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빌립보서 3장 1절

차작가 2024. 4. 11. 11:37

1절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보충 설명:

바울이 빌립보 신자들에게서 보고 싶어 했던 것은 그들이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바울의 말은 슬픔이나 낙심을 이겨내고 기뻐할 수 있도록 힘쓰라는 뜻이 아니다. 바울이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옥에 갇힌 바울이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낙심하지 않고 주 안에서 기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기쁨의 근거는 항상 그리스도에게 있었다. 때문에 ‘주 안에서’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은 사람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같은 내용을 또다시 말하는 것에 대해서 내게는 수고로운 것이 아니며 너희에게는 안전한 일이라고 말한다.

사실 같은 말을 또 한다는 것은, 말하는 자의 입장에서는 쓸데없는 수고가 될 수도 있다. 알고 있는 내용을 또다시 반복해서 말한다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을 듣는 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한 가지 염려스러운 일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내용이라는 이유로 인한 관심의 상실이다.

그럴 때 사람은 이 말이 자신들의 귀에 들려질 경우 자연히 관심을 닫아 버리게 된다.

이미 잘 알고 있고 또 그렇게 믿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들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사람의 관심을 닫아 버리는 게 것이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이미 가르쳤던 내용들을 빌립보의 성도들이 다 잊어버렸다거나 모르고 있기 때문에 다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얼마나 그 말씀이 살아 움직여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안전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말씀을 듣는 신자에게 있어서 크게 잘못된 것은 ‘나는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을 얻는 복음의 원칙에 대해서는 다시 들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말씀을 지식으로 듣는 것이다. 그러나 삶으로 듣게 되면, ‘나는 과연 알고 있는 복음의 원칙을 따라 살아가는가?’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말씀에 대한 바른 태도임을 알아야 한다.

적용:

바울과 같은 처지에서 항상 기뻐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면 이런 코로나 사태에서 실직을 하고 돈이 없어지거나 가게를 하는데 수억을 투자했는데도 불구하고 장사를 못하고 있다거나 그래서 많은 돈을 날린 상태에서 자녀가 아프거나 뭐... 이런 상황에서 항상 기뻐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나고 보면 위기가 결코 불행만 가져오는 게 아니라 뜻하지 않은 행운으로 연결되는 일을 겪긴 하지만 그 순간은 힘든 건 힘든 것이다.

그러나 항상 기뻐하라고 하신다. 그리고 그 기쁨의 근거는 오직 그리스도로부터 유다. 이 말씀을 알면서도 심지어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아는 유명한 명언이 된 말씀이지만 이것이 내 삶 속에서 살아 움직여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지식의 말씀일 뿐이다.

나도 지금 기뻐하기 힘든 일들이 있다.

그러나 이 말씀이 내 삶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선 알고 있는 말씀을 복음의 원칙에 따라 살아가는가를 생각해야 된다. 그래야 하나님은 말씀에 대한 바른 태도라고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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