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묵상

손바닥 묵상 2 - 욥기 21장에서 30장 묵상

차작가 2024. 4. 10. 10:39

욥이 사람에게 자신이 당하는 고통을 이야기하지만 친구들은 도무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상처만 주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욥은 결국 해답은 하나님께 있으니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쏟아 내야 된다고 결단 한다.

욥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은 이런 과정을 경험한다.

이것이 삶이기 때문이다.

욥기서 후반부에 이르면 욥은 친구들과의 대화보다 하나님께 몰두하는 걸 볼 수 있다.

27:1 욥이 또 풍자하여 이르되

27:2 나의 정당함을 물리치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27:3 (나의 호흡이 아직 내 속에 완전히 있고 하나님의 숨결이 아직도 내 코에 있느니라)

27:4 결코 내 입술이 불의를 말하지 아니하며 내 혀가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리라

27:5 나는 결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내가 죽기 전에는 나의 온전함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27:6 내가 내 공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내 마음이 나의 생애를 비웃지 아니하리라

드디어 욥은 친구들과의 변론이 아무 소득도 없고 위로도 되지 못한다고 느끼고 하나님을 바라본다

욥은 자신이 태어난 것을 저주하고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27장 말씀에는 욥의 태도가 바뀌는 걸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자신의 정당성을 듣지 않으신다고 생각한 욥은 비록 하나님이 아무 말씀이 없으시지만

자신은 결코 불의한 일을 하지 않았고 자신은 거짓말하지 않았다며 하나님 이름으로 맹세를 한다.

그리고 친구들이 잘못한 것을 말하며 죽기까지는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을 버리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더 이상 자신의 생애를 비웃지 않겠다고 말한다.

자신의 생을 저주하는 모습에서 완전히 바뀌게 된 것이다.

사람을 의지하는 마음을 버리니 놀라운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과 단판을 짓겠 다는 의지를 보이는 말이다.

이 말씀을 나는 이해할 수 있다.

극한 상황에 놓이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온전히 타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어쩌면 이해하려고 노력도 안 할 수도 있다.

비슷한 상황에 처해 본 사람도 이해하기 힘든 게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욥은 이제 하나님께만 자신의 상황을 말하고 하나님께만 답을 듣겠 다는 태도를 취한다.

사람은 상처받기가 쉽다. 그렇게 연약한 게 사람이다.

그리고 이렇게 어려운 상태에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욥이 사람의 헛된 변론을 버리고 하나님을 바라보자 오히려 그 영이 살아나고 죽겠다는 말을 버리고 살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자신을 더 이상 비웃지 않고 하나님이 판결해 주실 때까지 기다리고 살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이 전환점은 바로 사람의 헛된 변론을 버리고 하나님과 끝장 볼 때까지 기도하겠다는 의지에서 시작된 것이다.

나도 지금 그런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나의 삶이 귀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묵상하며 그분의 생각을 알기 원하자 사람에게 관심이 멀어지게 되고

사람의 생각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극한 상황에 몰려보는 것도 나에겐 값진 경험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을 더 알아갈 수 있게 되고 그분과의 관계에서 끝장을 보자는 오기도 생기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떠한 환경도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닌 것 같다.

모든 고난이 값지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통로가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