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장에서 50장은 본격적으로 요셉의 이야기와 야곱의 이야기가 있다.
두 사람의 인생을 통해 후대 우리에게 많은 교훈도 준다.
요셉을 통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진정한 용서를 보여주므로 우리에게 도전을 주고
야곱을 통해서는 이스라엘이 되는 인생 여정을 통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며 창세기를 마감한다.
나는 38장에서 유다의 회개를 보았고 이어서 46장 12절에 "유다의 아들 곧 엘과 오난과 셀라와 베레스와 세라니
엘과 오난은 가나안 땅에서 죽었고 베레스의 아들은 헤드론과 하물이요"
12절에서 다시 유다가 회개하고 얻은 베레스와 세라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유다가 요셉에게 저지른 잘못을 통해 엘과 오난으로 갚을 치렀고 회개의 결과로 얻은 베레스와 세라가
요셉이 있는 애굽으로 가는 장면이 나온다.
기근으로 인한 야곱과 자녀들은 애굽으로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요셉과 상봉하게 된다.
상봉하기 전에 유다가 베냐민을 대신하여 볼모로 잡혀 있기를 간청하는 장면이 44장에 자세히 나와있다.
44장 16절에 유다가 요셉에게 하는 고백이 있다.
"유다가 말하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우리가 이렇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
이 고백 후에도 요셉이 용납하지 않자 요셉에게 더 가까이 가서 간절히 간청한다.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어 있다고 간청한다.
유다의 회개는 요셉을 만나기 전에 이루어졌고 하나님이 용서하셨지만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용기가 필요했다.
이것으로 요셉은 유다의 마음과 다른 형들의 마음을 받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를 너무 값없이 받아들이지 않나 생각한다.
마치 자신의 잘못을 하나님께 회개라는 방법으로 떠넘기는 것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을 말뿐인 종교인으로 인식하고 비판한다.
진정한 회개는 이렇게 인격과 인격이 만나서 상대방의 마음이 상처로 인해 더 이상 괴롭지 않고 평안할 때까지
속죄하는 것이며 상대방의 마음을 상처로부터 자유로울 때까지 받아 주는 것이다.
나는 때로는 잘못을 하고도 용기가 없어서 상대방에게 다가가지 못할 때도 있었다.
물론 상처받는 일이 더 많았지만 유다처럼 나에게 사과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그러나 비록 상처를 받았더라도 용서하는 마음이 필요하고
인간의 불완전함을 이해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사랑이 필요함을 느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야곱이 자신의 조상에게로 돌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오늘의 내가 받은 하이라이트는 야곱이 죽기 전에 요셉을 생각하는 마음이었다.
요셉은 17살에 애굽으로 팔려가서 13년이나 아무런 이유 없이 애굽 땅에서 종으로 살았다.
그 마음 가운데 많은 한과 서러움과 형들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그리고 요셉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방 신을 섬기는 제사장의 딸과 결혼해야 했다.
그 마음 가운데는 자신은 하나님의 자녀인데 이방인과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 많은 혼돈과 불안함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요셉에게 야곱은 죽기 전에 축복을 한다.
48장 5절과 6절에 "내가 애굽으로 와서 내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가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후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이들 후에 내 소생은 네 것이 될 것이며 그들의 유산은 그들의 형의 이름으로 함께 받으리라"
떨어져 살았던 요셉은 옷차림도 다르고 13년의 긴 공백 기간을 통해 교류도 없었으므로 동떨어진 그런 감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아들의 마음을 안 야곱이 요셉에게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실질적으로는 너의 자녀지만
내 아이라고 일종의 입양을 선포하는 것이다.
다른 문화에 살았기 때문에 소외감도 느꼈을 것이다.
그런 것을 안 야곱이 요셉을 위로하는 축복이었다.
자기밖에 모르던 야곱이 진짜 이스라엘이 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인간 야곱의 한 일대기를 보며 측은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형은 사냥꾼이고 남자다웠지만 자신은 조용한 성품이었다.
아들이 많은 것이 재산 같은 족장 시대에 야곱은 약했다.
또 라반의 자녀들은 강성했고 돌아와 보니 주위에는 다 적이었다.
그런 야곱은 꾀를 쓰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었다.
+야곱이 하나님만 바라보고 산다는 것은 참 힘들었을 것이다.
마치 야곱은 나와 같기에 너무나 많이 공감이 되었다.
그런 약해빠진 야곱을 하나님은 택하셨고 결국은 이스라엘로 만들어 주셨다.
결코 포기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집념이 야곱을 믿음의 선조로 만들어 주셨다.
야곱 같은 나를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으시고 믿음의 선조로 만들어 가시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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