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빌립보서 2장 25~27절

차작가 2024. 4. 11. 11:34

25절 그러나 에바 브로 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26절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 하지라

27절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보충 설명:

25~27절

바울은 에바 브로디도 역시 나의 형제요 함께 군사 된 자(2:25)라고 말한다. 26절에 보면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라는 말을 하고 있다.

에바 브로 디도는 빌립보의 성도들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병들었음을 빌립보의 성도들이 들은 것을 알고 심히 근심했다고 말한다. 자신의 병이 근심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병으로 인해서 빌립보의 성도들이 근심할 것을 근심한 것이다.

이들은 모두 자신보다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형제 된 자들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자기 일을 구하지 않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는 것이었다.

동역자란 목사가 같은 목사 일을 하는 사람에게 하는 말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가 동역자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우리의 일을 구하기보다는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먼저 구하고 살아간다면 우린 서로 그리스도의 일을 이루는 동역자들이다. 함께 그리스도의 군사 된 사람들이다. 이처럼 그리스도에 대한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우린 함께 복음을 위한 ‘동역자’인 것이다.

적용: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먼저 구하고 살아간다면 우린 서로 그리스도의 일을 이루는 동역자들이라고 말한다. 우린 복음을 위한 동역자인 것이다.

'목사의 세계" 마치 얼마 전 인기 드라마 제목 "부부의 세계"처럼 그 속에 들어가 보지 않으면 모르게는 이 세계구나... 하는 걸 실감하는 일이 있었었다.

평신도로 있을 때 막연히 목사님들은 다 거룩하고 뭔가 다른 삶을 사는 분들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목사님들은 욕도 하지 않고 모든 것에서 바르고 모범이 되고 서로 서로 동역자들끼리도 친하고 시기 질투란 있을 수 없는 뭐...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신학교에 남편이 입학을 하고 나서 제일 많이 놀란 것이 신학생들이 성경을 그리 많이 읽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한 전도사님 차를 탔었는데 유행가가 나오는 게 정말 낯설었었다.

지금 돌아보면 내가 지나친 율법주의자였고 바리새인과 다를 바 없었다는 생각에 죄송하지만 그땐 조금 충격을 받았었다.

그리고 신학교 다닌다는 핑계로 대부분 사모들이 돈을 벌고 전도사님들은 그냥 공부만 하는 것도 이상했다.

신학생 전도사 목사 이전에 한 가정의 가장인데 가장 중요한 걸 하지 않고 모든 걸 사모님께 맡기고 사는 게 이해가 되질 않았었다.

그래서 나는 점점 그들을 비난하고 가까이 가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목사 안수를 받고 한 교회에서 부목사로 있을 때였다.

우린 동역자이고 같은 배를 탄 사이이고 함께 운명을 같이 하는 사이라고 생각했었다. 마치 담임 목사님은 큰 아버지와 같고 그 밑에 부목사님들은 형님 동생이라고 생각하고 시작을 했었다. 그런데 그게 나의 환상이었다.

그건 실제로 불가능한 꿈과 같은 것이었다.

교회에서 성경 강좌를 모든 부목사님들이 열고 평신도들이 각 목사님의 강의를 신청하고 수강하는 그런 방법으로 "평신도 신학교"시작할 때였다.

그러다 보니 어떤 목사님의 강의는 수강자가 넘쳐나고 어떤 목사님의 강의는 신청자가 없어서 고민이시고 그런 일이 있었다.

그러자 나는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고 저녁 시간 이이들 두고 나오기 힘들었지만 수강신청이 작은 목사님 강의를 일부러 신청을 하고 들어야만 했었다.

왜냐면 그 목사님의 강의에 수강신청이 가장 작아서 없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반면에 남편의 강의는 신청자가 많아서 다 받을 수 없을 정도 였 기에 나는 괜히 눈치가 보였었다.

부목사님들의 관계가 선의의 경쟁 관계는 괜찮지만 이 일로 누군가가 상처받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일을 원치 않아서였다.

그때 한 목사님이 남편을 미워하기 시작했고 나도 그 일이 큰 스트레스가 되었었다. 그때 그 부목사 시절 나의 환상은 완전히 깨어졌다.

인간이 모이는 곳엔 더러움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이 신앙인 이건 아니건 다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우린 다 죄인이구나.. 이래서 예수님이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바울과 디모데의 관계를 보면 정말 동역자는 이래야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겸손해지고 고개를 숙이게 된다.

그때 그 시절 괴롭혔던 부목사님을 우연히 도서관에서 만났을 때 나는 모른척하고 고개를 돌렸었다. 우린 동역자가 되질 못했었다.

그러나 그 교회를 모두 나오고 난 뒤... 우연히 그 사모님이 일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회개를 했었다.

집에서 기른 노란 장미를 화병에 꽂아 편지와 함께 그 사모님께 드리며 그동안 서운했던 감정을 정리를 했었다.

하루아침에 우린 부족해서 완벽한 동역자가 되진 못했지만 우여 곡절을 겪고 난 뒤 우린 복음을 위한 진정한 동역자가 될 수 있었다.

좀 수준 낮은 동역자이지만 함께 같은 꿈을 향해 가는 서로이기에 격려하며 위로해 줄 수 있는 관계로 회복이 되었던 것이다.

이젠 진심으로 그분의 사역을 축복하고 기도한다.

주위에 이웃이나 같은 교회 성도의 어려움도 돕지 못하면서 저 멀리 알지 못하는 선교지의 선교사님들을 돕는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면 그들은 복음 안에 동역자이며 형제자매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을 참 많이 했었다.

교회에서 전도사로 목사로 섬길 때 나는 내일 먹을 양식 걱정을 하는데 교회에서 기도회 시간 저 타국의 이름 모를 선교사에게 헌금을 하자고 한다든지.. 그럴 때 참 서글펐다. 물론 그분들도 도와야 한다. 그러나 내 앞에 있는 동역자의 아픔도 헤아리지 못한다면 그건 가식이라고 생각한다.

우린 내 형제자매의 동역자가 먼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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