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서 하면 여리고성이 가장 먼저 생각이 난다.
또 여리고성 하면 기생 라합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너무나 잘 알기에 묵상하면서 뭐 다른 것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하나님은 다양한 각도로 말씀을 보여 주시고 깨닫게 하시는 분이셨다.
라합의 고백대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심을 보고 사람들이 정신을 잃었다며 정탐꾼을 숨겨주었고
성벽에 줄을 메 그들을 쫓는 군사들로 피신할 수 있게 하는 장면을 읽으며
이스라엘과 라합이 운명 공동체가 되는 걸 보며 마치 멘탈 전쟁에서 장기를 등에 업고 가는 지혜를 배웠다.
2:11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2:14 그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목숨으로 너희를 대신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실 때에는 인자하고 진실하게 너를 대우하리라
2:15 라합이 그들을 창문에서 줄로 달아 내리니 그의 집이 성벽 위에 있으므로 그가 성벽 위에 거주하였음이라
2:16 라합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렵건대 뒤쫓는 사람들이 너희와 마주칠까 하노니 너희는 산으로 가서
거기서 사흘 동안 숨어 있다가 뒤쫓는 자들이 돌아간 후에 너희의 길을 갈지니라
하나님이 애굽에 노예로 있던 백성들을 홍해를 건너가게 하시고 시혼과 바산을 점령시키시고 요단강 건너편 바로 앞에 있는
여리고성이 보이는 곳에 진을 치고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 일대에 선 유명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라합은 이 사실을 그저 소문으로 보지 않았다.
라합은 그 소문을 듣고 그것이 사실이라고 확신했기에 자신의 목숨을 건 것이다.
그래서 정탐꾼을 숨겨 줄 땐 그만한 각오를 했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들이 살아야만 자신의 민족들에게도 자신의 목숨을 지킬 수 있었고 그들이 살아서 돌아가야만 이스라엘이 쳐들어올 때
자신과 더불어 가족들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일종의 싸움의 판을 읽을 수 있는 지혜로운 여자였다.
라합의 지혜를 보며 예수님을 아는 것에 목숨을 걸 만한 가치 있는 것이라고 나는 항상 인지하며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만들었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 것에 목숨을 건다면 가족까지 구원에 이르게 하는 거라는 걸 인식하며 사는가?라는 질문도 하게 되었다.
물론 알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목숨을 건다는 건 내 편에서도 적 편에서도 위험 부담이 있다는 걸 안다면 영적으로 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탐꾼이 무사히 그들을 쫓는 병사들의 눈을 피해 도망해 무사히 이스라엘 진영에 도착하기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아야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승리할 때까지 말이다.
어느 쪽이든 위험한 부담이 있는 걸 알면서도 강행한다는 건 그만큼 확신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확신이 어쩌면 그녀의 가족들에게도 설득할 수 있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두 위험한 공동체가 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며 이런 전쟁을 겪는다는 마음가짐이 희미해져감을 느낀다.
정확하게 말하면 위험한 동질감이 사라져 버린 건 아닐까 하는 마음마저 든다.
라합이 생명을 건 이 한수에 나도 위험한 동질감 안에 서 있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구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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