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절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그를 보낸 것은 너희로 그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라
29절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30절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보충 설명:
28~30절은 전 구절과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다.
28절 바울이 자기에게도 에바 브로디도 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빌립보 교회에 보낸 것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더 필요한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는 사람들의 바른 정신이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기 보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는 바울의 마음을 더 귀중히 여겨야 한다. 또 그 말에 순종하는 에바 브로 디도의 마음도 귀하다.
29절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에바 브로 디도의 마음을 존귀히 여기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 이와 같은 자들이란 타인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고 순종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래서 우린 그 마음을 존귀히 여겨야 한다.
30절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이란 빌립보 교회가 바울의 사역을 물심양면으로 돕는다는 듯이다. 이렇게 돕고 있는 빌립보 교회에 에바 브로 디도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자기의 목숨까지 돌보지 아니한 것이 오히려 바울의 사역을 돕는 것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동역자의 정신이고 교회가 이러한 자들을 소중히 여겨야 할 의무가 있다.
적용:
정말 아름다운 동역이다. 성도도 바울도 에바 브로디 도도 모두 아름답다.
서로를 존귀히 여기고 또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는 마음 ... 순종하는 마음...
세상에 이런 아름다운 동역자가 있었을까! 하는 감동이 온다.
자꾸 사역을 할 때가 생각이 난다.
사역을 하다 보니 노인이 많은 교회라 장례예식을 드리는 일이 잦았었다.
그때는 목회자는 그 가족이 되어서 모든 장례예식을 집도하고 시작과 끝을 같이 해 주는 역할을 한다. 평소에 함께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정말 남이 아닌 사이가 되어서 천국에 가시는 걸 알면서도 눈물이 많이 나게 되어 있다. 교인뿐만 아니라 간혹 교회에 안 나오시는 분들도 요청이 들어오면 모든 걸 집도 해 드리고 또 교인의 친척이나 형제자매에 관해서도 함께 해 드리는 게 목회자의 일이다.
그래서 죽음을 늘 가까이에서 보게 되어 있다.
장례식을 준비하는 모든 과정을 돕고 마지막 모든 예식이 끝나고 상주가 혼자 남겨졌을 때 상주와 함께 텅 빈 집에 같이 가 드리고 그 상주 가정만 남겨졌을 때같이 마지막 위로 예배까지 집도하는 게 목사의 일이다.
그렇게 며칠을 함께 하고서야 모든 장례예식이 끝이 난다.
이때 상주는 감사의 의미로 목회자에게 보통 사례를 하게 된다.
일종의 결혼식을 한다면 주례하신 선생님께 선물을 드린다거나 사회를 본 분에게 선물을 드리는 것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런 의미이다.
그러나 아무런 사례를 해 주시지 않아도 전혀 문제가 없다. 다 마음의 표현이기 때문이고 경황이 없으면 그럴 수도 있고 형편이 안되면 더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경우가 있었다. 첫 부임한 교회라 정말 애착이 많았었는데 자식 없이 돌아가신 한 권사님이 계셨다. 참... 사랑하는 권사님이셨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따로 만나서 점심을 같이하던 권사님이셨다. 그런데 갑자기 암 선고를 받으시고 정말 갑자기 한 달 만에 돌아가셨다. 나도 그렇게 가실 줄 몰랐기에 마음의 준비가 안된 상태여서 너무 마음이 힘들었었다.
나보고 공부가 하고 싶으면 자신이 돈을 대 주겠으니 공부하라고도 하신.. 정말 그 당시 유일한 내편 같은 분이셨다. 남편도 일찍 돌아가셨고.. 자녀도 없으시니.. 더 마음이 쓰이고 의지가 되고 했다.
권사님의 가족분들은 교회를 다니지 않으시거나 다른 교회 교인이시라 장례식 때 처음 뵀었다. 그분들이 너무 감사하다며 경황이 없어서 잊어버리셨다고 사례금을 한 집사님에게 대신 전해 드리라고 전하셨나 보다. 그런데 그 사례금을 전해 받은 집사님은 사실 살면서 저렇게 인색한 사람이 있을까... 하는 분이셨다.
그분은 그 사례금을 자신의 마음대로 우리에게 전해 주지 않고 헌금함에 넣어버리셨다. 그리곤 우리에게 와서는 " 아! 목사님께 드리면 분명히 헌금하실 것 같아 대신 제가 했어요!" 하셨다. 나는 헌금할 마음이 없었다." 아! 잘하셨어요"라고 말은 했지만 목사 월급이 터무니없이 부족한 건 모든 교인이 알고 연금도 없고 보험도 없고 심지어는 보너스도 없는 그런 목회자에게 이런 특별한 사례금은 생활비로 쓰이는 게 당연한 것인데 중간에서 인색한 마음으로 갈취한 그분의 의도가 참 한심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그분의 자녀에게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는 사건이 있었다.
두 자녀가 모두 큰 사기를 당한 것이었다. 평생 모은 돈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런 일을 보면서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분에겐 우린 자녀의 나이인데.. 목회자가 어렵게 두 자녀를 키우며 사는 걸 모를 턱이 없을 것인데 늘 인색하게 대하시는 그분을 바울과 에바 브로 디도와 같은 마음으로 목숨까지 내놓을 사랑이 나에겐 생기지 않았다.
그런 메마른 마음을 가진 나를 위해서 예수님은 목숨을 내놓으셨는데도 말이다.
나는 막상 사역을 해보니 오늘 바울이나 에바 브로디도 가 나 같은 경험을 하지 않아서 그런 사랑을 했을까? 하는 의문점이 생긴다.
사람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그들도 그런 인색한 사람을 만나기도 했을 것이고 그 성도 안에 그런 인색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에게는 더 큰 예수님의 사랑이 바울의 눈을 멀게 했을 것이고 그 눈먼 사랑으로 그들을 봤기 때문에 목숨도 아깝지 않은 사랑을 나누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도 그 집사님을 마주치고 싶지 않다.
수많은 인색함으로 나를 대했기에 상처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눈먼 사랑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솔직히 그런 눈먼 사랑에 빠진 바울과 에바 브로 디도를 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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