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묵상

손바닥 묵상 1 - 사무엘상 21장에서 31장 묵상

차작가 2023. 9. 19. 12:25

사무엘이 사울에게 기름 부어 드디어 왕정시대를 연다.

그러나 사울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백성들이 흩어짐을 보고 두려워 사무엘이 오기 전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림으로

사울의 왕의 나라가 길지 않음을 듣게 된다. 사울을 하나님이 버리신 것이다.

그리고 사무엘은 다윗에게 기름을 붓고 하나님은 다윗을 사울에게 쫓겨 다니게 하시므로 왕으로 준비시키신다.

21장에서 31장까지 읽으며 광야에서 쫓겨 다니는 다윗을 보며 모든 고난에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우리가 그 이유를 깨닫지 못할 뿐이다.

24:15 그런즉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어 나와 왕 사이에 심판 하사 나의 사정을 살펴 억울함을 풀어 주시고

나를 왕의 손에서 건지 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24:16 다윗이 사울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마치매 사울이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 하고 소리를 높여 울며

24:17 다윗에게 이르되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24:18 네가 나 선대한 것을 오늘 나타냈나니 여호와께서 나를 네 손에 넘기셨으나 네가 나를 죽이지 아니하였도다

우연히 사울이 다윗이 숨어 있던 굴에 볼일을 보러 왔던지 또는 잠시 잠을 자러 왔을 때 다윗이 사울을 죽일 수 있었으나 옷자락만 베는 장면이다.

겉옷의 옷자락만 베고서도 마음에 찔려 하는 다윗은 사울에게 자신의 무죄함과 억울함을 사울에게 말한다.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을 놓아주는 불가능한 것을 순종한 경우이다.

다윗이라고 이번에 사울이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다"라고 후회했다고

다시는 쫓지 않을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히 다윗은 경험으로 사울이 다시 쫓아 올 거라는 걸 알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하나님이 나의 억울함을 아시고 나에게 넘겨주셨구나!" 하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장면과 25장에 나오는 나발을 대하는 모습은 참 다르다.

25:17 그런즉 이제 당신은 어떻게 할지를 알아 생각하실지니 이는 다윗이 우리 주인과 주인의 온 집을 해하기로 결정하였음이니이다

주인은 불량한 사람이라 더불어 말할 수 없나이다 하는지라

다윗이 광야를 사울을 피해 방황할 때 나발의 양 떼를 지키는 소년들을 도왔었다.

25:16 우리가 양을 지키는 동안에 그들이 우리와 함께 있어 밤낮 우리에게 담이 되었음이라

마침 양털을 깎는 축제일에 다윗을 따르는 사람들을 먹일 양식을 구하기 위해 소년 10명을 나발에게 보냈는데

나발은 그동안 도움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새의 아들이 누구냐 요즘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하며 모욕을 준다.

사울에게 쫓기고 있던 다윗의 약점과 억울함을 겪어 다윗에게 찾아온 사람들과 불량배들이 다윗을 따르는 걸 비꼬며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윗이 나발을 죽이기로 작정하고 군사를 거느리고 떠나자 나발의 아내 아비가엘이 지혜롭게 대처한 내용이다.

하나님은 아비가엘을 통해 앞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될 다윗에게 무죄한 피를 흘렸다든지 왕이 친히 보복했다는 오명을 남지 않게 도우셨다.

비슷한 상황이지만 다윗이 다르게 대처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사울은 왕이라 참고 나발은 불량한 사람이라서 참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또 한편으로는 사울은 힘이 있는 자라서 참고 나발은 다윗보다 약하니깐 못 참았을까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더 억울해서 못 참고 덜 억울해서 참는 것도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나라면 왜 그랬을까... 하며 생각해 보았다. 물론 두 경우 다 나는 절대로 참을 수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내가 잘못이 없는데 모함을 한다든지 억울한 누명을 쓴다면 도저히 참을 수 없다.

다윗은 이미 사무엘을 통해 기름부음 받아서 차기 왕으로 택함을 받았다.

그리고 이 사실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고 이미 민심이 다윗에게 향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을 죽여서 왕이 된다면 베냐민 지파의 세력을 얻지 못할 것이니 죽일 수가 없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백성들에게도 명분이 없을 것이고 또 다른 반란자를 만들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도 명분이 없다.

아무리 자신을 죽이려고 쫓아오는 사울일지라도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왕을 죽일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신앙심에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친구 요나단과 그 가족에 대한 신의를 버리는 것이기도 하기에 그것은 불가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납득이 갔다.

그런데 나발의 경우는 좀 다르다.

차기 왕이 될 다윗을 무시하는 행위는 용서가 안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자신을 따르는 군사들에게 위엄이 안 쓰는 것이다.

그리고 군사들의 배를 채워줘야 할 이유도 있고 착취가 아니라 그동안 양 떼를 지켜준 대가를 받을 권리가 있었다.

그래서 나발은 죽이기로 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힌트를 아비가엘의 고백에서 얻을 수 있었다.

앞으로 왕이 될 다윗에게 한점의 오점도 남겨서는 안된다는 조언에 다윗은 동의했다.

사람들은 다윗을 훌륭한 왕으로 많이 생각하지만

나는 사무엘서를 읽으며 다윗은 비즈니스와 철저한 전략가적인 면이 훨씬 더 많은 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비가엘이 지혜롭게 대처하므로 다윗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일깨워 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마음을 간파하는 아비가엘이 참 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윗이 뭘 생각하는지 무엇을 우선시하는지 또 왕으로서 앞으로 세워질 거라는 걸 아는 지혜가 있었다.

나발에게도 바로 말하지 않고 하루가 지나고 나서야 말하는 것도 참 지혜로웠다.

이 지혜가 다윗의 왕으로 가는 길을 준비했고 자신의 남편 나발도 칼이 아닌 자연사로 평안히 죽을 수 있게 했으며

온 가족이 도륙 당하는 위기도 모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늘 지혜를 구하고 있지만 아비가엘과 같은 선택보다는 다윗과 같은 선택을 할 때가 훨씬 많다.

정말 답답한 부분이지만 하나님이 나를 아비가엘처럼 사람의 마음의 소리를 듣고 분별하는 그 길로 인도하시길 늘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