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말씀 묵상

창세기 31장에서 40장 묵상

차작가 2023. 9. 20. 12:18

오늘 말씀은 두 가지가 흥미로웠다.

첫 번째 이야기는 야곱이 라반을 떠나는 내용이다.

너무 유명한 사건이지만 오늘의 나에게 주신 말씀이었다.

라반은 갑질의 끝판왕이요 노예 계약의 선구자였다.

야곱이 자신의 조카인데도 불구하고 뼈를 발라 먹는 것처럼 모든 것을 이용해 먹은 악덕 기업가와 같았다.

그렇게 빼었는데도 불구하고 야곱은 늘 풍요로워졌고 또 그것이 하나님과 함께 하심을 알았다.

나라면 그 하나님을 믿는 것에 초점을 두었을 텐데 라반은 야곱의 하나님을 이용해 먹을 생각만 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라반에게서 하나님이 야곱더러 떠나라고 말씀하셨다.

31장 3절에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그런데 야곱은 말씀에는 순종했으나 자기의 방법 자기의 수를 놓지 못했다.

왜냐하면 아직도 야곱은 하나님보다 라반이 더 큰 산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당당하게 떠나는 것보다 몰래 도망하는 것을 선택했다.

역시나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같은 야곱을 놓친 라반은 뒤쫓아 갔고

그런 라반에게 하나님은 꿈으로 나타나셔서 선악 간에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이런 야곱을 보며 나와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왜 그동안은 내가 좀 더 야곱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이 나를 평가할 때 약삭빠르지 못하고 계산적이지 못하고 보기 보다 허당이라는 소리를 많이 한다.

그런데 과연 내가 그럴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나는 실패를 참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실수하는 게 싫어서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야곱처럼 배수진을 많이 친다.

마치 거미가 거미줄을 탄탄하게 치고 먹이를 기다리는 것처럼

최선을 다해 나만의 거미줄을 치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핏 보면 지혜로워 보이지만 그 깊은 곳에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 자리 잡고 있다.

마치 라반이 하나님 보다 크게 보이는 것처럼 세상이 하나님 보다 크게 느껴져서 두려워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크게 보였던 라반도 꿈 한방으로 해결하시는 하나님이신데 그리고 세상도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 한데

그 너머에 모든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게 가장 중요함을 하나님은 야곱을 통해 알게 하셨다.

그리고 두 번째로 창세기는 하나님의 아들이 핵심 단어이다.

창세기 전체를 통해 앞으로 오실 예수님을 예표하는 말씀들이 많이 있다.

요셉의 이야기를 다루다가 37장과 39장 사이에 뜬금없이 유다와 다말 이야기가 나온다.

사실 38장을 없애고 37장에서 39장으로 넘어가는 게 자연스럽다.

그런데 38장에 생뚱맞게 유다와 다말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이유가 있다.

왜냐면 유다 자손을 통해 앞으로 다윗이 태어나고 또 다윗의 혈통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오시길 때문이다.

유다에게는 아들 세명이 있었다.

다말은 첫째 아들의 아내였다. 즉, 유다의 첫 번째 며느리였던 것이다.

첫째 아들이 자식 없이 죽자 그 당시 풍습대로 둘째 아들을 통해 자식을 얻고자 했는데 둘째가 또 죽자

셋째가 어리므로 셋째 아들이 장성할 때까지 다말을 친정으로 돌아가게 한다.

그러나 유댜의 속마음은 하나 남아 있는 아들도 죽을까 두려워 다말을 돌려보낸 것이다.

그러나 다말의 속임수로 오히려 유다의 자식을 갖게 되고 그 자식이 쌍둥이인 베레스와 세라이다.

그중에 베레스가 다윗의 조상이 된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을 반드시 이루신다.

이것이 38장의 핵심이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유다가 맘에 들어왔다.

38장 1절에 요셉을 애굽으로 팔아넘긴 장본인인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유다가 왜 가족을 떠났을까?에 집중했다.

요셉을 질투해서 10명의 형제가 합세해서 웅덩이에 집어넣고 르우벤이 말렸는데도 불구하고 유다가 선동해서

장사꾼에게 요셉을 팔아넘겼다.

그리고 양의 피를 요셉의 옷에 묻혀서 야곱에게 가지고 가서 가장 아끼는 아들이 짐승에 물려 죽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 후에 야곱이 슬픔으로 지옥 같은 삶을 살자 유다는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다른 형제보다 더 많이..

그래서 어쩌면 가족을 떠나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자기의 범죄로 인해 아버지가 슬퍼하는 모습이 힘들었을 것이고 모든 형제가 같이 한 일이었지만

자신의 주동자였고 사건을 하나하나 계획했기 때문이다.

사실은 야곱은 요셉을 잃어버렸지만 유다는 정말로 두 자녀가 죽었다.

자식이 죽는 것을 보며 유다는 분명히 요셉과 아버지를 생각했을 것이다.

야곱은 자식 하나를 잃어버려서 슬펐지만 유다는 둘을 잃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그리고 하나밖에 남지 않은 어린 셀라를 또 잃어버리지 않을까 걱정하며 또 한 번 아버지인 야곱을 생각했을 것이다.

야곱에게 요셉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과 같았다.

자신이 셀라를 대할 때 아버지가 이렇게 요셉을 생각했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나는 분명히 유다가 회개했을 거라고 믿는다.

왜냐면 회개했기에 다말을 통해 잃어버린 두 아들을 다시 주셨기 때문이다.

사실 유다가 모든 가족을 떠났다는 것 자체가 회개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하나님께 고백했고 용서받았을 거라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회개도 중요하지만 그 죄에 대한 댓가는 반드시 지불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유다는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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