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와 출애굽기의 간격은 약 400백년의 기간이있다.
창세기에서는 야곱의 죽음으로 끝이 나고 출애굽기에서는 본격적으로 애굽에서의 생활이 시작된다.
출애굽기의 1장의 처음 시작은 야곱과 그의 자손들과 함께 애굽에서의 생활로 시작을 알린다.
그러나 요셉과 그 형제들이 다 죽고 새로운 왕이 즉 정권의 변화로 애굽을 다스리자 이스라엘 백성에게 새로운 변화가 생겼다.
그것은 바로 탄압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고된 노동으로 인해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를 했고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그 언약을 기억하셨다.
그래서 모세를 통해서 출애굽 하게됐다.
출애굽기는 제목 그대로 애굽을 탈출하는 이야기이다.
출애굽 전에 하나님은 10가지 재앙을 애굽 땅에 내리셨다.
첫 번째로 나일강이 피가 되는 재앙을 내리셨고
두 번째로 개구리를 통한 재앙을
세 번째는 땅에서 이가 사방을 덮는 재앙
네 번째는 파리 재앙
다섯 번째는 가축에 전염병을 내리는 재앙
여섯 번째는 화덕의 재로 인한 독종을 내리는 재앙
일곱 번째는 하늘에서 우박과 불똥이 내리는 재앙
여덟 번째는 메뚜기 떼 재앙
아홉 번째는 흑암의 재앙
마지막 열 번째는 장자의 죽음의 재앙 이것은 생축의 첫 번째도 모두 포함되었다.
이 10가지 재앙을 분석해 보면 물에서 땅으로 또 땅에서 하늘로 재앙이 확대됨을 볼 수 있다.
그리고 8장 22절 말씀을 보면 "그날에 나는 내 백성이 거주하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그곳에는 파리가 없게 하리니"
네 번째 재앙부터는 고센 땅이 애굽과는 구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말은 굉장히 중요하다.
왜냐면 그 이후에 재앙은 고센 땅에 사는 이스라엘 백성은 재앙을 눈으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곱 번째 재앙 우박과 불똥은 바로의 신하의 중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종과 가축을 집으로 피하게 하여서 죽음을 면했을 가능성이 있다.
첫 번째에서 여섯 번째 재앙을 이미 경험했으므로 당연히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생겼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열 가지 재앙은 애굽의 신들을 굴복시키는 것에 의미가 크다.
5장 2절 "바로가 이르되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이 말씀으로 근거해서 그들이 숭배하는 열 가지 우상을 굴복시키는 것으로 하나님 자신을 보여 주셨다.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라고 말하는 바로 왕에게
하나님은 열 가지 재앙을 통해서 하나님 자신이 하나님 되심을 보여 주시는 것이다.
결국 열 번째 재앙까지 경험하고 나서야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내 보낸다.
그리고 출애굽을 통하여서 이스라엘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길은 하나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을 기념하기 위해 유월절을 지키게 된다.
유월절을 통해 애굽에서 양의 피를 통한 구원을 기념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유월절을 통한 양 되신 예수님의 메시지이다.
그리고 출애굽과 동시에 시작되는 하나님의 인도는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나타난다.
오늘은 1장에서 10장까지 묵상했다.
출애굽기서는 약 30 몇 년 전에 처음 예수님을 믿고 성경을 읽을 때 가장 재밌게 읽었던 말씀이다.
그때를 돌이켜 보면 나는 신약보다는 구약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중에서도 출애굽기와 여호수아서가 가장 재미있었다.
그 당시 출애굽기는 박진감 넘치고 흥미진진하고 진취적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가며 성경을 여러 번 읽을수록 출애굽기를 통해 나타난 예수님의 구원의 계획과 인간의 연약함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나의 문제임을 깨닫게 하셨다.
오늘은 하나님이 모세의 트라우마가 된 사건을 통해 그를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시고 하나님의 일꾼으로 사용하시는 그 과정이 은혜가 되었다.
출애굽기를 여러 번 읽었는데 오늘은 새로운 각도로 보게 하셨다.
모세의 트라우마가 된 사건이 2장 11절에 나와있다.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 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모세는 40년 동안 궁중에서 왕자로 자랐지만 자신의 정체성은 이스라엘 사람이었고 히브리 사람을 자기 형제라고 생각했다.
자기의 형제가 맞는 것을 보는 게 모세에겐 고통이었다. 그래서 애굽 사람을 죽이고 모래 속에 감추었다.
자신은 이 행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시원케하는 통쾌한 복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은 14절에 보면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생각지도 못한 이스라엘 백성의 반응에 깊은 상처를 받는 트라우마가 되었다.
그들에게 자신은 애굽 사람도 아니었고 이스라엘 사람도 아니었던 것이다.
갑자기 혼자가 된 모세는 두려움과 공허함이 몰려왔을 것이다.
화려한 궁중에 살았지만 늘 권력의 암투에 노출되어 있었고 자신의 민족은 노예로 살고 있고
하나님을 믿는 자신은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방황하는 외톨이였다.
그런 모세가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3장 9절에서 12절에 그 과정이 나타나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고 또 보았고
이제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어서 하나님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모세는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이렇게 외친 자신의 동족의 말을 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라며 3장 11절에서 말한다.
하나님은 그런 모세에게 증거를 주셨다.
12절에서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내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이 말씀 이후에도 하나님은 트라우마로 인한 상처 많은 모세를 여러 방법으로 설득하시고 독려하시고
인내하며 그 상처를 또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해 주셨다.
하나님의 방법은 이런 것 같다.
절대로 억지로 그 일에 내몰아 가시지 않으신다.
모세가 그 트라우마에서 해결될 때까지 기다려 주시고 하나님의 일을 맡기셨다.
만약 그 트라우마를 해결하지 못했다면즉, 그 히브리인의 그 한마디로 인한 상처가 치유되지 못했다면
우리가 기억하는 모세의 온유함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상처가 있다.
때로는 그 상처가 트라우마가 되어서 모세처럼 광야에서 헤매기도 한다.
어떠한 방법으로도 그 트라우마는 사람의 노력으로 벗어 날 수 없다.
나도 그러한 경험이 있기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광야 속에서도 하나님은 불꽃 가운데 나타나셔서 만나 주신다는 것이다.
누군가 이 광야에 서 있다면 불꽃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을 만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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