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묵상

손바닥 묵상 1 - 사사기 11장에서 21장

차작가 2023. 9. 18. 09:11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라고 사사기서는 끝을 맺는다.

이렇게 끝을 맺는다는 것은 영적으로 암울한 시대였음을 반영해 주며

또 한편으로는 앞으로 이어지는 사무엘서의 왕국의 시대를 열어갈 것에 여지를 준다.

언제나 읽어도 사시기서에서 가장 충격적인 스토리는 입다의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오늘은 입다 와 그의 무남독녀 딸의 죽음에 대해서 나누고 싶다.

11:9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할 때에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넘겨 주시면 내가 과연 너희의 머리가 되겠느냐 하니

11:10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여호와는 우리 사이의 증인이시니 당신의 말대로 우리가 그렇게 행하리이다 하니라

11:11 이에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과 함께 가니 백성이 그를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아뢰니라

11:12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사자들을 보내 이르되 네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내 땅을 치러 내게 왔느냐 하니

입다는 사생아였다. 어머니는 창녀 출신으로 아버지의 기업을 이어 받지 못하는 버려진 자였다.

그러나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과의 대화에서 엿볼 수 있듯이 이스라엘 역사관도 뚜렷하고 패기가 있는 자였으며 무엇보다도 용맹스러운 자였다.

그래서인지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할때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찾아와서 암몬 자손들과 싸워 줄 것을 부탁한다.

그 조건으로는 길르앗의 리더가 되는것이었다.

고향땅에서 형제들에게 쫓겨나 북쪽의 놉에서 지내던 입다에게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절호의 찬스였다.

형제들에게 보란 듯이 나타날 수 있었으니 그만한 제한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입다는 암몬과의 전쟁을 반드시 이겨야만 했을 것이다.

11:30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

11:31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장로들의 제안은 입다에게 성공하고자 하는 욕심 말고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뭔가가 필요했다.

그것이 무엇으로 돌아오는지도 모르는 체..

싸움에 나가기 전 번제를 드린다든지 그런 모습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승리를 주셔서 평안히 돌아오면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이 말속에는 자신의 딸은 없었다.

이 말을 들은 사람 중에 누가 감히 그를 기쁘게 먼저 나가 맞이할 수 있었겠는가!

그 말을 듣지 못한 그녀 밖에는..

입다는 자신의 집에서 일하는 종이 나오길 기대했었을까? 모든 생명은 다 귀하고 소중한데도 말이다.

결국 성공을 쫓아가던 입다는 그의 전부였던 무남독녀를 잃게 된 것이다.

평생 창녀의 자식으로 무시당하며 살았던 그는 남자를 알지 못했던 무남독녀 딸이 인생의 전부였을 것이다.

참 아이러니하다 이 장면은.

그리고 많은 어른들이 있었지만 잘못된 서원을 한 것에 대해 말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돌이키시는 하나님이시기에 회개하면 서원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몰렉에게 자식을 바치는 일이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인데도 불구하고.

결국은 전쟁에서 승리를 안겨줬지만 민족에게도 다시 버림받은 격이 된 것이다.

입다는 사사였지만 허무하게 마감한 사사였다,

상처받은 사람이 치유받지 못하고 사역을 할 때 그 상처가 더 큰 문제를 불어옴을 느꼈다.

누구나 상처가 있다. 단 한 번도 상처 없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예수님이 필요한 것이다.

치유가 없다면 한 발짝 물어 서서 자신의 상처를 보고 예수님께 먼저 나가가야 한다.

만약 입다가 전쟁 전에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고 자신에게 이런 기회를 주심에 감사하고

자신을 버렸던 가족과 회복이 있었다면.. 그 아버지가 먼저 손 내밀고 화해를 요청했다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서원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전부 와 다름없는 딸도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나도 상처가 있다. 너무 치명적이라 많이 아프다.

특히 가족에게 받은 상처는 늘 나를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상처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 늘 주게 되어 있다. 그래서 회복이 필요한 것이다.

일보다는 회복이 먼저 임을 생각하게 한 우울한 말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