉 어떻게 하는 것이 복된 삶인가 하는 것이 제1권의 주제라고 하는 이유이다.

시편 1편에서의 복 있는 삶과 시편 41편에서의 복 있는 삶의 조건은 서로 다른 측면에서 접근하지만 동시에 깊은 연계성이 있다.

제1편에서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서 살아가는 자인 반면 41편에서는 사회적 약자를 돕는 자다.

즉 제1편에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루고 있지만 41편은 대인관계 측면에서 찾고 있다.

여기에서 빈약한 자 또는 가난한 자는 가난과 질병 그리고 실패와 절망 등으로 무기력한 상태에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러한 상태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권고하는 자 또는 보살피는 자는 복이 있다고 선포하고 있다.

1절에서 3절은 약한 자를 돌아 볼 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다루고 있다.

41:4 내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주께 범죄 하였사오니 나를 고치소서 하였나이다

41:5 나의 원수가 내게 대하여 악담하기를 그가 어느 때에나 죽고 그의 이름이 언제나 없어질까 하며

41:6 나를 보러 와서는 거짓을 말하고 그의 중심에 악을 쌓았다가 나가서는 이를 널리 선포하오며

41:7 나를 미워하는 자가 다 하나같이 내게 대하여 수군거리고 나를 해하려고 꾀하며

41:8 이르기를 악한 병이 그에게 들었으니 이제 그가 눕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하오며

41:9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41:10 그러하오나 주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고 나를 일으키사 내가 그들에게 보응하게 하소서 이로써

시인은 이 모든 재앙이 자신의 죄 때문임을 고백하며 겸허하게 회개하고 있다.

"나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또는 "긍휼이 여기소서"라는 표현은 기도하는 시인이 어려움에 처해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4절에 "주께"라는 표현을 쓰는데 범죄 한 대상이 하나님이라는 고백을 한다.

"내가 주께 범죄 하였사오니"라는 말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반역행위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나를 고치소서"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는데 이것은 자신을 치료하고 회복시키시는 분이 하나님뿐임을 고백하는 내용이다.

"그의 이름이 언제나 없어질까" 하는 것은 자신이 질병을 앓고 있는데 위로의 말을 전하는 악인들의 위선을 고발하는 의미를 지닌다.

병상에 누워 있는 환자에게 위로는커녕 조롱하고 괴롭히고 있음을 표현한다.

시인을 대적하는 악인들이 거짓 소문을 퍼뜨리고 다시 일어나지 못한 다고 악담을 퍼트림으로 시인을 수렁에 빠뜨리며

그들의 악한 목적을 성취하려고 하는 것이다.

자신을 배반하고 대적한 이들이 나의 가까운 친구라고 묘사하고 있다.

이는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로부터 배신 당함을 보여준다.

"나를 대적하여 발꿈치를 들었다"라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들어 올리다"라는 말인데 배신행위를 일컫는다.

공동 번역에서는 "뒤 발질을 한다"라고 번역되어 있다.

이 말은 나귀나 말 등 짐을 나르는 짐승이 그 주인을 발로 걷어차는 행위에서 유래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을 하나님께 시인은 아뢰는 것이다.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은 세상 모든 사람이 자신을 대적하고 배신하는 상황 가운데도

한결같이 신실하게 자신을 대하실 것을 기대하고 있다.

"나로 저희에게 보복하게 하소서" 이 말은 우리에게 혼돈을 준다.

"악을 선으로 갚아라"라는 말씀과 상반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인이 보응 또는 보복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원어의 뜻은 보복이라고 되어있지만 자신의 마음을 토로하는 것이며 공의로운 하나님이 심판하시길 바라며

자신의 입장을 전하는 탄식의 표현이다.

즉 자신의 입장을 알아 달라고 피력하는 간구이다.

41:11 내 원수가 나를 이기지 못하오니 주께서 나를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41:12 주께서 나를 온전한 중에 붙드시고 영원히 주 앞에 세우시나이다

41:13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 아멘 아멘

시인은 하나님을 신뢰함을 시로서 보여주고 있다.

대적들이 자신을 이기지 못하는 상황을 신뢰하며 미리 기뻐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승리하지 못함으로" "이기지 못하오니 나를 붙드시고" "송축할지로다"라는 말에서 느낄 수가 있다.

하나님이 베푸실 승리를 확신하며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한다.

"나의 완전한 중에" "온전한 중에"라는 말은 순결함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모든 축복의 조건을 다 갖춘 상태임을 말한다.

어려운 상황에서 그를 벗어나게 하시고 모든 것으로부터 회복시켜 주실 것을 확신하는 말이다.

마지막 절은 제1권의 전체를 결론짓는 절로서

앞에 구절들이 개인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여기서는 이스라엘 전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라는 표현을 통해 지금까지의 모든 은총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임을 말한다.

오늘 이 말씀을 나눈 특별한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나도 이 시인과 동일한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대략 8년을 겪었고 4년 동안 뇌출혈을 무려 8번을 겪었다.

지금은 많이 회복되어서 겉으로 보기에는 환자처럼 보이지 않으나 나는 시야의 한 부분을 잃어버려

특히 책을 읽을 때나 글을 쓸 때 어려움이 있다.

예를 들어 거울을 볼 때 전체는 보이지만 내 얼굴의 코를 응시할 때 내 얼굴의 오른쪽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강아지와 산책을 할 때 내가 보지 못하는 시야 속에 강아지가 들어가면 강아지가 보이다가 안 보이다가를 반복한다.

그리고 잦은 출혈로 인해 뇌전증이 생겨서 발작을 함으로 약을 복용해야 한다.

그리고 오른손가락에 힘이 없어서 현재 재활 중에 있다.

여덟 차례의 뇌출혈에 비하면 미비한 장애지만 뇌출혈의 환자들이 대부분 겪고 있는 불안장애와 우울증을 깊이 앓았다.

무엇보다도 힘든 것은 유일하게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인 꽃꽂이와 글 쓰는 것을 하는데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이 글을 쓸 때는 왼손으로만 하고 오른쪽의 앙 보이는 시야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런데 이 어려운 상황 속에 가장 믿었던 친구가 나에게 악담을 하고 너는 죽을 거라고 말을 했었다.

그때 벼랑 끝에 서 울고 있는 나를 뒤에서 밀어 버리는 것만 같았다.

그 후배는 유일하게 나의 깊은 속을 나누는 사이였고 가족에게도 소개할 정도로 친밀한 관계였다.

사람은 낮은 곳에 있어봐야 세상이 제대로 보이는 건가 보다.

시편 41편 9절 말씀처럼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이 말씀 그대로 경험했다.

이것이 내가 병중에 경험한 세상이었다.

배신당한 그 마음이 절망으로 바뀌었고 나는 우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 시인과 다르게 그 후배가 나에게 용서를 구하고 돌아오고 회복되길 기도한다.

처음에는 밉고 원망스러웠지만 그 아이가 이단에 빠져서 뒤틀려진 신앙인이 되어 하나님에게로부터 벗어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무너졌지만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고난을 허락하신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는 완전한 것이 없음을 보여 주셨고 나를 낮추셔서 세상의 밑바닥까지 내려가게 하셨다.

그리고 정확하게 세상이 어떠함을 인지하게 하셨다.

이제서야 나는 세상을 보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약한 자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성도는 어떠한 자세로 약한 자를 섬겨야 하는지를 알게 하셨다.

세상에는 우정도 사랑도 완전하지 않다. 오직 완전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밖에 없다.

친구는 내가 그 말을 듣고 절망하고 기도하지 못하는 지경까지 이르도록 원하지는 않았지만

친구를 사용한 사탄은 내가 절망하고 원망하고 기도의 자리에 가지 못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안 되는 것이 진정한 보복이고 보응이다.

내가 무너지지 않는 것이 진정한 복수이다.

내가 만약 그 친구를 원망하고 미워했다면 사탄이 이긴 것이다.

그 사실을 나는 최근에서야 알았다.

작년 9월부터 시작된 말씀 묵상이 처음에는 발가락까지 덮였고 그 성령의 물은 무릎까지 덮었고 지금은 심장까지 가득 찼다.

언젠가는 그 성령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날을 기대한다.

이 은혜의 말씀에 순종하는 의미에서 나는 매일의 기도문에 그 친구의 이름을 적고 기도하고 있다.

그리고 세상의 약자인 나 같은 병을 앓는 사람이나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되고자 기도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 결심으로 카톡의 메인화면에 "벼랑 끝에 있는 사람에게 손을 잡아 주는 삶을 살자"라고 적었다.

그리고 가난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헌금을 한다.

이런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께서 "복되다" 하셨다.

여러분도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께 나아가서 나처럼 하나님이 건져 주시는 삶을 사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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