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여러 군데 묵상의 포인트가 있어서 어느 시편을 고를지 정하기가 어려웠다.
그중에서 22편과 30편을 고민하다가 30편으로 결정했다.
시편 30편은 "다윗의 시 곧 성전 낙성가"라고 되어 있지만 다윗이 쓴 시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 당시 다윗에게 헌시되는 시가 많았으므로 무명의 한 작가가 다윗에게 헌시한 것으로 보인다.
시편 30편은 개인적인 감사 시 또는 찬양 시로 분류할 수 있다.
저자는 질병과 죽음에서 구원해 주신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시를 쓴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인 찬송과 감사의 시는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그것은 예비적인 선포와 요약 그리고 과거의 위기에 대한 언급 마지막으로 지난날의 비탄에 대한 회상과 최종적인 찬양의 선포 등이다.
30:1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내 사 내 원수로 하여금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30:2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30:3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1절은 이 시의 전체적인 요약으로 시인이 죽음의 적들로부터 구원받은 것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에서 히브리어의 본래 의미는 우물에서 끌어올리는 행동을 묘사한다.
따라서 시인은 무덤에 떨어지는 것과 같은 병을 앓았으며 마치 우물에서 끌어올리듯 하나님의 도움으로 죽음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대적들"이라 함은 시인이 가졌던 병의 위험을 말하고 있다.
죽음의 문턱까지 몰고 간 병 가운데 친구까지도 적이 된 것이다.
그 시기에는 병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속단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가운데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은 치료하심으로 응답하셨다.
여기서 음부라는 의미는 죽음이 아니라 거의 죽은 상태였음을 말하고 있다,
시인은 하나님의 치료하심을 통해 구원받은 것이다.
끌어내다, 고치시다, 끌어올리다, 회복하다 이런 동사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찬양하고 있다.
30:4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
30:5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30:6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30:7 여호와여 주의 은혜로 나를 산 같이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시인은 독자들에게 시를 통해 찬양에 참여하도록 초청하고 있다.
하나님의 자비는 "헷세드"이다.
"헷세드"는 하나님의 언약에 바탕을 둔 사랑이다.
"핫시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자신의 삶 속에 받아들이고자 노력해온 언약 공동체의 동료로 묘사되어 있다.
동료 예배자들이 찬양의 행위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구원에 관하여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은 언약 공동체의 거룩한 삶으로 표현된다.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을 대할 때 하나님 앞에서 대하듯 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비를 나타내는 것이다.
또한 시인은 죄악에 대해서 자신의 과오를 고백한다.
자신이 건강하고 번영했던 시절에는 자기 과신에 빠져서 자기가 가진 것은 무엇이든지 자기가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죄악 중 하나였다.
인간적 성취의 결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어리석음을 회개하고 있다.
6절의 구조적 특징인 대구법과 접속사 생략으로 인해 더 생생하게 표현된다.
"노여움은 잠깐이요" "형통할 때 영원히 말하기를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그는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번영을 누렸음을 고백한다.
6절에서 7절에서 미뤄볼 때 시인은 감사를 두 가지로 이야기하고 있다.
첫 번째는 병이 나은 것이고
두 번째는 죄 사함을 받은 것에 감사하고 있다.
자신은 의로운 고난자가 아니라 자신의 잘못의 결과로 병을 앓았음을 고백하며 죄에 대한 심판은 합당함을 말한다.
지난날 건강했을 때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라"라고 말했으나 질병으로 인해 무덤으로 빠져들기 시작했음을 말하며
자신은 교만함으로 인해 응징을 받은 것임을 고백한다.
30:8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30:9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오 진토가 어떻게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 하리이까
30:10 여호와여 들으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를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30:11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30:12 이는 잠잠하지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시인은 위기의 때에 드린 탄원이 기도를 회상하고 있다.
오직 회개한 자만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의 신실하심을 선포할 수 있다.
자신은 벼랑 끝에서 기도의 응답을 얻었으며 현재는 "저녁에 울음이" 아니라 "아침에 기쁨으로" 바뀌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슬픔이 춤으로" "우울한 베옷이 찬양의 옷으로" 바뀐 것을 경험했던 것이다.
따라서 동료 예배자들과 함께 찬양하며 결론을 맺는다.
이 시가 낙성시로 쓰였던 이유는 페르시아가 그리스에게 멸망되었을 당시 알렉산더가 죽고 두 왕국으로 나뉘게 되었다.
그때 안티오구스 에피파네스 왕이 전쟁에 지고 돌아갈 때 이스라엘 성전을 화풀이 대상으로 더럽히는 사건이 있었다.
그때 번제단에 불결한 짐승인 돼지 피를 뿌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막고 율법을 읽지 못하게 하는 등 핍박을 가했다.
바벨론에 의해 파괴된 성전 그리고 셀류커드왕조와 프톨레미왕조의 세력 다툼에 애꿎은 피해를 보는 이스라엘
이때 3대에 걸친 독립운동을 시작하는 마카베오 일가가 투쟁해 성전을 다시 찾은 것을 기념하는 하누카 축제에 이 시를 낙성가로 읊었다.
이 국가적인 슬픔과 기쁨을
한 개인이 겪은 병으로 인한 고난과 하나님의 치유하심을 노래한 시를 사용하므로 동일시 한 것이다.
결국 아픔을 자신의 삶을 성찰한 계기로 만든 것처럼 국가적인 고난도 민족을 성찰하는 계기로 삼고
회복케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렸다.
즉 근심이 기쁨이 된 것이다.
사람은 고난을 통해서 신앙이 성숙하게 된다. 또한 그동안 감사를 모르고 살았던 헛된 인생에서 감사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낙성식을 통하여 빼앗긴 예배가 다시 찾은 예배가 됨으로 그들은 하나님께 진정한 감사와 찬양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이 시를 묵상한 이유는 나도 이 시인과 같이 병을 앓았고 지금도 회복 중에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다른 사람이 겪는 병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도 큰 상처를 받았다.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상처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나의 오만함을 깨닫게 하셨고
그동안 내가 누린 삶이 내가 이룬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발견하게 하셨다.
그리고 벼랑 끝에 서있는 사람들을 보게 하셨고 고통 가운데 있는 이웃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삶을 살아라 하셨다.
그때 어떤 이들은 벼랑 끝에 서있는 나를 밀어버리는 친구도 있었다.
그러나 유일하게 나를 잡고 놓지 않은 분은 주님뿐이었다.
그 주님의 은혜가 나를 치유하셨고 나를 구원하셨다는 확신으로 감사 찬양을 드릴 수 있었다.
이 헷세드가 나를 살린 것이다.
나를 무덤에서 끌어올리시고 고통에서 끌어올리셨다.
이 경험을 다른 벼랑 끝에 서있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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